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387] 무궁세계(無窮世界)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의 '정상한화(井上閒話)'에 재미난 시 한 수가 실려 있다. "세상의 하고 한 일, 해도 해도 다 못하리. 하고 하다 떠나가면, 뒷사람이 하고 하리(世上爲爲事, 爲爲不盡爲. 爲爲人去後, 來者復爲爲)." '위위(爲爲)'를 매 구절마다 반복했는데, '하고 하다'로 새겼다. 한문이 아니라 우리말로 말장난을 했다. 윤기는 시에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누가 지은 것인지는 모르나, 얼핏 보면 저속해 보여도 말뜻에 함축이 있고 형용이 참으로 절실하다. 가는 자는 떠나고 오는 자가 잇는다는 지극한 이치를 말한 대목이 가장 음미할 만하다." 이덕무(李德懋)는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또 이렇게 얘기한다. "옛사람의 만시와 애사를 모아서 차례대로 늘어놓고 본다..

[정민의 世說新語] [386] 맹봉할갈(盲棒瞎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추사 김정희는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는 중국의 선맥(禪脈)과 선리(禪理)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피력한 내용이 적지 않다. 100권에 달하는 '법원주림(法苑珠林)'과 '종경전부(宗鏡全部)'를 구해 독파하기까지 했다. 선운사의 백파(白坡) 긍선(亘璇· 1767~1852)에게 보낸 '백파망증15조(白坡妄證15條)'와 이에 이은 서한은 선(禪)에 대한 추사의 독선과 기고만장으로 가득하다. '완당집' 중 초의에게 보낸 7번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근래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을 얻었소. 이는 선가의 장서 중에서도 드물게 있는 것이오. 선가(禪家)에서는 매번 맹봉할갈(盲棒瞎喝)로 흑산귀굴(黑山鬼窟)을 만들어 가면서도 이러한 무상(無上)의 묘체(妙諦)를 알지 ..

[정민의 世說新語] [385] 폐추자진(敝帚自珍)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806년 다산이 혜장(惠藏)의 주선으로 보은산방(寶恩山房)에 머물러 있을 때, 그의 제자 미감(美鑒)이란 승려가 입이 잔뜩 나온 채 다산을 찾아왔다. 제 동무 스님들과 '화엄경'을 공부하다가 '등류과(等流果)'의 해석을 두고 말싸움이 붙었는데, 다툼 끝에 분이 나서 책 상자를 지고 나온 참이라 했다. '등류과'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론(因果論)의 주요 개념이다. 선인(善因)은 선과(善果)를 낳고, 악인(惡因)은 악과(惡果)를 낳는다는 논리다. 다산은 그에게 몽당 빗자루 얘기를 들려준다. "선인이 선과로 맺어지면 기쁘고, 악인이 악과를 맺으면 통쾌하겠지? 하지만 세상 일이 어찌 다 그렇더냐? 반대로 되는 수도 많다. 그때마다 기뻐하고 슬퍼한다면 사는 일이 참 고단하다. 따지..

[정민의 世說新語] [384] 과성당살 (過盛當殺)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아침저녁 소매 끝에 느껴지는 기운이 선뜻하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산사야음(山寺夜吟)' 시는 이렇다. "우수수 나뭇잎 지는 소리를,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사미 불러 문 나가 보라 했더니,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다고(蕭蕭落木聲, 錯認爲疎雨. 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 저녁까지 맑았는데 밤 들어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온다. 사미승에게 좀 내다보라고 했다가 돌아온 대답이 맹랑하다. "손님! 달이 말짱하게 시내 남쪽 나무에 걸려 있는 걸요." 비는 무슨 비냐는 얘기다. 사실 이 시는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추성부(秋聲賦)'의 의경에서 따왔다. 밤에 창밖에서 수상한 소리가 난다. 빗방울이 잎을 때리는 소리 같고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쳐오는 소리도 같다. 어찌 들으..

[정민의 世說新語] [383] 차납지변(借納之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훈련원에 있을 때 몹시 아름다운 전통(箭筒)을 지니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사람을 보내 빌려달라고 하자, 충무공이 거절하며 말했다. "이것은 빌리자는[借] 것입니까, 달라는[納] 것입니까?" 서애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기이하게 여겨 비로소 발탁해 쓰려는 뜻이 있게 되었다. 윤기(尹愭·1741~1826)의 '정상한화(井上閒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윤기는 이 일을 적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의 시속으로 말한다면, 충무공은 반드시 활집을 바쳐서 친해지려 했을 테고, 서애는 틀림없이 유감을 품고 성을 내어 배척해 끊었을 것이다.(今俗言之, 忠武必欲納此而得親, 西厓必恨怒而斥絶矣.)" 윗사람과 친해질 절호의 기회를 박찬 ..

