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377] 용형삼등(用刑三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814년 3월 4일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가 강진 귤동으로 다산을 찾아왔다. 다산초당은 이때 이미 인근에 아름다운 정원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당시 그는 영암군수로 내려온 아들의 임지에 머물다가 봄을 맞아 바람도 쐴 겸 해서 유람을 나섰던 길이었다. 고작 24세에 고을 수령이 된 아들이 못 미더웠던 이재의는 다산에게 아들이 지방관으로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몇 마디 적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다산은 '영암군수 이종영을 위해 써준 증언(爲靈巖郡守李鍾英贈言)' 7항목을 써주었다. 이 가운데 고을 관리가 법 집행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단계를 논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글은 이렇다. "관직에 있으면서 형벌을 쓰는 데는 마땅히 세 등급이 있다[用刑三等]. 무릇 민사(民事)..

[정민의 世說新語] [376] 의관구체(衣冠狗彘)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말 장호(張灝)의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를 보니 "선비가 염치를 알지 못하면 옷 입고 갓 쓴 개돼지다(士不識廉恥 衣冠狗彘)"라고 새긴 인장이 있다. 말이 자못 시원스러워 원 출전을 찾아보았다. 진계유(陳繼儒)의 '소창유기(小窓幽記)'에 실린 말로 "사람이 고금에 통하지 않으면 옷을 차려입은 마소다(人不通古今 襟裾馬牛)"가 안짝으로 대를 이루었다. 말인즉 이렇다. 사람이 식견이 없어 고금의 이치에 무지해, 되는대로 처신하고 편한 대로 움직이면 멀끔하게 잘 차려입어도 마소와 다를 것이 없다. 염치를 모르는 인간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개돼지에게 갓 씌우고 옷 해 입힌 꼴이다. 염치를 모르면 못 하는 짓이 없다. 앉을 자리 안 앉을 자리를 가릴 줄 모르게 된다. 아무 데서나..

[정민의 世說新語] [375] 사기만지(死氣滿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청나라 때 시학은 당대 고증학의 영향을 받았다. 구절마다 전거(典據)가 있어 풀이를 달아야만 그 구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에서 정서는 사라지고 책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 시 짓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원매(袁枚·1716~1798)가 이런 풍조를 혐오해 이렇게 썼다. "근래 시 짓는 사람을 보니 온통 지게미에만 기대어 잗달고 성글기 짝이 없다. 마치 머리 깎은 승려의 돋은 터럭이나 솔기 터진 버선의 실밥처럼 구절마다 주석을 달았다." 제 말은 하나도 없고 남의 말을 이리저리 얽어, 그것도 풀이 글을 주렁주렁 달아야만 겨우 이해되는 시를 무슨 학문하듯 한다고 했다. '수원시화(隨園詩話)'에 나온다. 또 그는 '답이소학서(答李少鶴書)'에서 "근래 시학이 무너진 것은 주석과 풀..

[정민의 世說新語] [374] 팔십종수(八十種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목월 선생의 수필 '씨 뿌리기'에 호주머니에 은행 열매나 호두를 넣고 다니며 학교 빈터나 뒷산에 뿌리는 노교수 이야기가 나온다. 이유를 묻자 빈터에 은행나무가 우거지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언제 열매 달리는 것을 보겠느냐고 웃자 "누가 따면 어떤가. 다 사람들이 얻을 열매인데" 하고 대답했다. 여러 해 만에 그 학교를 다시 찾았을 때 키만큼 자란 은행나무와 제법 훤칠하게 자란 호두나무를 보았다. 홍익대학교 이야기일 텐데 그때 그 나무가 남아 있다면 지금은 아마도 노거수(老巨樹)가 되었을 것이다. "예순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六十不種樹)"고 말한다. 심어봤자 그 열매나 재목은 못 보겠기에 하는 말이다. 송유(宋兪)가 70세 때 고희연(古稀宴)을 했다. 감자(柑子) 열매 ..

[정민의 世說新語] [373] 화진유지(火眞有知)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홍길주(洪吉周·1786~1841)가 보은 원님으로 있을 때 일이다. 고을 효자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니 판에 박은 듯이 눈 속에서 죽순이 솟거나, 얼음 속에서 잉어가 뛰어올랐다. 꿩은 부르기도 전에 방 안으로 날아들고, 호랑이가 제 스스로 무덤을 지켰다. 그중 유독 평범해서 아주 특이한 효자가 한 사람 있었다. 구이천(具爾天)은 학문이 깊고 행실이 도타웠다. 부모를 정성을 다해 모셨다. 그뿐이었다. 이상하거나 놀랄 만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1백여 년 전의 일이었고, 그를 칭찬한 사람들은 그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었다. 선대의 유언에 따라 구씨의 효장(孝狀)은 밖에 알려지지도 않았다. 글을 다 읽은 홍길주는 아전을 시켜 후손에게 돌려주게 했다. 아전은 무심코 그것을 창고 속에 ..

