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해맞이 증후군
스위스 알프스의 리기산상에 등산열차가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열차에서 내린 많은 손님들의 오르는 방향이 양분되었는데 한패는 정상께
있는 호텔로 가는 대열이고, 다른 한패는 지는 해를 보러가기 위한
대열이었다. 흥미있는 것은 호텔행은 주로 동양계 손님이요, 지는 해
구경행은 주로 서양계 손님이었다는 점이다. 토산품 파는 알프스
아가씨들도 이 늦은 밤 손님을 노려 하산을 늦추고 있었다. 반면에 이른
새벽 알프스 뿔피리 소리에 기상해 해돋이 구경가는 대열은 동양계
손님인데 예외가 없었다. 어둠에 친화력을 갖는 문화권과 어둠을
거부하는 문화권이 선명하게 식별된 셈이다.
한국에 있어 밤의 세계는 귀신들의 세상으로 인간 행동을 정지시키는
단절 시공이었다. 장대 귀신, 빗자루 귀신, 멍석 귀신, 갈퀴 귀신,
측간 귀신 등 모든 공간은 귀신이 점유해버린다. 밤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령이 오갈 수 있는 시공이 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
빼앗기고 독수공방 잠오지 않는 밤은 그 밤자락을 멍석처럼 돌돌 말아
첩집 담 안으로 던져놓는다지 않던가. 밤에 우는 새는 짝 잃은 새요,
밤손님은 도둑이다. 그래선지 한국의 문장에서는 밤을 찬미하거나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인색했다. 밤이 긴 러시아나 북구의 소설들에
보면 인생의 심오한 결정은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순수 시공인 밤에
이루어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밤은 한국의 식자들에게도 우주를 돌리는
섭리가 과로하여 그 피로를 푸는 쓸모로밖에 여기질 않았다.
옛 어머니들 먼동이 트면 서천에 달이 지기 전에 일어나 그 달이 비친
샘물을 길어 정화수로 삼았다. 비친 달을 긷는다 하여 용란을
긷는다 했다. 이 정화수를 동쪽 담 아래 올려놓고 떠오르는 해를 향해
연거푸 큰절을 하면서 가족의 안태를 비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이
아침 숭상의 문화가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하게 했고 그 아침의
나라 다스리는 현장을 조정이라 했으며 다스리는 사람을
조신이라 하지 않았던가. 올해도 예외없이 명산이나 바닷가에
떠오르는 첫 해맞이 인구가 폭주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침문화의 민족
유전질이 은연중에 발로한 것으로 한국인의 존재증명으로 접어두고 싶은
증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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