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468] 구사비진 (求似非眞)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청나라 원매(袁枚)가 "속시품(續詩品)"'저아(著我)'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을 안 배우면 볼 만한 게 하나 없고, 옛사람과 똑같으면 어디에도 내가 없다. 옛날에도 있던 글자, 하는 말은 다 새롭네. 옛것 토해 새것 마심, 그리해야 않겠는가? 맹자는 공자 배우고, 공자는 주공 배웠어도, 세 사람의 문장은 서로 같지 않았다네.(不學古人, 法無一可. 竟似古人, 何處著我. 字字古有, 言言古無. 吐古吸新, 其庶幾乎. 孟學孔子, 孔學周公, 三人文章, 頗不相同.)" 정신이 번쩍 든다. 제 말 하자고 글을 쓰면서 옛사람 흉내만 내면, 끝내 앵무새 소리, 원숭이 재간이 되고 만다. 덮어놓고 제소리만 해대면 글이 해괴해진다. 글자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그 글자를 가지고 글을 써서 옛날에 ..

[정민의 世說新語] [467] 불수고방(不守古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때 진법의 도형을 인쇄해서 변방의 장수에게 내려주었다. 왕덕용(王德用)이 간하였다. "병법의 기미는 일정치가 않은데 진도(陣圖)는 일정합니다. 만약 옛 법식에 얽매여 지금의 군대를 쓴다면 일을 그르치는 자가 있게 될까 걱정입니다." 또 전을(錢乙)은 훌륭한 의사였는데 옛 처방을 지키지 않았고(不守古方), 때때로 이를 뛰어넘어 무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끝내는 법에 어긋나지 않았다. 청나라 때 원매(袁枚)는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두 예화를 통해 시문 짓는 법을 깨달을 수 있다고 썼다. 고식적으로 정해진 법식에만 집착하면 그것은 활법(活法)이 아닌 사법(死法)이 되고 만다. 유득공(柳得恭)이 '추실음서(秋室吟序)'에서 한 말은 이렇다. "옛날의 의사는 질병에 한 가지 ..

[정민의 世說新語] [466] 태배예치 (鮐背鯢齒)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나이 많은 노인을 일컫는 표현에 태배(鮐背)와 예치(鯢齒), 그리고 황발(黃髮)이 있다. 태배는 복어의 등인데 반점이 있다. 연세가 대단히 높은 노인은 등에 이 비슷한 반점이 생긴다고 한다. 이의현(李宜顯·1669~1745)은 만 70세 이후에 쓴 자신의 시를 모아 제목을 '태배록(鮐背錄)'이라고 붙였다. 세종 임금이 1439년 5월, 조말생(趙末生)에게 궤장(幾杖)을 하사하며, "아! 경은 몸을 편히 하고 힘을 북돋워 태배(鮐背)의 수명을 많이 늘이라"고 한 것도 이 뜻이다. 예치는 고래 이빨이다. 고래의 이빨은 세모난 송곳니 모양이다. 상노인이 이가 다 빠지고 오래되면 다시 뾰족하고 가는 이가 난다. 어린이의 이빨과 같다고 해서 아치(兒齒)라고도 한다. 이남규(李南珪·185..

[정민의 世說新語] [465] 함구납오 (含垢納汚)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 '막내아들 유방의 병풍에 써주다(書贈季子裕邦屛幅)'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서경'에서는 '반드시 참아내야만 건너갈 수 있다'고 했다. 근면함이 아니고는 큰 덕을 이룰 수가 없다. 인내가 아니고는 큰 사업을 맺을 수가 없다. 근면이란 것은 스스로 힘써 쉬지 않아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지는 것이니 하늘의 도리이다. 인내란 것은 나쁜 것을 포용하고 더러운 것을 받아들여서 무거운 짐을 지고서 먼 곳까지 도달함이니 땅의 도리이다. 대저 한때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편안함을 취해 주저물러 앉는 자는 끝내 궁한 살림의 탄식을 면치 못한다. 하루아침의 분노를 참지 못해 경거망동하는 자는 마침내 반드시 목숨을 잃는 근심이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총명하고 재..

[정민의 世說新語] [464] 육일섬여 (六日蟾蜍)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서거정(徐居正)은 '술회(述懷)'라는 시에서 "씩씩하던 모습에 흰머리 더해가고, 공명은 어긋나서 병마저 더해지네. 때 어긋나 삼년 쑥은 구할 방법 아예 없고, 세상과 안 맞기는 육일 두꺼비 짝이로다. 강가로 돌아가고픈 맘 죽처럼 끈끈하니, 세간의 풍미는 소금보다 덤덤하다. 시 지어 흥 풀려다 도리어 빌미 되어, 한 글자 옳게 놓으려다 수염 몇 개 끊었다오(矍鑠容顔白髮添, 功名蹭蹬病相兼. 乖時無及三年艾, 違世方成六日蟾. 江上歸心濃似粥, 世間風味淡於鹽. 詩成遣興還堪祟, 一字吟安斷數髥)"라며 노년의 서글픔을 노래했다. 한때는 노익장의 기염을 토했는데, 갈수록 세상과 어긋나더니 다 던져버리고 돌아가고픈 마음만 가득하다는 말이다. 3, 4구의 삼년 쑥과 육일 두꺼비는 고사가 있다. 삼년..

