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508] 비서십원 (悲誓十願)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 중 '비서십원(悲誓十願)'이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다짐한 열 가지 바람이다. 첫째, 모든 사람이 편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願一切人安樂). 나만 좋고 나만 잘 살면 무슨 재미인가? 다 같이 기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둘째,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한다(願一切人離苦). 자잘한 근심과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웃으며 함께 한세상을 건너갔으면 싶다. 셋째,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願難行能行). 진실을 위해 낸 용기가 짓밟히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넷째,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릴 수 있었으면 한다(願難捨能捨). 아깝지만 버려야 할 것들을 잘 가려내는 지혜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다섯째,..

[정민의 世說新語] [507] 자경팔막 (自警八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앞 글에 이어 선유문(善誘文)의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 중 자경팔막(自警八莫)을 소개하겠다. 스스로 경계로 삼아야 할 여덟 가지 해서는 안 될 일의 목록이다. 첫째, 심념막망상(心念莫妄想)이다. 마음의 생각은 망상을 하지 말라. 염(念)은 콕 박혀 안 떠나는 생각이고 상(想)은 퍼뜩 떠오른 생각이다. 망상은 망령된 생각, 즉 헛생각이나 개꿈이다. 사람은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상념은 마음에 찌꺼기와 얼룩을 남긴다. 사려(思慮)를 깊게 해서 마음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자. 둘째, 광음막한과(光陰莫閑過)이다. 세월은 일없이 보내지 말라. 아까운 세월을 어찌 빈둥거리랴. 긴 인생의 몇 십 년을 하는 일 없이 보낸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없다. 셋째, 명리막탐구(名..

[정민의 世說新語] [506] 대치십상 (對治十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선유문(善誘文)의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 중 '대치십상(對治十常)', 즉 놓인 처지나 상황에 따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열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부귀하게 살 때는 늘 곤궁한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居富貴常憐窮困).' 나도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때 내 심정은 어땠나? 이 마음을 간직하면 부귀가 나를 해치지 못한다. 둘째, '즐거운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재앙과 화근을 염려한다(受快樂常恐災禍).' 지금 기쁘고 즐거워도 이것이 느닷없이 변해 재앙과 화근을 가져올지 모른다. 즐거움을 아끼자. 셋째, '현재는 늘 이만하면 족하다고 마음먹는다(見在常生知足).' 이만하면 됐다. 그래도 다행이다. 꿈마저 버리지는 말고. 넷째, '미래는 늘 경계하고 두려워할 것을 생각한다(未來常思..

[정민의 世說新語] [505] 염취박향 (廉取薄享)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 1633~1687)의 집안은 부귀가 대단하고 자손이 많았다. 입춘첩(立春帖)에 '만사여의(萬事如意)'란 글이 나붙었다.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이를 보고 말했다. "이 입춘첩을 쓴 것이 누구냐? 사람이 세상에 나서 한두 가지도 마음먹은 대로 하기가 어려운데,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이루게 해달라니, 조물주가 꺼릴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집안이 장차 쇠망하겠구나!" 얼마 후 수난을 당하고 유배를 가서 그 말대로 되었다. 호안국(胡安國)이 말했다. "집안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이 일마다 뜻대로 되는 것이다. 일은 늘 부족한 곳이 있어야 좋다. 일마다 뜻에 흡족하면 문득 좋지 않은 일이 생겨나는 것을 여러 번 시험해 보았다...

[정민의 世說新語] [504] 처세십당 (處世十當)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초연거사육법도(超然居士六法圖)'에 '처세십당(處世十當)', 즉 처세에 있어 마땅히 갖춰야 할 열 가지 태도를 제시했다. 첫째는 습기당제(習氣當除)다. 습기는 오래도록 되풀이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젖어든 좋지 않은 버릇이다. 무의식중에 되풀이하는 좋지 않은 버릇은 끊어 제거해야 한다. 둘째는 심행당식(心行當息)이다. 마음과 행실은 차분히 내려놓아야 한다. 바쁘게 열심히 살더라도 가라앉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제악당단(諸惡當斷)이다. 나쁜 생각, 악한 행동, 못된 습벽은 단호하게 결단해서 딱 끊어야 한다. 넷째는 중선당행(衆善當行)이다. 좋은 말을 하고 착한 일을 하며 남과 나누는 삶을 산다. 내가 해서 기쁘고 상대가 받아 즐거울 일을 하나씩 실행에 옮긴..

