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437] 득예가우 (得譽可憂)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퇴계가 정유일(鄭惟一)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행하는 바는 매번 남보다 한 걸음 물러서고, 남에게 조금 더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후진이 선진의 문하에 오르면, 주인이야 비록 믿을 만하다 해도, 문하에 있는 빈객을 모두 믿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발 한 번 내딛고 입 한 번 여는 사이에도, 기림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헐뜯음을 얻고 만다. 헐뜯음을 얻는 것은 진실로 두려워할 만하고, 기림을 얻는 것은 더더욱 근심할 만하다. 옛사람이 후진을 경계한 말은 이렇다. '오늘 임금 앞에 한번 칭찬을 얻고, 내일 재상의 처소에서 기림을 한 차례 얻고서, 이로 인해 스스로를 잃은 자가 많다(所以行於世者, 則每以退人一步, 低人一頭, 爲第一義. 後進登先進之門, 主人..

[정민의 世說新語] [436] 관규여측 (管窺蠡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운부군옥(韻府群玉)'에 "촉(蜀) 땅에 납어( 魚)가 있는데 나무를 잘 오르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낸다. 맹자(孟子)가 이를 몰랐다"고 썼다. '오잡조(五雜俎)'에는 "지금 영남에 예어(鯢魚)가 있으니 다리가 네 개여서 늘 나무 위로 기어오른다. 점어(鮎魚)도 능히 대나무 가지에 올라 입으로 댓잎을 문다"고 했다. 맹자가 '되지 않을 일'의 비유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다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의 표현을 쓴 일이 있다. 혹자는 이 물고기들의 존재를 진작 알았더라면 맹자가 이 같은 비유를 쓰지 않았으리라 말한다. 윤기(尹愭·1741~1826)는 상리(常理)를 벗어난 예외적 경우로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관규여측(管窺蠡測)의 소견으로 함부로 남을..

[정민의 世說新語] [435] 파사현정 (破邪顯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삼론종(三論宗)은 고대 대승불교의 한 종파다. 수나라 때 길장(吉藏)이 '삼론현의(三論玄義)'에서 이렇게 썼다. "다만 논(論)에 비록 세 가지가 있지만, 의(義)는 오직 두 가지 길뿐이다. 첫째는 현정(顯正)이요, 둘째는 파사(破邪)이다. 삿됨을 깨뜨리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건져내고, 바름을 드러내면 위로 큰 법이 넓혀진다(但論雖有三, 義唯二轍. 一曰顯正, 二曰破邪. 破邪則下拯沈淪, 顯正則上弘大法)." 파사현정(破邪顯正)은 삿됨을 깨뜨려 바름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삿됨을 깨부수자 가라앉아 있던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바름을 드러내니 정대하여 가림이 없다. 유가에서는 척사위정(斥邪衛正)이란 비슷한 표현이 있다. 삿됨을 배척해 바른 가치를 지켜낸다는 의미다. 삿된 것과 바..

[정민의 世說新語] [434] 선기원포 (先期遠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594년 류성룡(柳成龍)이 '전수기의십조(戰守機宜十條)'를 올렸다. 적군을 막아 지키는 방책을 열 가지로 논한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척후(斥候)와 요망((瞭望)의 효율적 운용을 첫 번째로 꼽았다. 적병의 동향을 미리 파악해 선제적 준비를 하려면 선기(先期)와 원포(遠布)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적어도 전투 5일 전에 멀리 적진 200리 지점까지 척후를 보내 적의 동정을 파악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군대에 이것이 없으면 소경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과 같다고 썼다.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이일(李鎰)이 상주를 지켰다. 적병이 코앞에 왔는데도 까맣게 몰랐다. 접전 하루 전 개령현(開寧縣) 사람이 적이 코앞에 와있다고 알렸다. 군대를 동요시킨다며 이일이 ..

[정민의 世說新語] [433] 치이란이 (治已亂易)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신흠(申欽·1566~1628)의 '치란편(治亂篇)'은 이렇게 시작한다. "장차 어지러워지려는 것을 다스리기는 어렵고, 이미 어지러워진 것을 다스리기는 쉽다.(治將亂難, 治已亂易.) 장차 어지러워지려 하면 위는 제멋대로 교만하여 경계할 줄 모르고, 아래는 아첨하여 붙좇느라 바로잡을 줄 모른다. 멋대로 흘러가고 휩쓸려 나아간다. 일에 앞서 말하면 요망한 얘기라 하고, 일에 닥쳐 얘기하면 헐뜯는 말이라 한다. 임금이 총애하는 신하에 대해 논하면 속여 기망한다고 배척하고, 감추고 싶은 것을 말하면 강직하다는 명성을 사려 한다며 밀쳐낸다." 그 결과는 이렇다. "가까이 친숙한 자에게 귀가 가려지고, 아첨하는 자에게 눈꺼풀이 쓰여서, 대궐의 섬돌 밖이 천리보다 멀고, 법도는 해이해지며, ..

