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 여름날을 살며
입력 2022.07.13 00:26
문태준 시인.
아주 짧게 소나기가 내리지만 연일 폭염이다. 소나기가 내린 후에는 대지의 푸석푸석한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도는 듯도 하지만 다시 강렬한 햇볕이 내리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대지도 가물고 대지 위에 자라는 생명들도 몸의 물기가 바싹 마른다. 어디 몸의 물기만 마르겠는가. 대지가 가물면 사람의 인심도 박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유정과 무정의 존재들은 서로 자매이며 형제인 까닭이다.
여름의 길섶과 들에는 개망초가 피었다. 어릴 적에 여름날 오후가 되면 소에게 풀을 먹이러 들길을 가던 날이 잦았는데, 그런 여름날에도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있던 기억이 꽤 또렷하다. 언제가 나는 개망초의 활짝 핌에 대해 ‘개망초가 피었다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바람은 일고 개망초꽃이 꽃의 영혼이 혜성이 돈다// 개망초가 하얗게 피었다/ 잠자리가 날 때이다/ 너풀너풀 잠자리가 멀리 왼편에서 바른편으로 혹은/ 거꾸로/ 강이 흐르듯 누워서’라고 쓴 적이 있다. 개망초가 피고 잠자리가 하늘을 날면 여름 속으로 성큼 들어섰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라앉고 들뜨는 마음 내려놔야
평정심으로 폭염 보낼 수 있어
마당가에 심은 해바라기도 피었다. 해바라기를 심어 이처럼 가까이에서 매일 보게 된 일은 올해가 처음인데, 이 해바라기가 기대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원형의 노란 해바라기 꽃을 보고 있으면 거울에 비친 태양 같고, 누군가를 사모하는 사람의 간곡한 마음 같고, 어떤 의욕과 또 어떤 탄력(彈力)도 내 마음에 생겨난다. 나는 해바라기가 여무는 것을 보면서 여름날을 견뎌내게 될 것 같다.
여름날이 무척 무덥고 몸과 마음을 쉽게 지치게 하지만 여름날의 혜택과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해서 거둬들이는 것이 점차 다양하게 많아지고 있다. 나는 오이와 풋고추와 토마토를 넘치게 텃밭으로부터 받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이 내 몫에 넘치면 이웃에게 나눠준다. 그랬더니 이웃은 가지와 초당옥수수수와 콩을 한 포대 내 집에 놓고 갔다. 이웃집 할머니는 벌써 무화과가 익었다며 갓 딴 무화과를 양쪽 손에 쥐여 준다. 남새밭에서든 들에서든 땀 흘려 키운 것들을 서로 쪼개고 나누어 먹으며 인심을 함께 후하게 느끼는 것이다.
아침 해가 일찍 뜨고 또 낮 동안은 불에 달군 가마솥 같아서 일할 때에는 해 뜨고 지는 것에 맞춰서 하게 된다. 아침밥을 먹기 전에 한 차례 밭일을 하고, 대낮을 피해서 있다 햇살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 다시 밭일을 하게 된다. 낮에는 잠깐씩 오수를 즐길 때도 있다. 대낮을 피해서 일을 한다지만 날이 밝은 동안에는 여전히 햇살이 센 탓에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가 잠시 땀을 식히기도 한다. 그날그날 천기(天氣)의 변화에 맞춰서 활동하되 아름드리나무의 큰 그늘과 같이 잘 가꾼 자연으로부터 시원함의 은혜를 입기도 하는 것이다.
여름날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느긋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지은 책 『로사르믹제』에는 ‘가라앉음’과 ‘들뜸’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책에서는 가라앉음을 “몸과 마음이 무겁고 유연성이 없게 하며 마음의 대상을 명확하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이라고 설명하고, 들뜸은 “탐욕의 마음으로 마음이 대상에 머물지 않고 흩어지게 하는 마음작용”이라고 풀이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이 두 상태를 떠나 평정한 마음이 돼야 한다고 설한다. 평정은 “마음을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는 이 책을 최근에 읽으면서 요즘처럼 푹푹 찌는 여름날에는 이러한 평정한 마음가짐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생겨날 수 있는 짜증과 분노, 냉대와 하대(下待), 외면과 뻣뻣함, 산만함, 흥분, 과욕 등을 잘 다스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에는 밤에 마당에 서면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달빛도 은은하게 내린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에 있던 평상이 지금 살고 있는 내 집 마당에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름의 밤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 있으면 여름밤의 우주도 하나의 큰 나무와 다름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그늘 아래 나의 작은 자아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사납고 세찬 계절의 기세를 온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 계절의 운행, 그리고 그 계절만의 활동을 받아들이면서 그 계절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혜택과 기회도 곰곰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계절의 질서에 서로 어긋남이 없이 조화를 이루면서 융통성 있게 사는 게 유익할 테다. 우리는 점점 더 여름의 한가운데로 다가가고 있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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