[정민의 世說新語] [503] 약교지도 (約交之道)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비의 처소에 손님이 왔다. 거침없는 담론이 시원시원해서 유비가 넋을 놓고 들었다. 제갈량이 불쑥 들어서자, 손님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객에 대한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제갈량이 대답했다. "제가 손님을 잠깐 살펴보니, 낯빛이 흔들리고 마음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습니다. 시선을 내리깔고 곁눈질도 자주 하더군요. 삿된 마음을 안으로 감추고는 있지만 간사한 형상이 이미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틀림없이 조조가 보낸 자객일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유비가 급히 사람을 보내 그를 잡아오게 했다. 그는 벌써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난 뒤였다. '언행휘찬(言行彙纂)'에 나온다. 명나라 왕달(王達)은 '필주(筆疇)'에서 약교지도(約交之道), 즉 교유를 맺는 방..

[정민의 世說新語] [502] 선담후농 (先淡後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당지계(唐志契)가 '회사미언(繪事微言)'의 '적묵(積墨)' 조에서 먹 쓰는 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가는 먹물을 포갤 줄 알아야 한다. 먹물을 진하게도 묽게도 쓴다. 어떤 경우는 처음엔 묽게 쓰고 뒤로 가면서 진하게 한다(先淡後濃). 어떤 때는 먼저 진하게 쓰고 나서 나중에 묽게 쓴다. 비단이나 종이 또는 부채에 그림을 그릴 때 먹색은 옅은 것에서 진한 것으로 들어가야 한다[由淺入濃]. 두세 차례 붓을 써서 먹물을 쌓아 나무와 바위를 그려야 좋은 그림이 된다. 단번에 완성한 것은 마르고 팍팍하고 얕고 엷다. 송나라와 원나라 사람의 화법은 모두 먹물을 쌓아서 그렸다. 지금 송·원대의 그림을 보면 착색을 오히려 7~8번씩 해서 깊고 얕음이 화폭 위로 드러난다. 지금 사람은..

[정민의 世說新語] [501] 초화계흔 (招禍啓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가 자신을 경계하여 쓴 '자경(自警)'이다. "아아, 이 내 몸을 묵묵히 돌아보니, 성품 본시 못난 데다 습성마저 게으르다. 속은 텅 비었는데, 어느새 늙었구나(于嗟儂, 默反躬. 性本憃, 習以慵. 中空空, 奄成翁). 입은 아직 뚫려 있고 혀도 따라 움직여서, 아침저녁 밥을 먹고 쉼 없이 말을 한다. 가슴 속을 펴 보여 되는 대로 내뱉는다(口尙通, 舌則從. 飧而饔, 語不窮. 發自胷, 出多衝). 공부를 버려두고 경계하지 않는다면, 나중엔 두려워서 용납될 곳 없으리니, 어이해 틀어막아 그 끝을 잘 마칠까(縱着工, 罔愼戎. 後乃?, 若無容. 曷以壅, 曁厥終)?" 또 '자식들을 타이르고 또 스스로 반성하다(警兒輩 又以自省)'에서는 이렇게 썼다. "저기 저 새..

[정민의 世說新語] [500] 좌명팔조 (座銘八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새해의 다짐 삼아 송나라 청헌공(淸獻公) 조변(趙抃)의 좌우명 중 8자로 된 8조목을 소개한다. '선유문(善誘文)'에 나온다. 첫째는 "일에 무심해야 마음에 일이 없다(無心於事, 無事於心)"이다. 일을 건성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욕심 없이 하라는 말이다. 담담하고 무심하게 일에 임하니 집착이나 번뇌가 사라진다. 둘째는 "여러 가지 나쁜 말을 듣더라도 바람이나 메아리쯤으로 여긴다(聞諸惡言, 如風如響)"이다. 남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칭찬을 들을지 욕을 먹을지보다,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을 앞세우라. 셋째는 "남이 혹 부족해도 인정으로 품어주어야 한다(人有不及, 可以情恕)"이다. 남이 내 기대에 못 미친다고 갑질을 하며 못살게 군다..

[정민의 世說新語] [499] 작관십의 (作官十宜)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진록(陳錄)이 엮은 '선유문(善誘文)'에 공직자가 지녀야 할 열 가지 마음가짐을 적은 '작관십의(作官十宜)'란 글이 있다. 첫째는 '백성의안(百姓宜安)', 즉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위정자는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어 다른 생각 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형벌의생(刑罰宜省)'이다. 법 집행의 엄정함을 보여주되 형벌은 백성의 편에 서서 덜어줄 것을 생각한다. 셋째는 '세렴의박(稅斂宜薄)'이다. 세금은 과도하게 거두지 않아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넷째는 '원억의찰(冤抑宜察)'이다. 혹여 백성이 억울하고 원통한 경우를 당하지는 않는지 꼼꼼히 살펴 세상과 정치에 대해 분노를 품지 않도록 배려한다. 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