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26] 나의 소중한 정원
현대사회에서 문화의 경계는 모호하다. 문명화가 진행되어 구성원의 사회적 행동이 문화적으로 규범화될수록 문화와 비문화의 영역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문화적인 것’이라 함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행위나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공통 생활양식을 말한다. 밥을 먹는 행동을 예로 들어 보자. 배가 고프면 음식을 섭취하는 본능은 문화의 영역이 아니지만, 사회적 행동으로서의 식사는 규칙이나 예절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본능이 문화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강홍구 작가의 ‘그 집(2010)’ 연작은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집들에 대한 사적(私的)이자 사적(史的) 기록이다. 작업의 시작과 완성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었으니 개인적이라 할 만하지만, 집에 담긴 복잡다단한 욕망과 반복될 수 없는 시간의 축적을 기록했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야트막하고 좁다란 담장, 그 위에 올려진 플라스틱 대야, 그 안에 푸릇하게 자란 상추, 그 위로 떨어지는 햇빛.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 하나둘 떠나는 이웃, 한 뼘의 텃밭도 만들 수 없는 비좁은 집, 오래 그 집에 살았지만 이 도시가 고향이 아닌 어르신. 프레임의 바깥에서 감지되는 이야기들이 상상을 자극한다.
작가는 흑백으로 프린트한 사진 위에 캘리그래프용 잉크로 채색을 하고, 그 행위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흰색 페인트로 무심한 표면을 더해 넣었다. 사진을 찍고 프린트한 후 그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 과정을 취하면서, 스스로를 사진가가 아닌 ‘사진이용가’라 칭하는 작가가 택한 방식이 유도하는 질문은 다소 엉뚱하다. “저 상추는 식용일까, 관상용일까?”
선명하게 초록색을 입힌 상추는 경작 본능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차라리 가지런하고 보기 좋게 마련된 담장 정원에 가깝다. 사회적 행동만을 장려하는 문명 세계에도 본능의 힘은 당연히 살아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매료시키는 것은 날것의 본능도, 껍데기만 남은 규범도 아니다. 본능이 문화를 만드는 지점이야말로 근원적 감흥과 문명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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