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138

[박종인의 땅의 雜事] 3.대장장이 야이타의 외동딸 와카(若狹), 포르투갈로 시집가다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 악연 500년사②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11 00:00 * 술자리에서 남들 다 아는데 혼자 모르는 낭패감 혹은 혼자만 아는 사실을 떠벌리며 대화를 주도하는 통쾌함. 낭패를 막고 쾌감을 얻는, 알면 재미있고 몰라도 행복한 ‘박종인의 땅의 잡사’ 조선이 쇄국을 고집하는 동안 나이 어린 일본 소년들이 바티칸에서 신을 만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금의환향한 소년들은 히데요시로부터 자랑스럽다는 환대를 받았다. 그들이 환대를 받는 그 순간 조선에서 파견된 관리들은 성리학적 아집과 세계관에 사로잡혀 정세를 읽지 못했다. 일본에 와 있던 세계를 읽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세계는 언제 일본으로 왔는가. 서기 1543년, 정확하게는 1543년 9월 23일이었다. ◇상선의 좌초와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인천 외국인묘지에서 구한말 역사를 만난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인천 외국인묘지에서 구한말 역사를 만난다 262. 인천 외국인묘지 군상(群像) 인천광역시 인천가족공원에 있는 외국인묘지. 맨 왼쪽은 개항기 인천에서 활동했던 미국 상인 타운센드 묘다. 가운데에는 둥근 켈트 십자가는 인천에 성누가병원과 고아원을 만들고 한국 동요를 정리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 엘리 랜디스 묘다. 33세에 죽었다. 군인, 공관 관리, 사업가에서 어린 아이까지 인천외국인묘지에는 멀리는 150년 전 이 땅에 왔던 다양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16 03:00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는 인천가족공원 안쪽에는 외국인묘지가 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인천과 인연을 맺었던 외국인들이 잠든 묘지다. 1914년 중구 북성동에 처음 조성됐다..

[박종인의 땅의 雜事] 4.조선의 하늘 위로 날아간 하얀 공작새

[박종인의 땅의 雜事] 4.조선의 하늘 위로 날아간 하얀 공작새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 악연 500년사③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18 00:00 서기 1543년 9월 23일 일본 권력자들은 대량살상을 너무나도 쉽게 가능케 하는 무기를 습득했다. 권력자는 권력을 더 강력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사무라이들은 유럽 중세 기사들처럼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그날 이후 위계질서로 정교하게 설계돼 있던 천하天下가 파괴되고 지구가 세계世界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천하를 고집하던 나라들은 이후 각도를 달리하며 흐르는 역사에 질질 끌려갔다. 그렇다면 바로 그 무렵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선을 스쳐간 철포 일본이 철포를 얻은 지 12년이 지난 1555년 5월 21일, 비변사가 명종에게 보고했다. “왜..

[박종인의 땅의 雜事] 5.아무도 몰랐던 경복궁 돌덩어리들의 정체

[박종인의 땅의 雜事] 5.아무도 몰랐던 경복궁 돌덩어리들의 정체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 악연 500년사④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18 00:00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 악연 500년사④아무도 몰랐던 경복궁 돌덩어리들의 정체 ◇세종의 신무기 시스템 구축 ‘각 지방 육해군 사령관(절제사와 처치사)에게 문서 한 권을 보낸다. 무기 주조 방식과 화약 사용법이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군국에 관한 비밀의 그릇이다. 항상 비밀히 감추고 하급 관리 손에 맡기지 말라. 임무 교대 때는 이 문서를 직접 인수인계하라.’ 집권한 지 만 30년 한 달 되는 1448년 음력 9월 13일, 조선 4대 군주 세종은 신무기 시스템 구축 완성을 선언했다. 3년 전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 감독 하에 진행해온 군사 프로젝트..

세종이 명했다 “백성에게 폐가 되니 광화문에 월대를 만들지 말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세종이 명했다 “백성에게 폐가 되니 광화문에 월대를 만들지 말라” [박종인의 땅의 歷史] [박종인의 땅의 歷史] 263. 그때 광화문 앞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2021년 6월 21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이다. ‘역사 복원’을 명분으로 앞에 보이는 도로는 이르면 다음 달 ‘조선시대 광화문 월대(月臺)’ 복원 현장으로 바뀔 예정이다. 그 월대가 조선시대에 존재했는지도 불확실하고, 복원할 명분도 불확실하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23 03:00 “오랜 세월 역사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경복궁 앞 월대의 복원은 조선 시대 왕과 백성이 소통하고 화합하던 상징적 공간의 복원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서울시장 오세훈, 2021년 4월 27일 ‘긴급브리핑’) 현 서울시장..

