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열전 161

[이한우의 간신열전] [11] 간신을 키우는 군주의 어리석음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번영하던 한(漢)나라가 쇠퇴하게 된 결정적 시기는 원제(元帝) 때다. 유학(儒學)을 좋아했던 그는 스승 소망지(蕭望之)를 아꼈음에도 환관 석현(石顯)의 농간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사실 석현은 임금 자리를 노리는 차원의 권간(權奸)은 아니었다. 그저 원제의 총애나 받고자 하는 것이 전부인 그저 그런 간신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소망지는 올곧은 대신이었다. 석현이 동료 환관 홍공(弘恭)과 손잡고 원제의 뜻에만 영합해 조정 일을 좌우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석현과 홍공을 멀리해야 한다고 원제에게 말했다. 석현은 간신들의 고전적 수법을 써서 소망지에게 역공을 가했다. 한편으로는 소망지가 주감(周堪)·유경생(劉更生) 등과 가까이하며 붕당을 짓는다고 하고, 다..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10] 忠姦 판별법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송나라 학자 범조우(范祖禹·1041~ 1098년)는 사마광(司馬光) 밑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 편수를 도울 만큼 역사에 정통했고 그 스스로도 '당감(唐鑑)'이란 역사비평서를 지었다. 이 책은 당나라 고조(高祖)부터 소종(昭宗)에 이르기까지 당나라 역사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이 책에서 그는 간신과 충신의 차이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먼저 간신이다. "아첨에 능한 사람은 아첨으로 환심을 사고 순종하는 것에 그칠 뿐인데도 그를 가까이하면 반드시 위태로움에 이르게 되는 것은 어째서이겠는가? 아첨하는 사람은 마땅함[義]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고 오직 이익[利]만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익이 임금이나 아버지에게 있으면 임금이나 아버지를 따르고 이익이 권신(權臣)에게 있으면 권신에게 빌붙고 이익..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9] 지록위마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중국사에서 조고(趙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대간(大奸)이다. 우리에게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즉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했다는 사자성어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원래 그는 환관이면서도 옥사(獄事)와 관련된 법에 정통한 법률 전문가였다. 법가(法家)를 중시했던 진시황(秦始皇)은 조고를 크게 신임했다. 조고가 형법을 쓰는 원칙은 각심(刻深)이었다. 각(刻)이란 법조문을 얇게 벗겨 내듯이 세세하게 쪼개는 것이고, 심(深)이란 악랄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진시황이 죽고 2세 황제가 즉위하자 조고는 2세 황제에게 말했다. "법을 엄격하게 해 형벌을 혹독하게 시행하고, 죄인은 서로 연좌시켜 대신과 황실 사람들을 주멸해야 합니다."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 ..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8] 권력자 주변의 方士 무리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54년에 이르는 재위 기간 동안 부국강병을 통해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전성기를 이룬 군주다. 하지만 진시황과 마찬가지로 점점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추구했고 심지어 스스로 신선(神仙)이 되고자 했다. 그 바람에 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의 무리들이 벼락출세를 했다. 이소군(李少君), 소옹(少翁), 난대(欒大) 등이 대표적이다. 이소군은 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기이한 물질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이 있어야 단사(丹沙·수은으로 이루어진 황화 광물)로 황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 황금으로 식기를 만들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데 그러면 신선을 만나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무제를 현혹했다. 이소군은 병으로 죽어 극형은 면했다. 소옹은 이미 죽은 사람과 ..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7] 말재주 부리는 者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공자의 고국 노(魯)나라 실력자 계씨(季氏)가 노나라의 부용국(附庸國·큰 나라에 종속돼 그 지배를 받는 작은 나라)인 전유(顓臾)를 정벌하려 했다. 이때 공자의 제자 염유(冉有)가 계씨의 가신으로 있었는데 공자에게 말했다. "계씨가 장차 전유에 대해 일을 일으키려 합니다." 공자는 염유를 꾸짖으며 말했다. "그건 너의 잘못 아닌가? 전유는 선대 임금께서 봉해주신 곳이고 우리 노나라 땅 안에 있으니 신하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찌 (남의 나라를 치는) 정벌이란 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 공자는 계씨를 말리지 못한 염유의 책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염유는 "계씨가 그러는 것이지 제가 하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둘러댔다. 