[정민의 世說新語] [372] 첨제원건(尖齊圓健)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첨제원건(尖齊圓健)은 붓이 갖춰야 할 네 가지 미덕이다. 첫째는 첨(尖)이다. 붓끝은 뾰족해야 한다. 끝이 가지런히 모아지지 않으면 버리는 붓이다. 둘째는 제(齊)다. 마른 붓끝을 눌러 잡았을 때 터럭이 가지런해야 한다. 터럭이 쪽 고르지 않으면 끝이 갈라져 획이 제멋대로 나간다. 붓을 맬 때 빗질을 부지런히 해서 터럭을 가지런히 펴야 한다. 한쪽으로 쏠리거나 뭉치면 쓸 수가 없다. 셋째가 원(圓)이다. 원윤(圓潤) 즉 먹물을 풍부하게 머금어 획에 윤기를 더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한 획 긋고 먹물이 다해 갈필이 나오거나 먹물을 한꺼번에 쏟아내 번지게 하면 못쓴다. 또 어느 방향으로 운필을 해도 붓이 의도대로 움직여주어야 한다. 넷째는 건(健)이다. 붓의 생명은 탄력성에 있다. ..

[정민의 世說新語] [371] 당면토장(當面土墻)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산이 이재의(李載毅)와 사단(四端)에 대해 논쟁했다. 이재의가 논박했는데 논점이 어긋났다. 가만 있을 다산이 아니다. "이달 초 주신 편지에서 사단(四端)에 관한 주장을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과 큰 차이가 없더군요. 노형께서 많은 사람 틈에 앉아 날마다 시끄럽게 지내시다가, 이따금 한가한 틈을 타서 대충 보시기 때문에 제 글을 보실 때도 심각하게 종합하여 분석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주신 글의 내용이 제 말과 합치되는데도 결론에서는 마치 이론(異論)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더군요. 또 혹 제 주장은 애초에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주신 글에서는 한층 더 극단적으로 나가기도 했으니, 이는 모두 소란스러운 중에 생긴 일입니다. 지금 크게 바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 두 ..

[정민의 世說新語] [370] 심자양등(深者兩等)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언행휘찬(言行彙纂)'에 깊이의 두 종류를 논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사람의 깊이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심침(深沈)이다. 마치 말이 어눌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듯한데 남을 포용하고 사물을 인내한다. 속에 든 자기 생각이 분명해도 겉으로는 심후(深厚)하다. 모난 구석을 드러내지 않고, 재주를 뽐내는 법이 없다. 이것은 덕 중에서도 상등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간심(奸深)이다. 입을 꽉 닫아 마음을 감춰두고 기미를 감추고서 속임수를 쓴다. 움직임을 좋아하고 고요함을 미워하며, 드러난 자취는 어그러지고 비밀스럽다. 두 눈으로 곁눈질하고 한마디 말에도 가시가 있다. 이는 악 중에서도 특히 심한 것이다. 이 두 등급의 사람이 비록 겉모습은 비슷해보여도 찬찬히 살펴보면 큰 차이가..

[정민의 世說新語] [369] 극자만복(棘刺滿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강재항(姜在恒·1689~1756)이 쓴 '현조행(玄鳥行)'이란 시의 사연이 흥미롭다. 제비 한 쌍이 새끼 다섯 마리를 길렀다. 문간방 고양이가 틈을 노려 어미 암컷을 잡아먹었다. 짝 잃은 제비가 슬피 울며 넋을 잃고 지내더니 어느새 다른 짝을 구해 새살림을 차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가 기르던 새끼를 발로 차서 마당에 떨어뜨린 것이다. 죽은 새끼의 주둥이를 벌려보니 입 안에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다. 그 가시가 배를 찔러 잘 자라던 다섯 마리 새끼가 한꺼번에 죽었던 것이다. 새살림에 방해가 되는 새끼들이 거추장스러워 그랬을까? 아비는 제 새끼들에게 벌레를 물어다 주는 대신 가시를 물어다 먹였다. 시인은 이 대목에서 "입 더듬어 먹은 물건 살펴봤더니, 날카로운 가시..

[정민의 世說新語] [368] 방무운인(傍無韻人)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책꽂이를 정리하는데 해묵은 복사물 하나가 튀어나온다. 오래전 한상봉 선생이 복사해준 자료다. 다산의 간찰과 증언(贈言)을 누군가 베껴 둔 것인데 상태가 희미하고 글씨도 난필이어서 도저히 못 읽고 덮어두었던 것이다. 확대 복사해서 확대경까지 들이대니 안 보이던 글자들이 조금씩 보인다. 여러 날 걸려 하나하나 붓으로 필사했다. 20여 통 모두 짤막한 단간(短簡)이다. 유배지의 적막한 나날 속에 사람 그리운 심사가 애틋하다. 세 통만 소개한다. "편지 받고 부인의 병환이 이미 회복된 줄은 알았으나 그래도 몹시 놀라 탄식하였습니다. 제 병증은 전과 같습니다. 제생들이 과거 시험을 함께 보러 가서 거처가 텅 비어 적막하군요. 매일 밤 달빛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