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357] 지도노마(知途老馬)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제나라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桓公)을 모시고 고죽성(孤竹城) 정벌에 나섰다. 봄에 출정해서 겨울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회정 도중 멀고 낯선 길에 군대가 방향을 잃고 헤맸다. 관중이 말했다.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라." 늙은 말이 앞장서자 그를 따라 잃었던 길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시 산속을 가는데 온 군대가 갈증이 심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물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는 산 남쪽에 살고, 여름에는 산 북쪽에 산다. 개미 흙이 한 치쯤 쌓인 곳에 틀림없이 물이 있다." 그곳을 찾아 땅을 파자 과연 물이 나와 갈증을 식힐 수 있었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편에 나온다. 늙은 말은 힘이 부쳐서 아무..

[정민의 世說新語] [356] 지방지술(止謗之術)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젊은 시절 다산은 반짝반짝 빛났지만 주머니에 든 송곳 같았다. 1795년 7월 서학 연루 혐의로 금정찰방에 좌천되었다. 이때 쓴 일기가 '금정일록(金井日錄)'이다. 이삼환(李森煥·1729~1814)이 다산에게 위로를 겸해 보낸 편지 한 통이 이 가운데 실려 있다. 글을 보니 젊은 날의 다산이 훤히 떠오른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예전 어떤 사람이 문중자(文中子)에게 비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止謗之術]을 물었다더군. 대답은 '변명하지 말라[無辯]'였다네. 이는 다만 비방을 그치게 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바탕을 함양하는 공부에도 마땅히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걸세. 어찌 생각하시는가?" 비방이 일어나 나를 공격할 때 말로 따져 상대를 눌러 이길 생각을 말아야 한다. 설사..

[정민의 世說新語] [355] 후피만두(厚皮饅頭)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당나라 때 유종원(柳宗元)이 한유(韓愈)의 문장을 평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남의 것을 본뜨거나 슬쩍 훔쳐[模擬竄竊], 푸른색을 가져다가 흰빛에 견주고[取靑嫓白], 껍질은 살찌고 살은 두터우며[肥皮厚肉], 힘줄은 여리고 골격은 무른데도[柔觔脆骨] 글깨나 한다고 여기는 자의 글을 읽어보면 크게 웃을 수밖에 없다." 글재간만 빼어나고 기운이 약한 글을 나무란 내용이다. '송음쾌담(松陰快談)'에 나온다. 유종원이 제시한 속문(俗文)의 병폐를 차례로 짚어보자. 먼저 모의찬절(模擬竄竊)은 흉내 내기와 베껴 쓰기다. 글은 번드르르한데 제 말은 없고 짜깁기만 했다. 다음은 취청비백(取靑嫓白)이다. 푸른빛과 흰빛을 잇대 무늬가 곱고 아롱져도 실다운 이치는 찾기 힘든 글이다. 다음은 비..

[정민의 世說新語] [354] 신기위괴(新奇爲怪)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성대중(成大中·1732~1809)이 '질언(質言)'에서 말했다. "나약함은 어진 것처럼 보이고, 잔인함은 의로움과 혼동된다. 욕심은 성실함과 헛갈리고, 망녕됨은 곧음과 비슷하다(懦疑於仁, 忍疑於義, 慾疑於誠, 妄疑於直)." 나약함은 어짊과 거리가 먼데 사람들이 자칫 헷갈린다. 잔인한 행동이 의로움으로 포장되는 수가 많다. 욕심 사나운 것과 성실한 것을 혼동하면 주변이 힘들다. 망녕된 행동을 강직함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또 말했다.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 엄격하나 잔인하지 않고, 너그러워도 느슨하지 않는다(淸而不刻, 和而不蕩, 嚴而不殘, 寬而不弛)." 청렴의 이름으로 각박한 짓을 한다. 화합한다더니 한통속이 된다. 엄격함과 잔인함은 구분이 필요하다..

[정민의 世說新語] [353] 조병추달 (操柄推達)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553년 김주(金澍, 1512~1563)가 북경에 갔다. 밤중에 '주역'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밤 불 밝힌 방 하나가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그는 절서(浙西)에서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북경에 온 수험생이었다. 시험에 낙방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연관(燕館)에서 날품을 팔며 다음 과거를 준비한다고 했다. 김주는 그에게 비단을 선물하고 즉석에서 조선 부채에 글을 써서 주었다. "대나무로 깎은 것은 절개를 취함이요, 종이를 바른 것은 깨끗함을 취해설세. 머리 쪽을 묶음은 일이관지(一以貫之) 그 뜻이고, 꼬리 쪽을 펼치는 건 만수(萬殊) 다름 보임이라. 바람을 일렁이면 더위를 씻어주고, 먼지가 자욱할 땐 더러움을 물리치지. 자루를 잡았으니[操柄..