[정민의 世說新語] [463] 취우표풍 (驟雨飄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776년 정조가 보위에 오르자 권력이 모두 홍국영(洪國榮·1748~1781)에게서 나왔다. 29세의 그는 도승지와 훈련대장에 금위대장까지 겸직했다.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대궐에서 생활했다. 어쩌다 집에 가는 날에는 만나려는 사람들이 거리에 늘어서고 집안을 가득 메웠다. 홍국영이 물었다. "그대들은 어째서 소낙비[驟雨]처럼 몰려오는 겐가?" 한 무변(武弁)이 대답했다. "나리께서 회오리바람[飄風]처럼 가시기 때문입지요." 홍국영이 껄껄 웃으며 대구를 잘 맞췄다고 칭찬했다. 취우표풍(驟雨飄風)은 소나기처럼 권력을 휘몰아치다가 회오리바람처럼 사라진 홍국영의 한 시절을 상징하는 말로 회자되었다. 심노숭(沈魯崇·1762~1837)의 '자저실기(自著實紀)'에 나온다. 절대 권력을 ..

[정민의 世說新語] [461] 반어구십 (半於九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당나라 때 안진경(顔眞卿)의 '쟁좌위첩(爭座位帖)'은 정양왕(定襄王) 곽영의(郭英義)에게 보낸 글의 초고다. 행서의 절품(絶品)으로 꼽는다. 조정의 연회에서 백관들이 자리 문제로 다투는 일을 간쟁했다. 곽영의는 환관 어조은(魚朝恩)에게 아첨하려고 그의 자리를 상서(尙書)의 앞에 배치하려 했다. 안진경은 붓을 들어 곽영의의 이런 행동을 준절히 나무라며 '청주확금(淸晝攫金)' 즉 벌건 대낮에 황금을 낚아채는 처신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그중의 한 대목이다. "가득 차도 넘치지 않는 것이 부(富)를 길이 지키는 까닭이요, 높지만 위태롭지 않음이 귀함을 길이 지키는 까닭입니다. 어찌 경계하여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서경'에는 '네가 뽐내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더불어 공을 다투지 않고..

[정민의 世說新語] [460] 오자칠사(惡者七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어느 날 공자와 제자 자공(子貢)이 한가한 대화를 나눴던 모양이다. "선생님께서도 미워하는 게 있으실까요?" "있다마다. 남의 잘못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람(稱人之惡者), 아래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헐뜯는 자(居下流而訕上者), 용감하지만 무례한 자(勇而無禮者), 과감하나 앞뒤가 꼭 막힌 자(果敢而窒者)를 나는 미워한다." "너는 어떠냐?" 자공이 대답한다. "저도 있습니다. 남의 말을 가로채 알고 있던 것처럼 하는 자( 以爲知者), 불손한 것을 용맹으로 여기는 자(不孫以爲勇者), 남의 잘못 들추는 것을 정직하다고 생각하는 자(訐以爲直者)가 밉습니다." 스승은, 제 잘못이 하늘 같은데 입만 열면 남을 헐뜯는 사람, 제 행실은 형편없으면서 윗사람을 욕하는 사람을 밉다고 했다. 또 무례..

[정민의 世說新語] [459] 오과지자 (五過之疵)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서경(書經)'의 '여형(呂刑)'에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살펴야 할 다섯 가지를 콕 집어 이렇게 얘기했다. "다섯 가지 과실의 잘못은 관(官)과 반(反)과 내(內)와 화(貨)와 래(來)에서 말미암는다. 그 죄가 똑같으니 살펴서 잘 처리하라(五過之疵, 惟官惟反惟內惟貨惟來, 其罪惟均, 其審克之)." 주(周)나라 때 목왕(穆王)이 한 말이다. 공정한 법 집행을 왜곡하는 다섯 가지 요인 중 첫째는 관(官)이다. 관의 위세에 눌려 법 집행에 눈치를 본다. 위의 생각이 저러하니 내가 어쩌겠는가 하며, 알아서 눈감아 준다. 둘째는 반(反)이니, 받은 대로 되갚아준다는 말이다. 법 집행을 핑계 삼아 은혜와 원한을 갚는 것이다. 내게 잘해준 사람의 잘못은 덮어주고, 미운 놈은 없는 죄도 뒤집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