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407] 수서낭고(首鼠狼顧)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삼국지(三國志) '제갈각전(諸葛恪傳)'에 '산월(山越)은 지형이 험한 것을 믿고서 여러 대 동안 조공도 바치지 않았다. 느슨하면 쥐처럼 머리를 내밀고, 다급해지면 이리처럼 돌아본다(山越恃阻, 不賓歷世, 緩則首鼠, 急則狼顧)'라 한 대목이 있다. 수서(首鼠)는 쥐가 쥐구멍을 나설 때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번갈아 돌아보며 멈칫대는 모양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혹여 고양이가 기다리지는 않을까, 다른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살피는 행동이다. 머뭇대며 결단하지 못하는 태도를 지적할 때 자주 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수서양단(首鼠兩端)이라고도 한다. 이리는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몸은 앞을 향해 가도 고개는 자주 뒤를 돌아본다. 다른 동물이 습격이라도 할까 겁이 나서다..

[정민의 世說新語] [406] 독서종자 (讀書種子)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이 기사환국으로 남인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사되기 전 자식들에게 '유계(遺戒)'를 남겼다. "옛사람은 독서하는 종자(種子)가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너희는 자식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끝내 충효와 문헌의 전함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古人云不可使讀書種子斷絶, 汝輩果能勤誨諸兒, 終不失忠孝文獻之傳)" 맏아들 김창집(金昌集·1648~1722) 또한 왕세제의 대리청정 문제로 소론과 대립 끝에 신임사화 때 사약을 받았다. 세상을 뜨기 직전 자손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오직 바라기는 너희가 화변(禍變)으로 제풀에 기운이 꺾이지 말고, 학업에 더욱 부지런히 힘써 독서종자가 끊어지는 근심이 없게 해야만 할 것이다.(惟望汝等勿以..

[정민의 世說新語] [405] 검신용물(檢身容物)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구양덕(歐陽德)이 검신(檢身), 즉 몸가짐 단속에 대해 말했다. "스스로 관대하고 온유하다 말해도, 느긋하고 나태한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제 입으로 굳세고 과감하다 하지만, 조급하고 망령되며 과격한 것이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성내며 사납게 구는 것은 무게 있는 것에 가깝고, 잗다란 것은 꼼꼼히 살피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속임수는 바른 것과 헷갈리고, 한통속이 되는 것은 화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소한 차이를 분별하지 않으면 참됨에서 점점 멀어진다.(自謂寬裕溫柔, 焉知非優游怠忽. 自謂發剛強毅, 焉知非躁妄激作. 忿戾近齊莊, 瑣細近密察. 矯似正, 流似和, 毫釐不辨, 離眞愈遠)" 관대한 것과 물러터진 것은 다르다. 굳셈과 과격함은 자주 헷갈린다. 성질부리는 것과 ..

[정민의 世說新語] [404] 재재화화(財災貨禍)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미공비급(眉公祕笈)'의 한 구절이다. "일찍이 돈 '전(錢)' 자의 편방(偏傍)을 살펴보니, 위에도 창 '과(戈)' 자가 붙었고, 아래에도 붙었다. 돈이란 참으로 사람을 죽이는 물건인데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다. 그럴진대, 두 개의 창이 재물[貝]을 다투는 것이 어찌 천(賤)하지 않겠는가?(嘗玩錢字傍, 上着一戈字, 下着一戈字, 眞殺人之物, 而人不悟也. 然則兩戈爭貝, 豈非賤乎?)" '잔(戔)'은 해친다는 뜻이다. 창이 아래위로 부딪치는 모양이니 그 사이에 끼면 안 다칠 수가 없다. 돈 전(錢) 자와 천할 천(賤)에 모두 이 뜻이 들어 있다. 파자(破字) 풀이 속에 뜨끔한 교훈을 담았다. 윤기(尹愭·1741~1826)의 글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대저 재물[財]은 재앙[災]이..

[정민의 世說新語] [403] 조존사망 (操存舍亡)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마음이 늘 문제다.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이 죽 끓듯 한다. 맹자는 "붙들면 보존되고 놓아두면 달아난다(操則存 舍則亡)" 했다. 붙들어 간직해야지 방심해 놓아두면 마음이 밖에 나가 제멋대로 논다. '대학(大學)'에서는 "마음이 나가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고 했다. 정자(程子)가 "마음은 내 안에 있어야만 한다(心要在腔子裏)"거나 "나가버린 마음을 붙들어 와서, 되풀이해 몸 안에 들여놓아야 한다(將已放之心, 反復入身來)"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음이 달아난 자리에는 잡된 생각이 들어와 논다. 쓸데없는 생각을 깨끗이 닦아내야 영대(靈臺)가 거울처럼 빛나, 사물이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