[박종인의 땅의 雜事] 6.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룬 이유에 대하여

[박종인의 땅의 雜事] 6.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룬 이유에 대하여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악연 500년사⑤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25 00:00 조선은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해 실용적으로 사용한 나라였고, 역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해 서적을 대량으로 인쇄한 국가였다. 그 조선에서 자기가 만든 과학기술 사용법을 다 까먹어버리는 참극이 벌어졌다. 성리학 프레임에 매몰된 조선 학자들은 성리학 이외 일체 학문을 그저 성인들이 ‘권계하던 기구’로 쓰고 치워버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악연 500년사⑤ 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룬 이유에 대하여 ◇소 잡기를 일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살우위사(殺牛爲事‧소 잡기를 일삼다)’라는 문장이 ..

[박종인의 땅의 雜事] 5.아무도 몰랐던 경복궁 돌덩어리들의 정체

[박종인의 땅의 雜事] 5.아무도 몰랐던 경복궁 돌덩어리들의 정체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 악연 500년사④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25 00:00 ◇세종의 신무기 시스템 구축 ‘각 지방 육해군 사령관(절제사와 처치사)에게 문서 한 권을 보낸다. 무기 주조 방식과 화약 사용법이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군국에 관한 비밀의 그릇이다. 항상 비밀히 감추고 하급 관리 손에 맡기지 말라. 임무 교대 때는 이 문서를 직접 인수인계하라.’ 집권한 지 만 30년 한 달 되는 1448년 음력 9월 13일, 조선 4대 군주 세종은 신무기 시스템 구축 완성을 선언했다. 3년 전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 감독 하에 진행해온 군사 프로젝트였다. 육군과 해군에 전달된 문서 이름은 총통등록銃筒謄錄이다. 화약 제조법과 화..

[프리미엄][박종인의 땅의 雜事] 6.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룬 이유에 대하여

[프리미엄][박종인의 땅의 雜事] 6.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룬 이유에 대하여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악연 500년사⑤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25 00:00 조선은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해 실용적으로 사용한 나라였고, 역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해 서적을 대량으로 인쇄한 국가였다. 그 조선에서 자기가 만든 과학기술 사용법을 다 까먹어버리는 참극이 벌어졌다. 성리학 프레임에 매몰된 조선 학자들은 성리학 이외 일체 학문을 그저 성인들이 ‘권계하던 기구’로 쓰고 치워버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악연 500년사⑤ 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룬 이유에 대하여 ◇소 잡기를 일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살우위사(殺牛爲事‧소 잡기를 일삼다)’라..

김원웅 광복회장 부친의 ‘독립운동 공훈 기록’ 허위 의혹

김원웅 광복회장 부친의 ‘독립운동 공훈 기록’ 허위 의혹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6.25 03:00 김원웅 광복회장의 선친 김근수씨의 독립운동 공훈 기록이 허위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보훈처 공훈 기록에는 김근수씨가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고 1992년 1월 작고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부가 1963년 ‘광복군 출신 김근수’씨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할 당시 공적조서에 김근수씨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회장 본인도 각종 인터뷰에서 1963년부터 1990년까지 선친이 포상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보훈처 '1963년 대통령표창 김근수(金根洙) 공적조서'. 오른쪽 위 '생존작고'란에 '作故'(작고)라고 적혀 있다. /조수..

대자보에 폭발한 광기, 왕은 죄인 머리를 깃대에 매달라 명했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264. 1755년 남대문에서 폭발한 영조의 광기(狂氣) 서울 숭례문 아래 홍예문 천정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용은 왕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한다. 영조 때는 이 남대문 앞에서 역적 처형식이 열리곤 했다. 1755년 여름에 벌어진 처형은 권력 콤플렉스와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던 영조의 광기가 적나라하게 폭발한 사건이었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1.07.07 03:00 복잡다기한 영조의 콤플렉스 경종이 즉위하고 1년 두 달이 지난 1721년 8월, 당시 여당인 노론은 야밤에 궁으로 들어가 경종에게 “후사를 기대하지 말고 이복동생 연잉군을 왕세제로 택하라”고 요구했다. 경종은 그들 뜻대로 연잉군을 차기 왕으로 선택했다.(1721년 8월 20일 ‘경종실록’) 두 달 뒤 노론은 경종에게 본인은 물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