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458] 고금삼반(古今三反)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가 '협리한화(峽裏閑話)'에서 옛사람과 지금 사람의 세 가지 상반된 행동을 뜻하는 삼반(三反) 시리즈를 말했다. 먼저 동진(東晋) 사람 치감(郗鑒)의 삼반은 이렇다. 첫째, 윗사람을 반듯하게 섬기면서 아랫사람이 자신의 비위 맞춰주는 것을 좋아했다. 둘째, 몸가짐은 맑고 곧았지만 계산하여 따지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셋째, 본인은 책 읽기를 좋아해도 남이 학문하는 것은 미워했다. 위(魏)나라 왕숙(王肅)의 삼반도 이와 비슷했다. 첫째, 윗사람 섬기기를 방정히 했지만 아랫사람의 아첨은 좋아했다. 둘째, 몸가짐을 더럽게 하지는 않았으되 재물에는 너무 인색했다. 셋째, 성품이 부귀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구차하게 영합하지는 않았다. 윤기가 나열한 지금 사람의 삼..

[정민의 世說新語] [457] 이두자검(以豆自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 후기에 '공과격(功過格) 신앙'이 유행했다. 공(功)과 과(過)를 조목별로 점수를 매기고, 격(格), 즉 빈칸에 날마다 자신의 공과를 하나하나 적어 나간다. 점수를 계산해 연말에 총점을 매긴다. 그 결과만큼의 화복이 주어지고 수명이 늘거나 준다고 믿었다. '공과격'의 실천으로 복을 받고 장수한 성공 사례들은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 '선음즐문(善陰騭文)' '공과격' 같은 도교 계통의 권선서(勸善書)에 함께 담겨 널리 읽혔다. 1905년, 을사오적의 한 사람인 권중현(權重顯·1854~1934)이 '공과신격(功過新格)'이란 책을 펴냈다. 이듬해에는 보급용으로 '공과신격언해'까지 간행해 무료로 배포했다. 왜 그랬을까? 공(功)의 항목 중 가장 점수가 높은 것이 선서(善書)를 ..

[정민의 世說新語] [456] 야행조창(夜行朝昌)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아전이 밤중에 수령을 찾아와 소곤댄다. "이 일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소문이 나면 자기만 손해인데 누가 퍼뜨리려 하겠습니까?" 수령은 그 말을 믿고 뇌물을 받아 챙긴다. 아전은 문을 나서자마자 수령이 뇌물 먹은 사실을 떠들고 다닌다. 경쟁자를 막기 위해서다. 소문은 금세 쫙 퍼져, 깊이 들어앉은 수령만 모르고 다 안다. '목민심서'의 '율기(律己)'에 나오는 얘기다. 글의 제목은 '뇌물을 줄 때 비밀로 하지만, 한밤중에 준 것이 아침이면 이미 드러난다(貨賂之行, 誰不秘密, 中夜所行, 朝已昌矣)'이다. 한나라 때 양진(楊震)이 형주자사가 되었다. 창읍(昌邑) 태수 왕밀(王密)이 밤중에 황금 10근을 품고 와서 주며 말했다. "어두운 밤이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양진이 ..

[정민의 世說新語] [455] 어가지요(御家之要)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은 선비로 지녀야 할 일상의 범절을 924개 항목으로 나눠 정리한 책이다. 누군가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御家之要)을 묻는다. 이덕무의 대답은 이렇다. "가장은 차마 못 들을 말을 꺼내지 않고, 집안 식구들이 감히 말하지 못할 말을 하지 않으면 집안의 도리가 바로잡힌다(家長毋出不忍聞之言, 家衆毋作不敢言之說, 則家道正矣)." 가장이 권위로 눌러 기분대로 함부로 말하면 가족에게 두고두고 깊은 상처로 남는다. 아내가 가장에게 돈 못 벌어 온다고 악을 쓰고, 자식이 아비에게 해준 게 뭐 있냐고 대들면 더 이상 집안의 법도는 없다. 다시 한 단락. "춥고 배고픔이 지극하면 자제들이 부형을 원망해서 '왜 나를 이렇게 춥고 주리게 하는가?'하며 말한다. 부형은 자제..

[정민의 世說新語] [454] 순물신경 (徇物身輕)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재앙은 많은 탐욕보다 큰 것이 없고, 부유함은 족함을 아는 것보다 더함이 없다. 욕심이 강하면 물질을 따르게 되니, 이를 따르면 몸은 가볍고 물질만 중하게 된다. 물질이 중하게 되면 어두움이 끝이 없어, 몸을 망치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저 물질만을 따르는 자는 족함을 알지 못해서다. 진실로 족함을 알면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일이 줄어들며, 일이 줄어들면 집안의 도리가 화목해지고, 집안의 도리가 화목해지면 남들이 모두 알게 된다. 이 때문에 부유함은 족함을 아는데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禍莫大于多貪, 富莫富于知足. 欲心勝則徇物, 徇物則身輕而物重矣. 物重則 然無窮, 不喪其身不止矣. 彼徇物者, 由不知足之故也. 苟知足, 則心安, 心安則事少, 事少則家道和, 家道和則..