[정민의 世說新語] [382] 난자이사 (難者二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관현(柳觀鉉·1692~1764)은 1759년 필선(弼善)의 직책으로 사도세자를 30여 일간 서연(書筵)에서 혼자 모셨던 인물이다. '주역'을 가르쳤다. 사도세자가 죽자 여섯 차례의 부름에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벼슬에 있을 때는 흉년의 기민(饑民) 구제 등 볼만한 치적이 적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뜨자 김낙행(金樂行· 1708~1766)이 제문을 지어 보냈다. 길어 다 읽지는 못하고, 내용 중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 두 가지(難者二事)를 꼽은 대목만 간추려 읽는다. '또 가만히 논하려니, 어려운 것 두 가지라. 가난하다 부자 되면, 의리 좋아하는 이 드물다네. 심하게는 돈 아끼다, 아우 죽여 돌아오지. 들으니 공께서 젊었을 때, 푸성귀와 멥쌀로 허기 채워, 부지런히 ..

[정민의 世說新語] [381] 어후반고(馭朽攀枯)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옛사람이 마음을 살핀 명(銘) 두 편을 읽는다. 먼저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면잠(面箴)'. "마음에 부끄러우면, 얼굴 먼저 부끄럽다. 낯빛이 빨개지고, 땀방울 물 흐르듯. 사람 대해 낯 못 들고, 고개 돌려 피한다네. 마음이 하는 것이 너에게로 옮아간다. 무릇 여러 군자들아, 의(義) 행하고 위의(威儀) 갖춰, 속에서 활발케 해, 부끄럼 없게 하라(有愧于心, 汝必先耻. 色赬貞若朱, 泚滴如水. 對人莫擡, 斜回低避. 以心之爲, 迺移於爾. 凡百君子, 行義且儀. 能肆于中, 毋使汝愧)."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의 일이 얼굴 위로 고스란히 떠오른다. 부끄러운 짓을 하면 저도 몰래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못 든다. 그러니 의로운 길을 가서 얼굴에 부끄러움을 안기는 일..

[정민의 世說新語] [380] 당심기인(當審其人)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달충(李達衷·1309~1383)의 '애오잠(愛惡箴)'을 읽었다. 유비자(有非子)가 무시옹(無是翁)에게 칭찬과 비난이 엇갈리는 이유를 묻는다. 무시옹의 대답은 이렇다. "사람들이 나를 사람이라고 해도 나는 기쁘지 않고,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두렵지 않소. 사람 같은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고,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함만은 못하오. 나는 또 나를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과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오.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고 하면 기쁘고,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또한 기쁠 것이오.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 하지 않으면 두렵고,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나를 사람이라고 하면 또한 두렵소. 기뻐하..

[정민의 世說新語] [379] 애이불교(愛而不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기(尹愭·1741~1826)가 '잡기(雜記)'에서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愛而不敎, 獸畜之也)"라고 했다. 이어 '주자가례'에 실린 "어려서부터 제 자식 귀하고 아까운 줄만 알아 그저 오냐오냐하면, 아이는 좋고 나쁨을 구분 못 해 나쁜 짓을 하면서 그래도 되는 줄 안다. 이것이 성품을 이룬 뒤에는 화를 내며 못 하게 해도 막을 수가 없다. 결국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고, 자식은 부모를 원망해, 잔인하고 패역함에 이르게 된다. 이는 부모가 깊은 식견과 먼 염려가 없어서 작은 싹이 자라남을 막지 못하고, 작은 사랑에 빠져 그의 악행을 길러주었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인용했다. 자식을 기이한 보물이라도 얻은 듯이 여겨 제멋대로 굴게 놓아둔다. 사람을 ..

[정민의 世說新語] [378] 탕척비린(蕩滌鄙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나가노 호잔(豊山長野·1783~1837)의 '송음쾌담(松陰快談)'에 검소함[儉]과 인색함[吝]의 구별을 묻는 객의 질문이 나온다. 그는 두 구절을 인용해 그 차이를 설명했다. 먼저 명나라 진록(陳錄)의 '선유문(善誘文)'의 구절. "검소함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을 덕이라 하고, 검소함으로 남을 대접하는 것은 비(鄙)라고 한다(處己以儉謂之德, 待人以儉謂之鄙)." 검소함이 자신에게 적용되면 덕이 되지만, 남을 향하면 비루하게 된다는 말이다. 자신에게는 마땅히 엄정하고 검소해야 하나, 남에게 베풀 때 그렇게 하면 인색한 짠돌이가 된다는 말이다. 다시 '조씨객어(晁氏客語)'를 인용했다. "한위공(韓魏公)은 집안의 재물 쓰기를 나라 물건 쓰듯 해서 인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증노공(曾魯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