[정민의 世說新語] [402] 처명우난(處名尤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산은 백련사에 새 주지로 온 혜장을 신분을 감추고 찾아가서 만났다. 처음 만난 혜장은 꾸밀 줄 모르고 진솔했지만 거칠었다. 다산은 그런 그가 퍽 마음에 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서 자주 만나 학문의 대화를 이어갔다. 다산이 혜장에게 써준 시 '회증칠십운기혜장(懷橧七十韻寄惠藏)'은 140구에 달하는 장시다. 혜장에게 건넨 진심어린 충고가 담겼다. 서두는 이렇다. "이름 높은 선비를 내 살펴보니, 틀림없이 무리의 미움을 받네. 이름 이룸 진실로 쉽지 않지만, 이름에 잘 처하긴 더욱 어렵네. 이름이 한 단계 나아갈수록, 비방은 열 곱이나 높아만 가지(吾觀盛名士, 必爲衆所憎. 成名固未易, 處名尤難能. 名臺進一級, 謗屋高十層)." 높은 명성의 필연적 대가는 비방과 구설수다. ..

[정민의 世說新語] [401] 손이익난(損易益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홍만선(洪萬選·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중 '섭생(攝生)'의 두 항목을 읽는다. "덜어냄은 알기 쉽고 빠르다. 보탬은 알기 어렵고 더디다. 덜어냄은 등잔에 기름이 줄어듦과 같아 보이지 않는 사이에 없어진다. 보탬은 벼의 싹이 자라는 것과 한가지라 깨닫지 못하는 틈에 홀연 무성해진다. 그래서 몸을 닦고 성품을 기름은 세세한 것을 부지런히 하기에 힘써야 한다. 작은 이익이라 별 보탬이 안 된다고 닦지 않아서는 안 되고, 작은 손해라 상관없다며 막지 않아서도 안 된다(損易知而速焉, 益難知而遲焉. 損之者, 如燈火之消脂, 莫之見也, 而忽盡矣. 益之者, 如禾苗之播殖, 莫之覺也, 而忽茂矣. 故治身養性, 務勤其細, 不可以小益爲無補而不修, 不可以小損爲無傷而不防也)." 원 출..

[정민의 世說新語] [400] 명창정궤(明窓淨几)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추사의 글씨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는 예서로 쓴 "작은 창에 볕이 많아,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小窗多明, 使我久坐)"는 구절이다. 작은 들창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그는 방 안에서 미동(微動) 없이 앉아 있다. 명창정궤(明窓淨几). 창문은 햇살로 환하고, 책상 위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이 네 글자는 선비의 공부방을 묘사하는 최상의 찬사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명창(明 )'에서 "밝은 창 정갈한 책상에 앉아 향을 사르니, 한가한 중 취미가 거나함을 깨닫네(明䆫淨几坐焚香, 頗覺閑中趣味長)"라 했다. 오장(吳長·1565~ 1617)은 '서실소기(書室小記)'에서 "고인의 책이 수십 질 있어서 밝은 창 깨끗한 책상에서 혹 손길 따라 뽑..

[정민의 世說新語] [399] 영영구구(營營苟苟)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새를 노래한 김안로(金安老·1481~ 1537)의 연작 중에 '해오라기(鷺)'란 작품이 있다. '여뀌 물가 서성이다 이끼 바위 옮겨와선/ 물고기 노리느라 서서 날아가지 않네./ 눈 같은 옷 깨끗해서 모습 몹시 한가하니/ 옆에 사람 누군들 망기(忘機)라 하지 않겠는가?(蓼灣容與更苔磯, 意在窺魚立不飛. 刷得雪衣容甚暇, 傍人誰不導忘機.)' 눈처럼 흰 깃털을 한 해오라기가 고결한 자태로 물가에 꼼짝 않고 서 있다. 선 채로 입정(入定)에 든 고승의 자태다. 망기(忘機)는 기심(機心), 즉 따지고 계교하는 마음을 잊었다는 뜻이다. 사실은 어떤가? 녀석은 아까부터 배가 고파 제 발밑을 무심코 지나가는 물고기를 잔뜩 벼르고 있는 중이다. 속으로는 물고기 잡아먹을 궁리뿐인데 겉모습은 고결한 ..

[정민의 世說新語] [398] 응작여시(應作如是)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세밑의 그늘이 깊다. 흔들리며 한 해를 건너왔다. 장유(張維·1587~ 1638)가 제 그림자를 보며 쓴 시 '영영(詠影)' 한 수를 위로 삼아 건넨다. "등불 앞 홀연히 고개 돌리니, 괴이하다 또다시 날 따라 하네. 숨었다 나타남에 일정함 없고, 때에 따라 드러났다 그늘에 숨지. 홀로 가는 길에 늘 동무가 되고, 늙도록 날 떠난 적 한번 없었네. 참으로 몽환(夢幻)과 한 이치임을, 금강경 게송 보고 알게 되었네.(燈前忽回首, 怪爾又相隨. 隱見元無定, 光陰各有時. 獨行常作伴, 到老不曾離. 夢幻眞同理, 金剛偈裏知.)" /조선일보 DB 등불을 뒤에 두고 앉자 내 앞에 내가 있다. 내가 고개를 돌리니 저도 돌린다. 반대로 돌리자 저도 똑같이 한다. 그는 등불 앞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