[정민의 世說新語] [453] 침정신정 (沈靜神定)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침정(沈靜), 즉 고요함에 잠기는 것은 입 다물고 침묵한다는 말이 아니다. 뜻을 깊이 머금어 자태가 한가롭고 단정한 것이야말로 참된 고요함이다. 비록 온종일 말을 하고, 혹 천군만마(千軍萬馬) 중에서 서로를 공격하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번잡한 사무에 응하더라도 침정함에 방해받지 않는 것은, 신정(神定) 곧 정신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드날려 뜻이 흔들리면, 종일 단정히 앉아 적막하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기색이 절로 들뜨고 만다. 혹 뜻이 드날려 흔들리지 않는다 해도 멍하니 졸린 듯한 상태라면 모두 침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沈靜非緘黙之謂也. 意淵涵而態閑正, 此謂眞沈靜. 雖終日言語, 或千軍萬馬中相攻擊, 或稠人廣衆中應繁劇, 不害其爲沈靜, 神定故也. 一有飛揚動..

[정민의 世說新語] [452] 불무구전(不務求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일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고, 사물은 양쪽 모두 흥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하늘과 땅 사이의 일은 반드시 결함이 있게 마련이다. 현명한 사람은 결함이 있을 수 있는 일에서 온전함을 구하기에 힘쓰지 않고, 결함이 있을 수 없는 일에서 덜어냄이 생길까 염려한다(事無全遂, 物不兩興. 故天地之間, 必有缺陷. 夫明者, 不務求全其所可缺者, 恐致損其所不可缺者)." 명나라 서정직(徐禎稷)이 '치언(恥言)'에서 한 말이다. 세상일은 전수양흥(全遂兩興), 즉 모두 이루고 다 흥하는 법이 없다. 살짝 아쉽고, 조금 부족해야 맞는다. 불무구전(不務求全), 온전함을 추구하려 애쓸 것 없다. 다 쥐려다가 있던 것마저 잃고 만다. 그가 다시 말한다.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처리해야 식견이 자랄..

[정민의 世說新語] [451] 쌍미양상(雙美兩傷)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말만 들으면 당대의 석학이요 현하(懸河)의 웅변인데, 기대를 갖고 글을 보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글은 빈틈없고 꽉 짜여 찔러 볼 구석이 없지만 막상 말솜씨는 어눌하기 짝이 없는 수도 있다. 말도 잘하고 글도 좋기가 쉽지 않다. 재능의 방향이 서로 달라 그렇다. 진(晋)나라 악령(樂令)이 멋진 말을 잘했지만 글솜씨는 영 시원찮았다. 답답했던 그는 자신의 구술(口述)을 하남 태수에게 받아 적게 해 100여 마디의 괜찮은 글을 얻었다. 글 잘하는 반악(潘岳)이 여기에 다시 살을 보태 매끄럽게 가다듬자 한 편의 훌륭한 글이 되었다. 같은 시기 동평(東平)의 대숙 광(大叔 廣)과 지우(摯虞)는 서로 앙숙이었다. 대숙 광은 변론에 능해 말로는 도저히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

[정민의 世說新語] [450]화경포뢰 (華鯨蒲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은(朴誾)의 '황령사(黃嶺寺)' 시에 "화경(華鯨)이 울부짖자 차 연기 일어나고, 잘새 돌아감 재촉하니 지는 볕이 깔렸네.(華鯨正吼茶煙起, 宿鳥催歸落照低)"라 했다. 화경이 뭘까? 다산은 '병종(病鐘)'에서 "절 다락에 병든 종이 하나 있는데, 본래는 양공(良工)이 주조한 걸세. 꼭지엔 세세하게 비늘 새겼고, 수염도 분명해라 셀 수 있겠네. 포뢰(蒲牢)가 큰 소리로 울어대어서, 큰집에 쓰는 물건 되길 바랐지(寺樓一病鐘, 本亦良工鑄. 螭鈕細刻鱗, 之而粲可數. 庶作蒲牢吼, 仰充宮軒具)." 금이 가 깨진 종에 대한 시인데, 포뢰(蒲牢)가 무언지 또 궁금하다. 화경(華鯨)은 무늬를 그려 넣은 고래다. 범고(范固)는 '동도부(東都賦)'에 "이에 경어(鯨魚)를 내어 화종(華鍾)을 울리니..

[정민의 世說新語] [449] 자모인모 (自侮人侮)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온(鄭蘊·1569~1641)이 50세 나던 해 정초에 '원조자경잠(元朝自警箴)'을 지었다. 서두는 이렇다. "어리석은 내 인생, 기(氣) 얽매고 외물(外物) 빠져. 몸을 닦지 못하니, 하루도 못 마칠 듯. 근본 이미 잃고 보매, 어데 간들 안 막히랴. 부모 섬김 건성 하고, 임금 섬김 의리 없어. 나도 남도 업신여겨, 소와 말로 대접하네(余生之惷, 氣拘物汨. 儳焉厥躬, 如不終日. 本旣失矣, 何往不窒. 事親不誠, 事君無義. 自侮人侮, 牛已馬已)." 공자는 나이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고, 거백옥蘧伯玉)은 50세가 되자 지난 49년의 인생이 잘못된 줄을 알았다고 했다. 쉰 살은 하늘이 나를 왜 세상에 냈는지를 알고, 지난 잘못을 깨닫는다는 나이다. 새해 쉰 살이 되어 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