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367] 노인지반(老人之反)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만년의 추사가 말똥말똥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 "젊어서는 닭 울어야 잠자리에 들었더니, 늙어지자 베개 위서 닭 울기만 기다리네. 잠깐 사이 지나간 서른 몇 해 일 가운데, 스러졌다 말 못 할 건 꼬끼오 저 소리뿐(年少鷄鳴方就枕, 老年枕上待鷄鳴. 轉頭三十餘年事, 不道消磨只數聲)." 제목이 '청계(聽鷄)'다. 1, 2구의 엇갈림 속에 청춘이 다 녹았다. 소중한 사람은 내 곁을 떠나고 없고, 닭 울음소리만 변함없이 내 곁을 지킨다. 젊은 시절엔 책 읽고 공부하느라 밤을 새우고 새벽닭 소리를 신호 삼아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제 늙고 보니 초저녁 일찍 든 잠이 한밤중에 한번 깨면 좀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먼동이 어서 트기만을 기다리지만 밤은 어찌 이리도 긴..

[정민의 世說新語] [366] 유구기미(唯求其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명나라 양신(楊愼, 1488-1562)이 대답한다. "번다해도 안 되고 간결해도 안 된다. 번다하지 않고 간결하지 않아도 안 된다. 어려워도 안 되고 쉬워도 안 된다. 어렵지 않고 쉽지 않아서도 안 된다. 번다함에는 좋고 나쁨이 있고, 간결함에도 좋고 나쁨이 있다. 어려움에도 좋고 나쁨이 있고, 쉬움에도 좋고 나쁨이 있다. 오직 그 좋은 것만 추구할 뿐이다.(繁非也, 簡非也, 不繁不簡亦非也. 難非也, 易非也, 不難不易亦非也. 繁有美惡, 簡有美惡, 難有美惡, 易有美惡, 唯求其美而已.)" 간결하게 쓴다고 좋은 글이 아니고 장황하게 쓴다고 나쁘지도 않다. 쉽고 편해서 훌륭하지 않고, 어렵고 난삽해서 좋은 법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간결하지도 번다하지..

[정민의 世說新語] [365] 축장요곡(築墻繞曲)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윤원형(尹元衡)은 대비 문정왕후의 오라비였다. 권세가 대단했다. 이조판서로 있을 때 누에고치 수백 근을 바치며 참봉 자리를 청하는 자가 있었다. 낭관(郞官)이 붓을 들고 대기하며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리는데 윤원형은 꾸벅꾸벅 졸고만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낭관이 "누구의 이름을 적으리까?"하고 묻자, 놀라 깬 윤원형이 잠결에 '고치!'라고 대답했다. 앞서 누에고치 바친 자의 이름을 쓰라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졸았다. 못 알아들은 낭관이 나가서 고치(高致)란 이름을 가진 자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먼 지방의 한사(寒士) 중에 이름이 고치인 자가 있었으므로 그에게 참봉 벼슬을 내렸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온다. 윤원형의 첩 정난정(鄭蘭貞)은 당시 본처를 독살하고 정실 자..

[정민의 世說新語] [364] 산인오조(山人五條)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600년(가정 17년) 소주(蘇州) 사람 황면지(黃勉之)는 과거 시험을 보려고 상경하던 중이었다. 길에서 '서호유람지(西湖遊覽志)'를 지은 전여성(田汝成)과 만나 화제가 서호(西湖)의 아름다운 풍광에 미쳤다. 황홀해진 그는 시험도 잊고 그 길로 서호로 달려가 여러 달을 구경하고서야 그쳤다. 전여성이 말했다. "그대는 진실로 산사람(山人)이오." 그러고는 산사람이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목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첫째는 산흥(山興)이다. 산 사나이는 "산수에만 탐닉하여 공명(功名)을 돌아보지 않는다(癖耽山水 不顧功名)." 산에 미쳐 산에만 가면 없던 기운이 펄펄 난다. 둘째는 산족(山足)이다. "깡마른 골격에 가벼운 몸으로 위태로운 곳을 오르고 험지를 건너간다. 번거롭게 지..

[정민의 世說新語] [363] 득조지방(得鳥之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두혁(杜赫)이 동주군(東周君)에게 경취(景翠)를 추천하려고 짐짓 이렇게 말했다. "군(君)의 나라는 작습니다. 지닌 보옥을 다 쏟아서 제후를 섬기는 방법은 문제가 있군요. 새 그물을 치는 사람 얘기를 들려드리지요. 새가 없는 곳에 그물을 치면 종일 한 마리도 못 잡고 맙니다. 새가 많은 데에 그물을 펴면 또 새만 놀라게 하고 말지요. 반드시 새가 있는 듯 없는 그 중간에 그물을 펼쳐야 능히 많은 새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군께서 대인(大人)에게 재물을 베푸시면 대인은 군을 우습게 봅니다. 소인에게 베푸신다 해도 소인 중에는 쓸 만한 사람이 없어서 재물만 낭비하고 말지요. 군께서 지금의 궁한 선비 중에 꼭 대인이 될 것 같지는 않은 사람에게 베푸신다면 소망하시는 바를 얻을 ..