[정민의 世說新語] [432] 견면취예 (蠲免驟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797년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내려갔다. 세 해 뒤 임기를 마치고 올라와 재임 시의 메모를 정리해 '면양잡록(沔陽雜錄)'으로 묶었다. 당진문화원에서 김문식 교수에게 의뢰해 번역한 이 책이 이번에 간행되어 나왔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칠사고(七事考)'다. '목민심서'의 원조 격 저술로, 고을 수령이 힘써야 할 7가지 일에 대한 지침을 정리했다. 7사는 '경국대전' '이전(吏典)'조에 실려 있다.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賦役均), 송사간(訟事簡), 간활식(奸猾息)의 일곱 가지다. 농상을 진흥하고, 호구를 증가시키며, 학교를 일으키고, 군정을 정비한다. 부역을 공평하게 집행하고, 송사를 간소하게 하며, 간악한 자를 종..

[정민의 世說新語] [431] 갱이사슬 (鏗爾舍瑟)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공자가 어느 날 자로와 증석, 염유와 공서화 등 네 제자와 함께 앉았다. "우리 오늘은 허물없이 터놓고 얘기해 보자. 누가 너희를 알아주어 등용해준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제자들은 신이 나서 저마다의 포부를 밝혔다. 다들 나랏일에 참여하여 큰일을 해내고 싶은 바람을 드러냈다. 공자는 그 말을 듣고 씩 웃었다. "너는?" 스승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증석을 향했다. 증석은 슬(瑟) 연주를 늦춰 젱그렁 소리를 내면서 슬을 내려놓고 일어났다.(鼓瑟希, 鏗爾, 舍瑟而作.) "선생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늦봄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어른 대여섯과 아이 예닐곱을 데리고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를 읊으며 돌아오렵니다." 공자가 감탄하며 말했다. "나도 너와 ..

[정민의 世說新語] [430] 철망산호 (鐵網珊瑚)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깊은 바닷속의 산호 캐기는 당나라 때부터다. 어민들은 산호초가 있는 바다로 나가 쇠그물을 드리운 뒤 배의 끄는 힘을 이용해 산호를 캤다. 철망산호, 즉 쇠그물로 캐낸 산호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진귀한 보물 대접을 받았다. 명나라 때 주존리(朱存理)는 고대 서화에 대한 기록을 망라해 정리한 자신의 저술에 '철망산호(鐵網珊瑚)'란 이름을 붙였다. 장유(張維·1587~1638)는 시관(試官)이 되어 영남으로 떠나는 학사 이상보(李尙輔)에게 준 시 중에서, "푸른 바다 깊은 곳의 해약(海若)이야 근심해도, 산호는 쇠그물로 건져주길 기다리리. 천리마가 소금 수레 끄는 일 없게 하고, 칼빛이 북두성을 다시 범함 없게 하소(滄溟深處海若愁, 珊瑚正待鐵網搜. 鹽車莫遣困驊騮, 劍氣不復干斗牛)"..

[정민의 世說新語] [429] 이적초앙(以積招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얼마 전 심재(心齋) 조국원(趙國元·1905~1988) 선생이 소장했던 다산 선생의 친필첩을 아드님이신 조남학 선생 댁에 가서 배관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짧은 글 한 편을 소개한다. "다산에는 꿀벌 한 통이 있다. 내가 벌이란 놈을 관찰해보니, 장수도 있고 병졸도 있다. 방을 만들어 양식을 비축해두는데, 염려하고 근심함이 깊고도 멀었다. 모두 함께 부지런히 일을 하니, 여타 다른 꿈틀대는 벌레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내가 나비란 놈을 보니, 나풀나풀 팔랑팔랑 날아다니며 둥지나 비축해둔 양식도 없는 것이 마치 아무 생각 없는 들 까마귀와 같았다. 내가 시를 지어 이를 풍자하려다가 또 생각해보았다. 벌은 비축해둔 것이 있어서 마침내 큰 재앙을 불러들여(蜂以積著之, 故終招大殃), ..

[정민의 世說新語] [428] 문유삼등(文有三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표현이 멋지거나 화려한 글이 좋은 글은 아니다. 내용이 알차다고 해서 글에 힘이 붙지도 않는다.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눈길이 깃들어야 한다. 송나라 때 장자(張鎡·1153~1235)가 엮은 '사학규범(仕學規範)' 중 작문에 관한 글 두 단락을 읽어본다. "문장을 지을 때는 문자 너머로 따로 한 물건의 주관함이 있어야만 높고 훌륭한 글이 된다. 한유(韓愈)의 문장은 경술(經術)로 글을 끌고 나갔고, 두보의 시는 충의(忠義)에 바탕을 두었다. 이백 시의 묘처는 천하를 우습게 보는 기상에 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이다(凡爲文章, 須是文字外別有一物主之, 方爲高勝. 韓愈之文, 濟以經術. 杜甫之詩, 本於忠義. 太白妙處, 有輕天下之氣. 此衆人所不及也)." 글을 읽고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