[정민의 世說新語] [352] 장수선무 (長袖善舞)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해외에서 터무니없는 학술 발표를 듣다가 벌떡 일어나 일갈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영어 때문에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있다 보면 왜 진작 영어 공부를 제대로 안 했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신라 때 최치원도 그랬던가 보다. 그가 중국에 머물 당시 태위(太尉)에게 자기추천서로 쓴 '재헌계(再獻啓)'의 말미는 이렇다. "삼가 생각건대 저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통역하고 성대(聖代)의 장구(章句)를 배우다 보니, 춤추는 자태는 짧은 소매로 하기가 어렵고, 변론하는 말은 긴 옷자락에 견주지 못합니다(伏以某譯殊方之語言, 學聖代之章句, 舞態則難爲短袖, 辯詞則未比長裾)." 자신이 외국인이라 글로 경쟁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만큼은 저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안타까..

[정민의 世說新語] [351] 호명자표 (好名自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두예(杜預)는 비석 두 개에 자신의 공훈을 적어 새겼다. 하나는 한수(漢水) 속에 가라앉히고 다른 하나는 만산(萬山)의 위에 세웠다. 그러고는 말했다. "후세에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짝이 언덕이 될 수도 있다." 백거이(白居易)가 자신의 시고(詩稿)를 모아 정리한 후 불상에 복장(腹藏)으로 넣게 했다. 여산의 동림사(東林寺)와 동도(東都)의 성선사(聖善寺), 그리고 소주의 남선원(南禪院)에 각각 보냈다. 책마다 기문을 따로 적었다. 어느 하나가 망실돼도 다른 것은 남을 테니 일종의 보험을 들어둔 셈이었다. 사조제(謝肇淛)가 덧붙였다. "사람이 이름을 좋아함이 참 심하다. 두 사람의 공적과 문장이라면 어찌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그런데도 오히려 스스로..

[정민의 世說新語] [350] 우각괴장 (牛角壞墻)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박지원의 '답응지서(答應之書)'에 "네 쇠뿔이 아니고야 내 집이 어찌 무너지랴(非汝牛角, 焉壞我屋)"란 속담을 소개하고 "이는 남을 탓하는 말(此咎人之辭也)"이라고 풀이했다. 정약용도 속담 모음인 '백언시(百諺詩)'에서 "네 쇠뿔이 아니고야 내 담이 어찌 무너지랴(匪爾牛角, 我墻何覆)"를 인용했다. 그 아래 달린 풀이 글은 이렇다. "네가 비록 네 잘못이 아니라 해도 네가 아니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란 말이다(言爾雖曰非我有咎, 非爾無此患也)" 예전에 자주 쓰던 표현임을 알겠다. 말짱하던 담장이 허물어졌다. 이게 웬일인가? 놀라 나가보니 마침 옆집 소가 어슬렁거리며 지나간다. 그는 옆집을 찾아가 따진다. "네 소가 들이받아 내 담이 무너졌다. 당장 고쳐 놓아라." "그럴 리가?" ..

[정민의 世說新語] [349] 행역방학(行役妨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삼환(李森煥·1729~1814)이 정리한 '성호선생언행록'의 한 단락. "여행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行役妨學). 길 떠나기 며칠 전부터 처리할 일에 신경을 쓰고 안장과 말, 하인을 챙기며 가는 길을 점검하고 제반 경비까지 온통 마음을 쏟아 마련해야 한다. 돌아와서는 온몸이 피곤하여 심신이 산란하다. 며칠을 한가롭게 지내 심기가 겨우 안정된 뒤에야 다시 전에 하던 학업을 살필 수가 있다. 우임금도 오히려 촌음의 시간조차 아꼈거늘 우리가 여러 날의 시간을 헛되이 허비한다면 어찌 가석하지 않겠는가?" 공부하는 사람은 여행조차 삼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일상의 리듬이 한 번 깨지면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 공부는 맥이 끊기면 다시 잇기 어렵다. 애써 쌓아가던 공부가 제자리를 잡기까지 다..

[정민의 世說新語] [348] 석복겸공 (惜福謙恭)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만나는 사람마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 새해다. 한때 '부자 되세요'가 새해 덕담일 때도 있었다. 복은 많이 받아 좋고 돈은 많이 벌어야 신나지만 너무 욕심 사납다 싶어 연하장에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쓴 것이 몇 해쯤 된다. 엮은이를 알 수 없는 '속복수전서(續福壽全書)'의 첫 장은 제목이 석복(惜福)이다. 복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끼라는 뜻이다. 여러 예를 들었는데 광릉부원군 이극배(李克培)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온다. 그는 자제들을 경계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물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어 있다. 너희는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러고는 두 손자 이름을 수겸(守謙)과 수공(守恭)으로 지어주었다. 석복의 처방으로 겸손과 공손함을 제시했다. 다시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