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7> 야단치다와 혼내다 ; 영 다르다

어른이 돼서는 아이들에게 야단을 쳐야 할까? 혼을 내야 할까? 비슷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뜻은 영 다르다. 야단법석(野檀法席)이란 부처님께서 야외에 마련된 단에서 법을 설파하는 자리이다. 여기에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몰려들어 혼잡하다는 야단법석이란 뜻이 파생되었다. 하지만 야단치다에서의 야단은 야단법석의 야단이 아니라 야기요단(惹起鬧端)에서 나왔다. 시끄러운(鬧) 실마리(端)를 이끌어(惹), 일어나게(起) 한다는 뜻이다. 야기요단의 줄임말은 야료(惹鬧)다. 야료를 부린다는 것은 어떤 트집을 잡고 떠들어 댄다는 뜻이다. 좋은 뜻이 아니다. 야단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다. 야단을 제대로 치려면 핏대와 목소리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위축되어 야단치는 것이 먹힌다. 혼..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8> 여자와 여인 ; 어찌 다를까?

사람은 남자와 여자, 남성과 여성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인과 남심이란 말은 사전에도 없고 여인과 여심만 있다. 왜 그럴까? 섹스란 원래 남녀 구분을 뜻하는 성적 용어이다. 사회학적 남녀구분 용어인 젠더와 달리 생물학적 용어다. 섹서스(sexus)라는 라틴어, 나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생물은 암수구분 없이 자웅동체었다. 그러나 생명체의 유전적 다양성을 얻기 위하여 암수로 나뉘게 진화되었다. 하나가 둘이 된 것이다. 음양, 요철(凹凸), + - 등. 세상만물은 둘로 나뉘어졌다. 세상만물이 두루 바뀌어 가는 주역(周易)의 바탕도 무극(●)에서 둘(―, --)로 나뉜 태극(그림)이다. 디지털 세계의 기반도 0과 1, 둘로 나뉜 비트(bit)다. 사람도 남녀 둘로 나뉘지만 여인에 해당하는 남인은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9> 자존심과 자존감 : 무엇을 가질까?

"가진 건 뭐 두 쪽밖에 없는 놈이 자존심만 세 가지고…."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다. 자존심만 센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반면에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을 보면 혼자서 뭐라고 계속 작은 소리로 주절거리거나 큰소리로 소란스럽게 지껄인다. 그 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대개 어느 누구를 비난하는 말이다. 자기를 업신여긴 사람들을 향한 푸념이나 욕설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날 무시했는지 분통해서 공격하는 증오의 말들이다. 얼마나 분했으면 미치는 지경까지 갔는지 안타깝다. 강한 자존심이 상처받으면 이를 못 참고 당장 화를 버럭 낸다. 아니면 화를 죽이며 꾹꾹 참다가 점점 미쳐갈 수 있다. 자존심이 너무 세면 머릿속 정신회로 어딘가가 고장나 부러지기 쉽다. 자..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0>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때와 '고맙습니다'라고 했을 때 어떤 느낌의 차이가 있을까? 감사란 보답해야(謝) 함을 느낀다(感)는 뜻이다. 중국인이 감사하다며 '蚨蚨'라고 하는 말은 '謝謝'라고 쓴다. 상대방이 내게 해준 것에 대해 갚고(謝) 보답한다(謝)는 뜻이다. 당신에게 보답한다는 영어의 'Thank you'가 딱 이 뜻이다. 고맙다는 말은 순 우리말이다. 어원을 따지면 곰에서 왔다. 그것이 신화이고 설이라 해도 일리 있다. 곰(熊)의 옛말은 고마다. 옛날옛적에 인간이 되길 바랐던 곰, 즉 고마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 스무 쪽만 먹고 백 일 만에 여자(熊女)가 되었고, 하늘의 아들 환웅과 결혼하여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낳았다. 고맙다는 말은 상대방을 곰처럼 미련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시조의 어머..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1> 균형과 조화 ; 세상의 모습은?

아직도 지역균형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이다. 과연 지역균형이 맞으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균형(均衡, balance)이란 상대적 관점에서 양쪽의 크기나 무게를 똑같이 맞추는 것이다. 천칭에 올려놓고 좌우를 맞추듯 저울질(衡)로 양쪽을 똑같이 고르게(均) 하는 것이다. 단순한 계측 세계에서는 인위적으로 균형을 똑같이 맞출 수 있지만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는 힘들고 어렵다. 무리다. 반면에 조화(調和, harmony)란 전반적 관점에서 서로 모두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이다. 수확한 벼(禾)를 여럿이 나누어 먹게끔(口) 하도록(和) 어울리는(調) 것이다. 조화란 일률적으로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나름대로 어울리도록 나뉘는 것이다. 순리다. 균형의 관점에서는 끊임없이 우열의 문제가 발생한다. 한쪽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2> 환경과 생태 ; 전혀 다르다

