[태평로] 법치 이전에 정치가 있다
국민 고소하던 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사저 시위 고소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려 해
윤 대통령도 정치 해법 찾아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보면 정치 지도자라기보다 한 사람의 법률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양산에 내려가 거의 처음 한 공적 행위가 국민 상대 고소다. 문 전 대통령 내외는 평산마을 사저 앞에서 시위 중인 보수단체 회원 4명을 직접 경찰에 고소했다. 모욕, 명예훼손, 살인 및 방화 협박 등 혐의로 처벌을 구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도 자신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뿌린 30대 청년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얼마든지 대통령을 욕해도 된다’고 해놓고 뒤로는 국민을 고소해 논란이 됐다. 나중에 취하하면서 청와대는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앞으로도 얼마든 고소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는데, 실제 그렇게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과거 “퇴진 시위가 벌어지면 광화문에 나가 끝장 토론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침묵했다. 퇴임 후에도 집 앞 시위대와 대화를 시도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의 재임 중 대학 캠퍼스에 대통령 풍자 대자보를 붙인 청년들은 ‘건조물 무단 침입’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에게 대북 정책 항의 표시로 신발을 던진 시민도 집요한 보복을 당했다.
대통령도 한 사람의 국민으로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치의 영역에서 발생한 문제를 대통령이 앞장서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의 법조화’는 국회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300명 중 46명(15%)이 법조인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2만6486명(6월 16일 현재)으로, 대한민국 인구 5200만명의 0.05%다. 특정 업역이 입법부에 과다 대표된 것이다. 민주당 입법 폭주를 주도한 ‘처럼회’ 김용민·김남국·최강욱 의원도 변호사 출신이다. 이들은 개혁을 명분 삼아 ‘입법 만능주의’로 치달았다. 무엇보다 몰두한 ‘검찰 개혁’은 자신들과 맞선 검사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것으로 끝났다. 화풀이하듯 ‘검수완박’에 검사 월급 깎는 법까지 냈지만, 지방선거도 완패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법조인 출신이다.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 그는 문 전 대통령 집 앞 시위에 대해 “다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며칠 후 자신의 서초동 자택 앞에서 ‘맞불 시위’가 열렸을 때도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니까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뒤 김건희 여사 팬클럽이 맞불 시위대를 고발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전 정권이 법치를 무력화해 상식과 정의가 무너졌다는 반성적 차원에서 법치를 강조한다. 법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국민 기본권 보장의 보루다. 하지만 ‘법대로’만 외치면 전·현 대통령 집 앞 시위에서 보듯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또 법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법에 임기가 보장된 전 정부 출신 공공기관장 문제가 그렇다. 변호사에 민주당 의원을 지낸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법의 정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사퇴를 거부한다. 친야 성향 변호사인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도 마찬가지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도, 윤 대통령이 아무리 법과 원칙에 따른 처리를 강조해도 대통령기록물법이 진상 규명을 가로막고 있다.
때론 법을 뛰어넘는 힘을 가진 게 정치다. 민주국가의 법은 대부분 여야 간 대화와 타협, 즉 정치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법치에 앞서 정치가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먼저 인근 주민의 고통을 고려해 양쪽 사저 시위 자제를 요청했으면 한다. 문 전 대통령도 가능하다면 집 앞 시위대와 만나보길 권한다. 두 사람 모두 한 사람의 법조인이 아니라 국민을 이끈 지도자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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