이에 공자는 계씨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그 신하된 자의 책..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6] 여우와 쥐새끼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간신을 동물에 비유하면 꾀로는 여우[狐]이고 비루함으로는 쥐[鼠]다. 중국 고사에 성호사서(城狐社鼠)라는 말이 있다. 성벽에 숨어 사는 여우와 사직단에 파고들어간 쥐새끼란 뜻인데 최고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서 백성들에게 온갖 패악질을 해대는 간신을 칭하는 말이다. 서진(西晉)이 망하고 사마씨(司馬氏)인 원제(元帝)가 동진(東晉)을 세웠다. 이때 서진을 세운 무제(武帝)의 사위이기도 한 산동 지방의 명문가 출신 왕돈(王敦)이 원제를 세우는 데 공을 세워 대장군에 올랐다. 왕돈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내심 걱정하던 원제는 유외(劉隈)와 대연(戴淵)을 진북장군(鎭北將軍)으로 삼아 왕돈을 견제케 했다. 반격에 나서고자 결심한 왕돈은 측근 참모 사곤(謝鯤)을 불렀다. "..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5] 간신에게 대처하는 방법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공자는 직접 누구를 간신(奸臣)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점잖게 소인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간신을 정의한 인물은 한나라 때 유학자 유향(劉向)이다. "첫째, 관직에 편안히 있으면서 녹봉이나 탐하고 공무에는 힘쓰지 않은 채 주변이나 관망하는 자를 구신(具臣), 즉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신하라 한다. 둘째, 군주가 하는 말은 모두 좋다고 하고 군주가 하는 일은 모두 옳다고 하면서, 군주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구차스럽게 군주에게 모든 것을 맞추느라 그 후에 닥치게 될 위험은 돌아보지 않는 자를 유신(諛臣), 아첨하는 신하라 한다. 셋째, 속마음은 음흉하면서 겉으로는 조금 삼가는 척하며, 자신이 천거하려는 자에 대해서는 장점만 드러내고 악은 숨기며, 쫓아내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점만..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4] 봉영상의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南朝)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종종 당나라 현종(玄宗)과 비교되곤 한다. 대체로 전반기는 치세를 이루다 후반기에 난세를 빚어냈는데 난세를 만들 때 현종에게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다면 무제에게는 주이(朱 )라는 간신이 있었다. 적국인 동위(東魏)에 신하들 간 권력 다툼이 심했다. 후경(侯景)이라는 인물이 권력자 고징(高澄)과 대결에서 밀려나자 반란을 일으켜 13개 주(州)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양나라에 귀순을 청했다. 양나라 신하들은 모두 "장차 내분의 싹이 될 수 있다"며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주이는 무제의 속뜻이 나라를 넓히는 데 있다고 보고 "동위 땅의 절반을 갖고 온다는데 왜 거절해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무제는 후경을 받아들였..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3] 왕과 민심 사이… 똬리 튼 간신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수나라 양제(煬帝·569~618년)는 재위 14년 만에 아버지 문제(文帝)가 어렵사리 통일한 나라를 말아먹은 황제다. 중국의 정사(正史)가 전해주는 그의 말년으로 들어가 보자. 잦은 토목공사와 대규모 정벌로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트려 놓고 정작 자신은 사치와 향락에 젖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곳곳에서 도적 무리들이 일어나고 반란의 움직임이 다투어 확산됐다. 오늘날로 치자면 피폐한 삶에 지친 민초 내 반(反)정부 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양제는 이에 관해 정확히 보고하는 것을 싫어했다. 진(秦)나라를 망하게 한 대간(大奸) 조고(趙高)와 쌍벽을 이루는 간신 우세기(虞世基·?~616년)는 그런 양제의 속마음을 읽어냈다.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모두 차단한 채 이렇..

간신열전 2020.07.31

[이한우의 간신열전] [2] 破家傷國 간신 부부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후한(後漢) 혹은 동한(東漢) 말기의 대표적 간신 양기(梁冀·?~159년)는 누이동생이 순제(順帝)의 황후가 되면서 권세를 휘두르며 나라 안팎의 미움을 샀다. 144년 순제가 붕(崩)하자 두 살의 충제(沖帝)가 즉위했고 이에 누이가 태후가 돼 섭정을 하자 양기도 권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충제가 병으로 붕하자 병권을 쥐고 있던 대신 이고(李固)는 외척 견제를 위해 연장자 즉위를 건의했으나 양기는 여덟 살 질제(質帝)를 즉위시켰다. 하지만 양기의 전횡에 질제가 불만을 갖자 그를 독살한 양기는 환제(桓帝)를 추대하고 이고를 죽여 버렸다. 이제 양기의 세상이었다. 황제는 있으나 마나였다.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양기전(梁冀傳)은 그의 사람됨에 대해 "어깨가 솔개와 같이 넓고 ..

간신열전 2020.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