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영의 News English] 가평高校, 카이저 하사, 클리랜드 사단장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선(border line)을 따라 흘러내린다. 지난 16일, 캐나다 쪽 폭포 옆 무명용사 묘에 인접한(be adjacent to the Tomb of the Unknown Soldier) 페어뷰 묘지에선 ‘한국전(戰) 가평 전투 승전비’ 제막식이 열렸다. 경기도 가평군이 6·25 참전 캐나다 장병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감사 표시로(as a token of appreciation for their devotion and sacrifice) 기증했다.
캐나다는 2만7000여 명을 파병, 특히 ‘가평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achieve brilliant success in the battle). ‘가평 전투’는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 연합군 27여단이 중공군 118사단과 가평 계곡에서 벌인 전투로, 2대대를 담당한 캐나다군은 서울로 진격해 함락하려는(attempt to push forward and capture Seoul), 다섯 배나 많은 병력의 중공군 공세를 필사적으로 저지했다(desperately halt the offensive).
만약 캐나다군이 왜 이역만리에서 개죽음을 당하느냐며(die to no purpose in a faraway foreign land) 후퇴해버렸다면, 서울은 곧바로 점령당했을 것이다. 캐나다군은 2박 3일에 걸친 전투에서 1000여 명의 중공군을 사살하면서 10명이 전사하고, 23명이 부상했다. 전쟁 흐름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한국 역사를 바꾼 “가장 위대했던, 그러나 가장 덜 알려진 전공(戰功·the greatest, yet least known military achievement)”이었다.
19세 나이로 참전했다가 귀국 후 작년 11월 숨진 존 코미어씨의 유해는 “한국 땅에 묻히고(be buried in Korean soil) 싶다”는 마지막 소원에 따라(in line with his dying wish) 지난 2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be laid to rest). 가평군은 생존 중인 가평 전투 참전 용사 9명에게 명예군민증을 전달했다.
▶가평고등학교는 6·25전쟁 중 미군 40사단 장병들이 세운 학교다. 조셉 클리랜드 사단장이 천막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be impressed) 1만5000여 장병에게서 2달러씩 성금을 모아 교실 10개를 지었다. 그는 학교 명칭을 사단장 이름으로 하자는 권유를 마다하고(turn down the recommendation), 40사단 장병 중 한국에서 최초로 전사한 케네스 카이저(19) 하사 이름으로 정했다. 40사단에선 311명이 전사(fall in battle), 1180명이 부상했다.
이 학교는 1972년 ‘가평고등학교’로 개명했으나, 건축 표지석에 “미 40사단 장병들이 한국 미래 지도자들을 기르기 위해(in order to cultivate future leaders) 세운 학교”라는 기록을 새겨놓았다. 1953년 휴전 후 귀국한 40사단 장병들은 첫 졸업식이 열린 1954년 장학금을 보내 축하해줬고, 이후 지금까지 매년 보내오고 있다. 클리랜드 사단장은 1975년 세상을 떠날(pass away) 때까지 별도로 장학금을 보내왔고, “내 연금 일부를 가평 학생들에게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leave a will). 그리고 그의 아내는 2004년 사망할(depart this life) 때까지 남편의 유지에 따라 30년 동안 장학금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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