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874

[분수대] 도쿄지검, 서울지검[출처: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영감’이 검찰에 연행됐습니다.” 1976년 7월 27일 오전 6시 30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비서가 ‘다나카 파벌’ 회장인 니시무라 에이이치 전 국토교통상에게 급보를 타전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기습적으로 다나카 전 총리의 신병을 확보한 직후였다. 전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다나카 전 총리는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 구속, 기소된 뒤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일본 검찰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순간이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후에도 성역 없는 수사를 계속하면서 절대적인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한국의 많은 검사도 그 조직을 전범(典範)으로 삼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처럼 보였다. 정권에 빌붙어 권세를 유지하던..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호남 검사[출처: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2002년 5월 16일의 늦은 밤,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1102호 특별조사실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한쪽에는 청년 시절의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맞은 편에는 임상길 당시 특수2부 부부장 검사가 자리했다. 김 의원, 아니 당시만 해도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로 불렸던 그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조사받던 중이었다. 주임 검사였던 임 부부장은 꼬박 이틀 동안 원칙대로 홍걸씨를 수사한 끝에 36억원의 불법 자금 수수 혐의로 그를 구속했고, 김대중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임 부부장은 김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목포 출신이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한동안 검찰은 호남 검사들의 독무대였다. 검찰총장, 서울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등 고위직뿐 아니라 알짜 차장, ..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인간의 본성[출처: 중앙일보]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데카메론』은 14세기 페스트를 피해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로 피신한 남녀 10명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다. 조반니 보카치오라는 작가 이름은 알지만 이 책을 실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영역(英譯)본을 옮긴 ‘이중 번역’이 아니라 이탈리아어판을 우리말로 옮긴 완역본이 나온 게 2012년이니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완역본 분량은 총 세 권, 1400페이지에 달한다. 두께에 비해 페이지를 넘기는 게 어렵진 않다. 670년 전에 쓴 글이지만 현대인이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요즘 윤리관념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노골적인 내용도 적지 않다. 『데카메론』을 단테의 신곡(神曲)에 비견해 ‘인곡(人曲)’으로 부르는 건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어서다. 산문 자체로도 뛰..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남산[출처: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남산입니까, 육본(육군본부)입니까.”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 마지막 대사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은 그 말을 곱씹는다. 주인공 이병헌(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이 육본 대신 남산으로 향했다면, 세상은 바뀌었을까. 영화관을 나서면서도 계속 그 생각이다. 그리고 그 끝은,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는 입소문을 타면서 열흘 만에 4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남산(南山). 전국 어디에나 있다. 서울, 경주, 삼척, 충주, 괴산에 남산이 있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에 남산동(洞)이 있다. 서울, 대전, 창원, 천안, 김천, 강릉에 남산공원이 있다. 남향을 선호하는 문화에서 앞산은 다 남산일 수밖에. 그래도 대표주자는 서울 남산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조선 태조..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자객[출처: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사마천의 『사기』 ‘열전’ 권86은 다섯 인물 이야기다. ▶비수를 들고 제환공을 위협한 조말(曹沫), ▶생선 뱃속에 숨긴 비수로 오왕 요를 죽인 전제(專諸), ▶주군 지백의 복수를 위해 두 차례나 조양자를 습격한 예양(豫讓), ▶엄중자를 위해 한나라 재상 협루를 살해한 섭정(聶政), ▶연나라를 위해 진시황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형가(荊軻) 등이다. 공통점은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이려 한 점이다. 권86의 제목은 ‘자객열전’(刺客列傳)이다. 자객은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사마천도 책 제목에 붙일 만큼 유구한 역사의 단어가 4·15총선 길목에 등장했다. 이른바 ‘자객 공천’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이 19일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서울 광진을에 ..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전문가[출처: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중국 현대사를 홍(紅)·전(專) 전환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 홍은 사상과 이념이 득세하던 시기를, 전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전문가들이 힘을 얻은 시기를 말한다. 전자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후자는 백화제방이나 류사오치(劉少奇)의 실용주의 개혁이 대표한다. 홍·전의 경쟁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선언 이후 전의 최종 승리로, ‘역사의 종말’을 맞은 듯 보였다. 하지만 최근 잊혔던 홍이 부활하는 국면을 맞고 있다. 요직이 전문성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개인과 ‘시진핑 사상’에 대한 충성심의 정도에 따라 배분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대응이 엉망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모리셔스를 위한 변명[출처: 중앙일보]

