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478] 폐단구함 (弊簞救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태순(朴泰淳·1653~1704)의 시 '지감(志感)'에 나오는 네 구절이다. "평온하다 어느 날 가파르게 변하니, 수말 네 마리가 재갈 풀고 횡으로 달리는 듯. 재목 하나로 큰 집 기움 어이해 지탱할까? 구멍 난 광주리론 염전 소금 못 구하리(康莊何日變巉巉, 四牡橫奔又失銜. 一木豈支大廈圮, 弊簞未救塩池鹹)." 이제껏 탄탄대로를 밟아 평탄하게 지내왔다.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자 인심이 가파르고 각박하다. 힘 넘치는 수말 네 마리를 나란히 매어놓고 채찍질해 큰길을 내달리는데, 재갈마저 물리지 않아 제동 장치가 없는 형국이다. 미친 듯이 내닫다가 끝에 가서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큰 건물이 기우뚱 기울었으니, 재목 하나로 받쳐 지탱코자 한들 될 일이겠는가? 염전에서 소금을 구워 담..

[정민의 世說新語] [477] 능내구전 (能耐久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말했다. "공부함에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래 견딜 수 없다면 아주 작은 일조차 해낼 수가 없다(爲學最怕不能耐久, 不能耐久, 小事做不得)." 김규오(金奎五·1729~ 1791)는 또 '외암홍공행장(畏菴洪公行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근심은 흔히 괴로움을 능히 견뎌내지 못하는 데 있다. 한번 근심이 있게 되면 문득 여기에 얽매여 동요하고 만다. 그러니 그 사생과 화복에 있어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吾輩之患, 多在於不能耐苦. 一有憂穴, 便被膠擾, 其於死生禍福, 如何處得)?" 김윤식(金允植·1835~1922)의 '감람(橄欖)' 시는 이렇다. "푸릇푸릇 소금에 절인 흔적 약간 띠어, 가만히 씹어 보자 맛있는 ..

[정민의 世說新語] [476] 수도동귀 (殊塗同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배울 것을 배우고 배워서 안 될 것을 안 배워야 잘 배운 것이다. 진후산(陳后山)이 '담총(談叢)'에서 말했다. "법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라 반드시 배워야 하고, 교묘함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니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法在人故必學, 巧在己故必悟)." 나가노 호잔(豊山長野·1783~1837)이 '송음쾌담(松陰快談)'에서 이렇게 부연한다. "법(法)과 교(巧), 이 두 가지 공부는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 대개 법은 사우(師友)가 곁에서 탁마(琢磨)하지 않으면 법도를 얻어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반드시 배워야 한다. 하지만 운용의 묘는 나의 한마음에 달린 것이므로 스스로 얻어야지 남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배울 것은 배우고 깨달을 것은 깨달..

[정민의 世說新語] [475] 거년차일 (去年此日)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벗들이 어울려 놀며 질문에 대답을 못 하면 벌주를 마시기로 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지난해 오늘(去年此日)은 어떤 물건인가?" "지난해는 기유(己酉)년이고 오늘은 21일이니, 식초[醋]일세." 그는 벌주를 면했다. 이십(卄) 일(一) 일(日)을 합치면 석(昔)이고, 닭띠 해는 유(酉)라 합쳐서 초(醋)가 되었다. 청나라 유수(鈕琇)의 '고잉(觚賸)'에 나온다. 일종의 파자(破字) 놀이다. 글을 읽다가 문득 지난해 오늘 나는 뭘 하고 있었나가 궁금해졌다. 일기를 들춰보니 여전히 논문을 들고 씨름 중이다. 이학규(李學逵)가 3월 말일에 쓴 '춘진일언회(春盡日言懷)' 시는 이렇다. "지난해 이날엔 봄이 외려 끝났더니, 올해의 오늘은 사람 아직 안 왔다네. 어이해야 이 마음을 얼마..

[정민의 世說新語] [474] 천상다사(天上多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진계유(陳繼儒)는 최고의 편집자였다. 당나라 때 태상은자(太上隱者)란 이가 적어두었다는 옛 신선들의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를 모아 '향안독(香案牘)'이란 책을 엮었다. 꿉꿉한 장마철에 싱겁게 읽기 딱 좋아 몇 가지 소개한다. 백석생(白石生)이란 이는 신선의 양식이라 하는 백석(白石)을 구워 먹고 살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천상으로 올라가지 않는 겁니까?" 그가 웃으며 말했다. "천상에는 옥황상제 받드는 일이 너무 많아 인간 세상보다 더 힘들어요." 당시에 사람들이 그를 은둔선인(隱遁仙人)이라 불렀다. 황안(黃安)은 너비가 석 자쯤 되는 신령스러운 거북 등에 앉아 있었다. 이동할 때는 거북을 등에 지고 갔다. 그가 말했다. "복희씨(伏羲氏)가 처음..

