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힘
입력 2022.08.02 00:20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해 12월 말 중국 시안(西安)이 봉쇄됐다. 2020년 우한(武漢)과 2022년 상하이를 잇는 ‘제로 코로나’의 징검다리였다. 당시 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은 긴박했다. 전해 들은 상황은 이랬다. 반도체 공장은 용광로를 닮았다. 멈추면 정상 수율 회복까지 시간이 걸린다. 삼성은 고민했다. 셧다운 비용을 추산했다. 당시 메모리는 공급 초과였다. 공장을 멈추면 중국은 메모리 수급에 타격이 컸다. 대신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른다. 점유율이 높은 삼성 전체로 환산하니 도리어 이익이란 결론이 나왔다.
산시(陝西)성 정부에 알렸다. “중국 방역을 존중한다. 공장을 닫겠다”는 취지였다. 가동을 고집하지 않았다. 성 경제부처는 부담이 컸다. 중앙에 직보했다. 회신이 왔다. “공장 중단은 없다.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 상하이 봉쇄 당시 닫았던 테슬라 공장과 달랐다. 반도체는 코로나보다 강했다.
지난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가운데)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 보고 있다. [중앙포토]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지난달 14일 “칩4 동참하라는 미, 8월까지 확답 요구” 워싱턴발 보도가 나왔다. “중국의 보복 가능성이라는 손실에 비해 실익은 적다”고 썼다. 가정에 기반한 기사였다.
중국은 쾌재를 불렀다. 17일 밤 글로벌타임스 인터넷판이 흔들기를 시작했다. “미국 압박에 굴복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며 “중국은 2021년 한국 메모리칩 수출 690억 달러의 48%”라고 했다. 무시해야 할 주장을 국내 통신이 받았다. 이를 본 중국 외교부가 나섰다. “관련국은 객관·공정 입장을 바란다”고 압박했다. 국내 통신은 “대사 부임일에 맞춰 전날 관영 매체로 견제구를 던진 뒤 정부가 직접 나섰다”며 추임새까지 보탰다.
이어 환구시보가 등판했다. “이른바 ‘칩 4자 연맹’(미·일·한·중국대만) 회의가 열린다”며 ‘하나의 중국’을 따랐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 수출총액 1280억 달러 가운데 중국·홍콩 비중이 60%”라며 수치를 높였다. “상업적 자살” 막말도 더했다. 26일 중국 외교부도 “중국 시장 60%”를 말했다. 그동안 중국 외교부와 매체 어디도 일본·대만은 압박하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컴퓨터 칩은 화석연료의 21세기 전략 버전”이라고 했다. 칩 공급자가 갑(甲)이라는 의미다.
중국이 건군 100년 분투 목표를 외친다. 대만을 건드리면 대만산 칩 공급망이 휘청인다. 글로벌 칩 대란도 우려된다. 시안에서 보았듯 기업은 이윤과 미래로 판단한다. 국가는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한국이 반도체 자해를 멈춰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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