한애란 금융팀장 인간에 의해 멸종된 최초의 종. ‘도도새’에 따라붙는 설명이다. 아프리카의 한 무인도에 살던 이 새는 16세기 유럽에서 온 선원에 의해 발견됐다. 도도는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몸무게 25㎏ 뚱보새는 날지도 못했다. 선원들이 붙인 ‘도도’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어로 ‘바보’란 뜻이다. 선원들은 도도새를 마구 잡아먹었다. 발견된 지 150여 년 만인 1663년 도도새는 멸종되고 말았다. 도도새가 살았던 그 무인도가 바로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다. 수년 전 가봤던 모리셔스는 넘실대는 사탕수수 꽃무리 물결이 아름다운 관광지였다. 제주도만한 크기의 이 섬엔 ‘여행자의 낙원’ ‘아프리카의 백조’라는 낭만적 별칭이 따라 붙는다. 아름다운 해변과 이국적 경치, 고급 리조트로 한국 신혼여..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속간(束桿)[출처: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묶을 속(束), 볏짚 간(桿). 볏짚을 묶었으니 볏단쯤으로 보면 될까. 간(桿)에는 그 밖에도 ▶막대기 ▶난간 ▶쓰러진 나무 ▶방패 등 다양한 뜻이 있다. 특히 속(束)과 함께 쓰면 특별한 뜻이 된다. 속간은 라틴어 ‘fasces’(파스케스)의 한자어(일본식 한자어지만, 국내에서도 중국식 한자어 속봉(束棒) 대신 속간을 씀)다. 라틴어로 ‘묶음’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느릅나무·자작나무·박달나무 등의 막대기 여러 개를 붉은 가죽띠로 묶었다. 이때 막대기 사이에 날을 세운 도끼를 끼워 넣었다. 이것이 속간(파스케스)이다. 당시 집정관이나 법무관, 독재관 등의 권위를 상징했다. 그들 앞에서 수행원(릭토르)이 속간을 들고 가는 모습은 고대 로마를 그린 영화에도 종종 나온다. 로마 제국..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징비록을 읽다[출처: 중앙일보]

한애란 금융팀장 \1592년 임진왜란 초기 일이다. 순변사 이일은 상주에서 머물며 군대를 조직했다. 저녁 무렵, 개령 사람 하나가 와서 “적이 코 앞에 왔다”고 알렸다. 이일은 “거짓으로 민심을 현혹시킨다”며 그의 목을 베려 했다. 그러자 그는 “내일 아침에도 적이 오지 않으면 그때 죽이라”라고 말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이일이 “아직 적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며 그의 목을 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총을 앞세운 적의 공격이 시작됐다. 이일은 적을 피해 옷도 벗어던진 채 달아나야 했다. 선조가 평양으로 피난해있을 때다. 임금이 곧 평양을 버릴 거란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이 도망가 마을이 텅 비었다. 임금은 세자를 시켜 평양을 지킬 것임을 전하게 했다. 백성들은 믿지 않았다. 다음날 할 수 없이 임금이 대..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텔레그램[출처: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미국 화가 겸 발명가 새뮤얼 핀리 브리즈 모스(1791~1872)는 1825년 워싱턴DC 머물고 있었다. 하루는 고향(뉴헤이번)에서부터 말을 타고 온 전령사한테 편지 한 통을 건네받았다. “아내가 위독하다”고 적혀 있었다. 곧장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편지가 그에게 닿기 이틀 전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도 그가 집에 도착하기 7일 전 끝났다. 그는 ‘먼 곳에 빨리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모스 전신기가 탄생했다. 1844년 워싱턴DC와 볼티모어 간 세계 최초의 전신이 개통됐다. 그는 워싱턴DC에서 볼티모어의 동업자 앨프리드 루이스 베일(1807∼1859)에 첫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What Hath God Wrought(신은 무엇을 만드셨는가).”..

분수대 202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