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9> 푼수와 주책 ; 세 가지 공통점

두 낱말은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니다. 그런데 원래 좋지 않은 의미일까? 푼수는 원래 분수(分數)다. 자기에게 나누어진(分) 수(數)다. 자기에게 나누어진 분수를 지키면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다. 자기에게 8이 주어졌는데 10으로 행동하면 분에 넘치니 분수에 맞지 않는다. 거꾸로 자기에게 10이 주어졌는데도 8로 행동하면 팔푼이니 이 역시 분수에 맞지 않는다. 원래 좋은 의미인 분수가 발음을 바꾸어 부정적 의미로 바뀌었다. 분수를 모르는 푼수가 된 것이다. 주로 여자에게 쓰인다. 여자가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푼수라고 한다. 푼수짓을 하는 여자를 강조하여 푼수쟁이, 푼수덩어리라고도 한다. 주책은 원래 주착(主着)이다. 가장 주요하고 기본적인 주(主)에 딱 달라 붙는(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0> 갈등, 낭패, 모순 ; 새로운 의미

이 낱말들은 부정적 의미가 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긍정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갈등이란 칡(葛)과 등나무(藤)라는 뜻이다. 칡넝쿨과 등나무가 얽히며 자라는 것처럼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꼬여 있는 모양이다. "갈등과 대립으로 분열한다"는 문장에서와 같이 갈등은 분열과 대립이라는 낱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낭패란 중국전설에 나오는 상상속 동물이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은 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두 녀석이 함께 걸으려고 하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쉽고 따로 떨어져도 움직이기 힘들다. "낭패를 본다"는 말은 이리과 동물인 낭과 패가 힘들게 걸으려고 하지만 넘어지는 모습이니 실패했다는 뜻이다. 모순이란 한비자(韓非子)에 나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1> 사실, 현실, 진실 ; 알 수 없는 것은?

세 낱말은 비슷하게 들려도 엄연한 차이가 분명하다. 왜 그럴까? 사실에서 사(事)는 깃발 단 깃대(|)를 손(手)으로 세우고 있는 모양으로 일어난 것을 잊지 않고 적는 일이다. 그러니 사실의 사전 정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현실에서 현(現)은 구슬(玉)이 빛나도록 드러나며 나타나는(見) 것이다. 그러니 현실의 사전 정의는 현재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는 일이나 상태다. 진실에서 진(眞)은 사방팔방(八) 어디에서 보아도(目) 거짓없는 참 모습이다. 그러니 진실의 사전 정의는 거짓없이 정말로 진짜인 것이다. 이렇게 한자로 따져도 비슷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가만히 더 생각하면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 벌어진다. 사실(fact)은 분명하게 보이는 하나의 점(点)이다. 분명하기는 해도 전반적으로 보면 부분적이고 단..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2> 힘과 기 ; 무엇이 먼저일까?

두 낱말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무엇이 먼저 돌아야 무엇이 이어져 솟아 나올까? 힘에 해당하는 한자인 력(力)은 팔에 힘을 주었을 때 근육이 불거진 모양이다. 팔에서 나오는 힘은 사람이나 동물이 스스로 움직이거나 다른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 작용이다. 기(氣)란 딱딱하고 맛없는 쌀(米)을 부드럽고 구수한 밥으로 변화시키는 화(火)의 기()다. 물(水)을 순환시켜 생명을 살아 숨쉬게 하는 자연의 근본 에너지다. 씨앗이 내려진 땅에서 새싹이 나오는 것은 태양과 대지의 원천적 에너지 덕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오관으로 느껴지는 오감은 힘이 아니라 기에서 비롯된다. 우람한 팔뚝근육처럼 힘이 눈에 보이는 작용이라면, 기는 땅의 물을 하늘 구름으로 변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다. 힘 있는 사람은 주로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3> 살과복 ; 살을 줄이려면?

두 낱말은 반대말이다. 우리 인간의 운명이나 운세, 운수는 얼마나 살과 복에 따를까? 살(煞)이란 누구를 치려고(夂) 불(灬)처럼 급히 쫓아가는(刍) 험한 꼴이다. 독한 기운으로 사람을 해치며 죽이는 살(殺)이다. 살은 인간의 사주팔자에서 육십간지 여덟 글자들끼리 음양오행상 서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따지는 명리학(命理學)에서 이 살의 종류는 수십 수백 가지나 된다. 안정되게 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역마살, 남들 앞에서 심한 창피함을 당하는 망신살, 끊으려 해도 끊이지 않는 남녀관계로 불행해지는 도화살, 끝내 허망한 결말을 보게 되는 공망살, 서로 죽일 듯 원망하며 성내고 살게 되는 원진살 등등…. 화(禍) 흉(凶) 액(厄)을 가져오는 살과 달리 복은 길한 운을 가져다 주는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4> 박자와 율동 ; 몸을 들썩이게 하는 건?

