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山

bindol 2022. 11. 29. 16:27

[이규태 코너] 山

 

조선일보
입력 2002.01.02 20:34
 
 
 
 


육당 최남선은 세계의 산왕(山王) 선거 현장을 중계하는 글을 남겼다.
현장은 천제(天帝)가 계시는 수미산상이요, 후보산인 중국의
곤륜산(崑崙山) 인도의 대설산(大雪山) 유럽의 알프스 미국의
록키가 내로라하고 개표진행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윽고 멀리서 은은히 선악(仙樂)을 타고 산왕이 드러난다. 「숨기었던
색시가/너울에서 나오매/거룩하신 화관이/절로 와서 얹히네/구원의 빛
넘치는/임의 눈을 보아라/해가 아니 뜬대도/어둠 다시 없겠네.」
산왕으로 뽑힌 금강산(金剛山) 찬송이다.

유엔은 올해를 개발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산을 지키고 존엄을 되찾는
캠페인을 벌이는 산의 해로 정했다. 지금 세계 인구 60억명 가운데
10분의 1이 산에서 살고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27건의 분쟁 중
23건이 산에서 일어난다. 인구 30억명이 물을 산에서 얻고 오염된 공기의
과반을 산에서 빨고 있는데 그 생명 원천으로서의 구실이 반감(半減)에
반감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 즈음하여 조상들의 산의 철학을 되뇌어 이를
만방에 고지함으로써 산왕으로서의 질적 위상을 과시해보기로 하자.

찰스 다윈이 아프리카 원시림에 들어서자 어리둥절하여 「오, 하느님!」
했다지만 우리 한국사람 백두산 원시림에 들면 저도 모르게 「애고,
어머니!」 한다. 한국사람은 산에서 어머니를 본다. 한국의 산은 북한에
1000m 이상의 산과 남한의 500m가 넘는 산을 도합 3000으로 어림한다.
우리 강토가 삼천리강산이라면 1리당 한 봉우리씩이 있다는 산의 나라요,
산을 의지하고 산의 자양 속에 살아왔기에 산은 어머니다. 그래서
조상들이 산에 들어갈 때는 배설물 받아들고 나올 그릇을 들고 들어가
어머니 몸체를 더럽히지 않았다. 산중에서 지껄이거나 노래를 부르면
산신령의 노여움을 산다 하여 조심했다. 산에 오른다 감히 말하지 않고
반드시 산에 든다고 했으니 감히 정상에 오르는 것을 정복한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계곡물을 마실 때면 합장하여 산신령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손으로
물을 길어야 했다. 철물 등 그릇은 부정탄다 하여 물에 대지 못하게
했다. 산에 들 때면 일부러 느슨하게 삼은 짚신인 오합혜(五合鞋)를 신고
들었는데 행여 산길에서 미물이라도 밟아 죽일까 저어해서였으니 산을 둔
이만한 배려를 한, 이 세상 어느 다른 나라가 있다는 말인가. 산 해의
산왕은 바로 한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