환경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다. 유사어로 생태가 있다. 과연 비슷한 말일까? 환경은 나를 중심으로 동그란 고리(環)처럼 보이는 경치(境)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이 도는 천동설과 같다. 지구인 나는 가만히 있고 태양은 물론 밤하늘 별과 달들이 움직인다. 하늘은 천막처럼 둥글게 펴져 있는 환경이다. 그렇게 눈으로만 보이는 피상적인 천동설에서 벗어나 지동설이 나왔다. 500여년 전 코페르니쿠스의 대전환이다. 환경이 지구 중심의 천동설이라면, 생태는 지구 중심에서 벗어난 지동설에 가깝다. 생(生)이란 땅(―) 위의 소(牛)처럼 괴로운 모습이 아니라 땅(―)에서 싹(牛)이 나온 아름다운 모습이다. 태(態)란 아무 것도 꿀릴 것 없는 곰(能)의 당당한 마음(心)이다. 능력 능(能)은 곰(能)에서 파생된 뜻이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3> 자연보호와 생태유지 ; 인간이 할 일은?

자연보호라는 말을 숱하게 듣는다. 자연보호가 아닌 생태유지란 도대체 무엇일까? 자연은 환경도 녹색(green)도 아니다. 인간의 인공적 작위가 미치지 않는 원래 스스로(自) 그러한(然) 상태다. 자연은 환경처럼 인간중심적 표현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 중심의 피상적 눈으로 볼 때 인간을 둘러싼 둥그런 환경으로 보인다. 자연보호를 환경보호라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과연 인간은 자연을 보호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하자. 그러면 자연보호라는 말이 얼마나 인간중심의 건방진 말인지 짐작된다. 자연은 노자도덕경의 천지불인(天地不仁)처럼 일부러 어질도록 애써서 인간을 보호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자연을 통해 인간의 생존여건이 다행히 마련되었을 뿐이다. 자연의 생태유지로 인해 우리는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것이다.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4> 촌스럽다와 천박하다; 어떻게 살까?

촌놈, 촌년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촌이 도대체 뭐 어쨌다고 그리 되었을까? 촌(村)은 촌(邨)으로도 쓰인다. 촌을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도시에서 떨어진 마을이나 시골,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이해가 되는 정의이다. 그런데 '성질이나 행동이 야비(野鄙)하다, 즉 저속하고 천하다'는 뜻도 있다. 이런 정의는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촌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인가? 사실 도시에서 메마르게 사는 사람들이 더 그럴 수 있다. 농사짓고 사는 농촌 마을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촌맛은 어머니 맛이며 고향의 맛이다. 농사짓는 사람은 천하의 가장 큰 뿌리(農者天下之大本)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농자들이 사는 곳인 촌이 저속하고 천하다니 말이 되는가? 촌스러움이란 저속하거나 천하다는 뜻의 천박함이 아..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6> 관광과 여행 ; 무엇을 할까?

대학에 관광학과가 많다. 그런데 관광 서비스를 하는 회사는 여행사라 한다. 신라시대에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승려 혜초는 관광을 했을까? 여행을 했을까? 관광이란 한자 뜻 그대로 멋진 풍광(光)을 보는(觀) 것이다. 영어 'sightseeing'이 빛나는 풍광(sight)을 보는(seeing) 것이니 관광의 뜻과 딱 맞는다. 하지만 여행이란 한자 뜻 그대로 나그네(旅)가 되어 가는(行) 것이다. 영어 'travelling'이 이동하며 다닌다는 뜻이니 여행의 뜻과 잘 맞는다. 길든 짧든 정해진 코스를 따라 순회하며 다니는 튜어(tour)가 관광에 가깝다면, 정해진 곳 없이 발닿는 대로 유람하는 트립(trip)은 여행에 가깝다. 프랑스 파리를 갔을 때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뜨 언덕을 하나..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18> 사람과 사랑 ; 두 말의 근원은?

사람과 사랑은 둘 다 순 우리말이다. 받침 하나의 차이지만 서로 아무 연관 없이 들린다. 그러나 둘 사이에 커다란 연관성이 있다. 그 사실을 알면 더 살(?) 맛이 난다. 둘 다 어원이 같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있지만 가장 끌리는 설이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랑은 쌀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쌀을 먹고 사는 몸이 사람이다. 쌀을 먹으면 그 쌀은 살이 되고 몸이 되어 사람이 된다. 살 즉 몸(體)이란 서구의 전통 철학에서는 고귀한 인간의 정신과 분리된 저급한 몸뚱이(肉)에 불과했다. 정신 중심의 철학이다. 정신이란 합리적 이성, 절대적 영혼 등을 포괄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정신과 몸이 서로 통합된 것으로 이해했다. 정신의 기가 몸이라는 이른바 몸철학이다. 얼굴이 그렇다. 정신을 뜻하는 얼의 모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