리듬은 우리말로 박자일까 율동일까? 비슷하게 들리지만 아주 다르다. 박자(拍子)란 박수 치듯 치는(拍) 것(子)이다. 친다는 의미의 비트(beat)다. 음악에서 박자는 가장 기본이다. 화음(harmony)이 어그러지고 조성(tonality)이 엇갈리는 현대음악이 있지만 박자는 맞아야 그나마 음악이 된다. 뮤지션들은 박자를 정확히 맞추려고 메트로놈을 켜고 연습한다. 아무리 노래를 못 불러도 박자만 맞으면 기본은 한다. 아무리 폼 잡고 불러도 박자가 안 맞으면 박자바보인 박치(拍癡)다. 그런데 박자만 잘 맞으면 우리 몸을 들썩이게 하는 율동이 되지 못하고 그냥 박자만 단조롭게 기계적으로 맞을 뿐이다. 율동이란 손으로 붓을 잡고(律) 흐르듯 움직이는(動) 것이다. 율동은 흐르는 리듬(rhythm)이다. 박자는..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5> 예능과 예술 ; 전락해버린 것

두 낱말 중 하나는 원래의 의미가 온전히 회복되어야 한다. 너무나 타락했기에… . 맥루한은 영상매체인 TV를 쿨미디어, 인쇄매체인 신문을 핫미디어로 나눴다. 뭔 말인지 이해는 되지만 마음에는 안 든다. 그래서 쿨과 핫의 뜻을 내 나름대로 다르게 해석한다. 신문은 내가 맘 잡고 읽어야 읽을 수 있다. 읽으려면 머리를 굴려야 하기에 머리가 데워진다. 그래서 알찬 내용이 담긴 신문은 핫미디어로 독자를 똘똘하게 하는 스마트 미디어다. 반면 TV는 리모컨으로 켜서 쉽게 볼 수 있다. 머리를 안 굴려도 되기에 머리가 차가워진다. 그래서 TV는 쿨미디어다. 쿨미디어는 사람을 띨띨하게 만드는 덜(dull) 미디어다. 바보상자이기 쉬운 TV는 예능의 뜻을 잘못 변질시켰다. 결코 배리어스하지도 리얼하지 않은 버라이어티 리..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6> 운동→스포츠→체육 ; 하나되는 고리

요즘 골프치자며 운동가자고 말한다. 골프가 운동일까, 체육일까? 스포츠일까? 골프에 맛을 들이면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취미와 잡기들을 과감히 버린단다. 골프 약속은 본인 사망 이외에는 꼭 지켜야만 하는 철칙이란다. 정말 그럴까? 얼마 전 골프장에서 풀을 깎는 친구가 골프장 구경을 시켜준다길래 골프장에 난생 처음 가보았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 작품이라는 그림 같은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생태를 해치며 자르고 깎아만든 인공미에 불과했다. 새파란 잔디는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한 그루에 몇 천, 몇 억 원씩 한다는 나무들은 인간이 심은 관상수들이었다. 인공미의 극치미가 골프장이었다. 그런 인공미가 우리 주변의 산에 가면 어디서나 접하는 야생초와 야생목, 야생화..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7> 예의와 경우 ; 무엇이 먼저일까?

두 낱말은 비슷하게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차이가 벌어진다. 순자철학의 핵심인 예(禮)와는 별도로 일상생활에서 예의(禮儀)는 맹자철학의 핵심인 의(義)가 아니라 행동 의(儀)를 쓴다. 그래서 예의란 프랑스 궁중에서의 행동예법이 적힌 꼬리표였던 에티켓(etiquette)처럼 지켜야할 예절의 뜻에 가깝다. 가령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똑바로 하라는 예절 리스트 대로 예의에 따라 행동하면 예의 바른 사람이 된다. 행동준칙이 있는 예의와 달리 경우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다. 경(境)은 어떤 장소인 곳을 뜻하며 우(遇)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니 경우란 우연히 만나게 된 곳으로 원래 의미는 형편이나 사정의 뜻이다. 이런 경우(case)와 저런 경우(case)처럼 흔히 쓰는 말이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장소인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8> 도기, 자기, 사기, 옹기

이들 낱말은 모두 용기(容器)들이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면 재미있고 의미있다. 약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인류는 흙으로 빚어 불에 구운 토기(土器)를 썼다. 질은 밥처럼 질척질척한 질은 흙인 진흙으로 만든 질그릇 토기다. 빗살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에 무늬없는 토기로 바뀌고 이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굽는 온도를 섭씨 1000도 이상 올리고 유약(釉藥)인 잿물을 발라 굽기 시작했다. 그냥 질그릇 토기에 오짓물인 잿물을 발랐으니 오지그릇 도자기다. 도자기(陶瓷器)는 1300도 이하에서 굽는 도기(陶器)와 1300도 이상에서 굽는 자기(瓷器)로 나뉜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자기다. 중국에서 유래한 차이나도 소뼈를 진흙에 넣어 만든 자기다. 자기 중에서 백토로 만들어 희고 매끄러운 그릇이 사기(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