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874

[분수대] 불환빈 환불균[출처: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네덜란드 출신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 미국 에모리대 교수 등은 과학 저널 ‘네이처’ 2003년 9월호에 ‘원숭이가 불공정한 보상을 거부했다’는 제목의 실험 논문을 발표했다. 서로 다른 쪽을 볼 수 있는 우리 속에 갈색 긴꼬리원숭이를 한 마리씩 넣고 같은 일(토큰 가져오기)을 시켰다. 수행에 대한 보상으로 똑같이 오이를 줬다. 둘 다 잘 받아먹었다. 이어 같은 일에 대해 서로 다르게 보상했다. 먼저 한쪽에는 포도를, 이어 다른 한쪽에 그대로 오이를 줬다. 포도를 기대했다가 오이를 받은 쪽은 먹지 않거나 심지어 던져버렸다. 드 발 등은 “인간만이 불평등을 혐오하는 건 아닐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실험에 대한 다른 해석도 있다. 미국 출신 발달심리학자 마이클 토마셀로 독일 막스 플랑..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F.M.[출처: 중앙일보]

강기헌 산업1팀 기자 2007년 10월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 김장수 국방부장관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면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사진이 공개되자 김 장관에겐 ‘꼿꼿장수’란 별명이 붙었다. 바로 옆에서 허리를 숙여 악수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사진과 비교되면서 그에게 박수를 보낸 국민이 많았다. 꼿꼿장수는 매뉴얼이 만들었다. 한국군 야전교범 ‘경례 및 예절’ 규정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흔들어 아첨하거나 비굴해 보이는 듯한 저자세 악수 방법을 삼가야 한다. 손은 약간 힘을 주고 가볍게 잡고 상대방의 눈을 마주 보며 자연스럽게 교환해야 하며 손을 너무 흔들거나 두 손을 쥐는 것은 실례가 된다.” 김 장관은 야전교범을 그대로 따랐다. 한국군 야전교범..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해트트릭[출처: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양궁 강국 한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신궁’(神弓)의 나라다. 서진(西晉)의 진수(233~297)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고구려의 ‘맥궁’(貊弓)이 나온다. 좋은 활이 나고 활을 잘 쏜다는 거다. ‘대륙도 인정한 신궁’의 근거로 이 대목을 많이 인용한다. 신궁이 한반도에만 있을 리 없다. 중국 신궁의 대표 인물은 북주(北周)와 수당 시대에 외교가로 활약한 장손성(552~609)이다. 그가 돌궐에 사신으로 갔을 때 왕 사발략과 사냥을 나갔다. 하늘에서 독수리 두 마리가 먹이를 두고 싸우고 있었다. 사발략은 화살 두 대를 주며 두 마리를 모두 맞혀보라 했다. 장손성은 한 대를 쏴 두 마리를 꿰뚫어 버렸다. 화살 하나로 새 두 마리, 일전쌍조(一箭雙鳥)다.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유래..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인간의 본성[출처: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묵자(墨子)를 시조로 하는 묵가(墨家)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집단들인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비주류에 속한다. 묵가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선택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사상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2000여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힙’하고, ‘쿨’했다. 핵심은 겸애(兼愛), 즉 남녀노소나 존비귀천 또는 친소의 구분 없이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의 가치를 강조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의 원조이기도 했다. ‘이유 없는 부귀’(無故富貴)로 표현한 불로소득을 죄악시했고, 기회의 균등과 공평 및 정의를 중시했다. 문제는 실행이 어려웠다는 점. 묵가 사상의 성취는 고생과 인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거친 무명옷을 입고, 짚신과 나막신을 ..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부실수사[출처: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부실수사 때문에 검사들이 가장 많이 ‘다친’ 사건은 아마도 ‘이용호 게이트’일 것이다. 이용호씨의 이름은 2001년 여름 내내 서초동 법조타운의 몇몇 기자실 칠판에 ‘엠바고’(보도유예)라는 설명과 함께 나붙어있었다. 엠바고 설정 주체는 대검 중수부였다. 금융 사기꾼 한 명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중수부는 소 잡는 칼을 넘어 코끼리 잡는 칼 수준이었다. 하지만 업무에 치여 살던 법조기자들에게 엠바고 사건의 뒷배까지 캘 여력은 없었다. 기자들이 바빠지기 시작한 건 그해 가을, 시원치 않은 보도자료 한 장만 남긴 채 수사가 마무리된 이후였다. 이씨 뒤에 뭔가 있다는 소문이 스멀스멀 퍼져나가더니 그해 5월 이미 이씨가 한 차례 긴급체포됐다가 석연치 않게 석방됐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렇게 촉발..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무화과와 말벌[출처: 중앙일보]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생무화과를 맛보는 건 소박한 행복이었다. 할아버지 댁 앞마당에서 자라던 무화과는 추석을 전후로 특유의 색을 뽐내며 익었다. 당(糖)을 이겨내지 못해 터진 무화과엔 여지없이 벌레들이 들러붙었는데 수확 시기를 잘 맞춰 따낸 무화과도 사흘이면 먹기 힘들 정도로 물러졌다. 까탈스러운 과일인 탓에 20년 전만 해도 생무화과를 맛봤다는 이를 주변에서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다. 무화과나무를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 수확 시기도 8월로 당겨졌다. 흔한 과일이 된 것이다. 무화과는 호불호가 명확한 과일이다. 이 무렵 노지에서 수확한 무화과를 베어 물면 특유의 달짝지근한 냄새와 씁쓸한 풀맛이 입안에서 동시에 퍼진다. 이어 작은 알갱이가 씹히는 혼란스러운 식감이 이어지는데 이를 싫어하는 이도 ..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김철호 기아차 창업자[출처: 중앙일보]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전 임직원에게 보낸 취임 메시지에서 뜻밖의 이름을 언급했다. 정 회장은 지금의 현대차그룹이 있기까지 임직원의 노력을 떠올리며 할아버지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김철호 회장을 언급했다. 고(故) 김철호 회장은 기아자동차의 창업자다. 1944년 경성정공을 설립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명은 이후 기아산업으로 바꿨다. 굳이 따지자면 현대차(1967년 설립), 쌍용자동차(1955년 설립)보다 역사가 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다. 기아차는 1997년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현대차에 인수됐다. 이전까지 마쓰다·푸조·피아트 같은 해외 완성차를 조립 생산했고, 5공화국 정부의 ‘자동차 ..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사모펀드[출처: 중앙일보]