정민의 世說新語] [473] 형범미전 (荊凡未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서주(西周) 시절 이야기다. 초왕(楚王)과 범군(凡君)이 마주 앉았다. 초왕의 신하들이 자꾸 말했다. "범은 망했습니다." 망한 나라 임금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세 번을 거듭 얘기하자 범군이 말했다. '범나라는 망했어도 내가 있지 않소. 범나라가 망해도 나의 실존을 어쩌지 못한다면 초나라가 존재함도 그 존재를 장담치 못할 것이오. 이렇게 보면 범은 망한 적이 없고, 초도 있은 적이 없었소.' '장자'의 '전자방(田子方)'에 나온다. 있고 없고, 얻고 잃고는 허망한 것이다. 있다가 없고, 잃었다가 얻는 것이 세상 이치다.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고, 잃었어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사람들은 잠깐의 존망에 안절부절못하며, 옳고 그름보다 득실만 따진다. 송준길(宋浚吉)이 ..

[정민의 世說新語] [472] 세척진장(洗滌塵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내가 다산초당의 달밤을 오래 마음에 품게 된 것은 다산이 친필로 남긴 다음 글을 읽고 나서부터다. "9월 12일 밤, 나는 다산의 동암(東菴)에 있었다. 우러러 하늘을 보니 아득히 툭 트였고, 조각달만 외로이 맑았다. 남은 별은 엳아홉을 넘지 않고, 뜨락은 물속에서 물풀이 춤추는 듯하였다. 옷을 입고 일어나 나가 동자에게 퉁소를 불게 하자 그 소리가 구름 끝까지 울려 퍼졌다. 이때에는 티끌세상의 찌든 내장이 말끔하게 씻겨 나가 인간 세상의 광경이 아니었다(九月十二之夜, 余在茶山東菴. 仰見玉宇寥廓, 月片孤淸, 天星存者, 不逾八九. 中庭藻荇漪舞. 振衣起行, 令童子吹簫, 響徹雲際. 當此之時, 塵土腸胃, 洗滌得盡. 非復人世之光景也)." 눈썹달이 떠오른 초당의 어느 날 밤 풍경이다. 맑..

[정민의 世說新語] [471] 양비근산 (兩非近訕)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홍문관에서 학을 길렀다. 숙직하던 관원이 학의 꼬리가 검다 하자 다른 이가 날개가 검다고 하는 통에 말싸움이 났다. 늙은 아전을 심판으로 불렀다. "저편의 말씀이 진실로 옳습니다. 하지만 이편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彼固是, 此亦不非)" 무슨 대답이 그런가 하고 더 시끄러워졌다. 대답이 이랬다. "학이 날면 날개가 검고, 서 있으면 꼬리가 검지요." 학의 검은 꼬리는 실제로는 날개의 끝자락이 가지런히 모인 것이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다들 우스워서 데굴데굴 굴렀다. 예전 사마휘(司馬徽)가 형주(荊州)에 살 때 이야기다. 유표(劉表)가 어리석어 천하가 어지러워지겠으므로 그는 물러나 움츠려 지내며 스스로를 지킬 생각을 했다. 남들과 얘기할 때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좋다'는 말..

[정민의 世說新語] [470] 후적박발 (厚積薄發)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임종칠(林宗七)이 자신을 경계하는 글을 벽에 써서 붙였다. "네가 비록 나이 많고, 네 병은 깊었어도, 한 가닥 숨 남았다면 세월을 아껴야지. 허물 깁고 성현 배움에 네 마음을 다하여라. 날 저물고 길은 멀어 네 근심 정히 깊네. 두껍게 쌓아 얇게 펴니 겉과 속이 순수하니, 한 번 보면 도를 지닌 군자임을 알게 되리(汝年雖暮, 汝疾雖沈. 一息尙存, 可惜光陰. 補過希賢, 用竭汝心. 日暮行遠, 汝憂正深. 及其厚積薄發, 表裏純如, 一見可知其爲有道君子也)." 조두순(趙斗淳)의 '둔오임공묘갈명(屯塢林公 墓碣銘)'에 나온다. 글 속의 후적박발(厚積薄發)은 쌓아둔 것이 두껍지만 펴는 것은 얇다는 의미로 온축을 쌓되 얇게 저며 한 켜 한 켜 펼친다는 말이다. 소동파가 서울로 떠나는 벗 장호를..

[정민의 世說新語] [469] 심유이병 (心有二病)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바른 몸가짐은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비뚤어진 상태에서 몸가짐이 바로 될 리가 없다. 다산은 '대학공의(大學公議)'에서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렸다(修身在正其心)"는 대목을 풀이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마음에는 두 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마음이 있는 데서 오는 병(有心之病)이고, 하나는 마음이 없는 데서 오는 병(無心之病)이다.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인심(人心)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고, 마음이 없다는 것은 도심(道心)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것 같지만 병통이 생기는 근원은 실제로 같다. 경(敬)으로써 내면을 바르게 하고, 공과 사를 구분해서 이를 살핀다면 이 같은 병통이 없어진다." 유심지병(有心之病)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