[정민의 世說新語] [362] 생처교숙(生處敎熟)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宋)나라 때 승려 선본(善本)이 가르침을 청하는 항주(杭州) 절도사 여혜경(呂惠卿)에게 들려준 말이다. "나는 단지 그대에게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만들도록 권하고 싶다(我只勸你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명(明)나라 오지경(吳之鯨)이 지은 '무림범지(武林梵志)'에 나온다. 생소한 것 앞에 당황하지 않고, 익숙한 곳 속에서 타성에 젖지 말라는 말이다. 보통은 반대로 한다. 낯선 일, 생소한 장소에서 번번이 허둥대고, 날마다 하는 일은 그러려니 한다. 변화를 싫어하고 관성대로 움직여 일상에 좀체 기쁨이 고이지 않는다. 늘 하던 일이 문득 낯설어지고, 낯선 공간이 도리어 편안할 때 하루하루가 새롭고, 나날은 경이로 꽉 찬다. 이 말을 받아 조익(趙翼..

[정민의 世說新語] [361] 무구지보(無口之輔)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옛사람은 자기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박물관 구석에 놓인 거무튀튀한 구리 거울은 아무리 광이 나게 닦아도 선명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 않다. 지금이야 도처에 거울이라 거울 귀한 줄을 모른다. 연암 박지원은 자기 형님이 세상을 뜨자 이런 시를 남겼다. "형님의 모습이 누구와 닮았던고. 아버님 생각날 땐 우리 형님 보았었네. 오늘 형님 그리워도 어데서 본단 말가. 의관을 갖춰 입고 시냇가로 간다네.(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세상을 뜬 형님이 보고 싶어 의관을 갖춰 입고 냇가로 가는 뜻은 내 모습 속에 형님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물가에 서서 수면 위를 굽어본다. 거기에 돌아가신 형님이 서 계시다. 성호 이익 선생은 '경명(鏡銘..

[정민의 世說新語] [360] 유산오계(遊山五戒)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 시대에는 천하에 해먹기 어려운 일로 '금강산 중노릇'을 꼽았다. 시도 때도 없이 기생을 끼고 절집에 들어와 술판을 벌이는가 하면, 승려를 가마꾼으로 앞세워 험한 산속까지 유람했다. 폭포에서는 승려가 나체로 폭포 물길을 타고 내려와 연못에 떨어지는 쇼까지 했다. 그들은 도대체 한 발짝도 걸으려 들지 않았다. 술 마시고 놀기 바빴다. 접대가 조금만 부실하면 매질까지 했다. 홍백창(洪百昌·1702~?)이 '유산보인(遊山譜引)'에서 산을 유람할 때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 관원과 동행하지 말라. 공연히 관의 음식이나 물품에 기대게 되고, 관장이 욕심 사납게 높은 곳까지 말 타고 오를 때 덩달아 따라가다 보면 유람의 흥취가 사라지고 만다. 둘째, 동반자가 많으면 안..

[정민의 世說新語] [359] 지미위난(知味爲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말(明末) 장대(張岱·1597~1680)의 '민노자차(閔老子茶)'는 벗인 주묵농(周墨農)이 차의 달인 민문수(閔汶水)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간 이야기다. 민문수는 출타 중이었다. 집 지키던 노파는 자꾸 딴청을 하며 손님의 기미를 살핀다. 주인은 한참 뒤에야 "어째 여태 안 가셨소?" 하며 나타난다. 손님이 제풀에 지쳐 돌아가기를 기다렸던 것. 장대는 "내가 집주인의 차를 오래 사모해왔소. 맛보지 않고는 결단코 안 갈 셈이오." 무뚝뚝한 주인은 그제야 손님을 다실로 이끈다. 전설적인 최고급 다기 십여 개가 놓인 방에 안내되어 끓여온 차 맛을 본 장대가 "무슨 차입니까?" 하자, 낭원차(閬苑茶)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군요..

[정민의 世說新語] [358] 골경지신(骨鯁之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성종 8년(1477) 8월에 간관(諫官) 김언신(金彦辛)이 재상 현석규(玄碩圭)를 탄핵하며 소인 노기(盧杞)와 왕안석(王安石)에게 견주었다. 임금이 펄펄 뛰며 묻자 대신들은 현석규가 소인인 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의금부에서 김언신에게 장(杖) 100대를 친 뒤 섬에 3년간 귀양 보낼 것을 청했다. 임금은 사형에 처해도 시원찮은데 처벌이 너무 가볍다며 화를 냈다. 동지중추부사 김뉴(金紐)가 상소했다. "대간은 임금의 눈과 귀입니다. 말이 임금에게 미치면 지존이 자세를 가다듬고, 일이 조정과 관계되면 재상이 대죄합니다. 신분 낮은 간관이 감히 임금 앞에서 간쟁하였으니 말이 맞지 않더라도 옛날 골경지신(骨鯁之臣)의 기풍이 있습니다. 실로 포상하고 장려하여 선비들을 권면해야 할 것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