강기헌 산업1팀 기자 15분. 미국 최고의 자선사업가와 최고 재벌이 탄생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1901년 2월 25일,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자신이 일군 철강 회사를 J. P. 모건에게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당시 돈으로 4억8000만 달러에 달했다. 변호사도 배석하지 않았던 이날 계약으로 두 사람의 악수를 끝으로 15분 만에 끝났다. 카네기는 이렇게 번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 두 거인의 악수는 세계 최초 PE 거래로 기록됐다. PE(private equity)는 장외시장에서 비상장 기업이 발행한 증권에 투자하는 자본을 말한다. PE와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사모자본시장의 주축이다. 사모펀드는 수입품이다. IMF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국내에 관련 제도가 도입됐다. 글로벌 사모..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실손보험[출처: 중앙일보]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위험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래서 탄생한 인류의 오랜 발명품이 보험이다. 기원전 1750년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엔 ‘해상보험’ 제도가 기록돼있다. 무역하는 사람은 항해에 앞서 자금을 빌리고, 항해 도중 사고로 배가 침몰하거나 짐을 약탈당하면 그 돈을 갚지 않아도 됐다. 대신 무사히 항해를 마치면 원금과 함께 이익금을 돌려줬다. 인간의 필요는 새로운 보험을 만들어냈다. 1666년 9월 영국 런던의 빵공장에서 시작된 불길이 4일간 이어지며 런던 시내가 초토화됐다. ‘런던 대화재’ 사건이다. 이후 1681년 세계 최초의 화재보험이 탄생했다. 여러 보험 중에서도 실손의료보험은 한국적인 필요를 담은 독특한 상품이다. 병원비 중 국민건강보험 적용 뒤 본인이 부담하는 비..

분수대 2021.01.27

[분수대] 난(亂)[출처: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亂’(난)이라는 한자(漢字)는 역사가 깊다. 고대 청동기 등에 새겨진 금문(金文)에서도 발견될 정도다. 그때는 글자 모양이 사뭇 달랐다. 한자 전문가인 하영삼 경성대 교수에 따르면 이 글자의 금문은 위와 아래에 손이 하나씩 있고, 그 가운데에 실패를 단단히 묶고 있는 실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제대로 꼬여버린 실을 사람이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다시 말해 복잡하고 혼란한 양상을 표현한 것이다. 한 포털사이트의 디지털 자전(字典)에는 이 한자의 뜻이 여러 개 등장하는데 그 중 첫머리에 오른 건 ‘어지럽다’다. 뒤이어 ‘손상하다’, ‘음란하다’, ‘무도하다’, ‘포악하다’ 등 긍정적이지 않은 뜻들이 뒤를 잇는다. 물론 반란·민란·왜란·호란 등의 용례로 익숙한 ‘난리’의 뜻도 있다. 검사..

분수대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