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284] 일엽지추 (一葉知秋)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두순(趙斗淳·1796~1870)이 낙향하는 집안 사람을 위해 시를 써주었다. "오동 한 잎 날리자 천하가 가을이라, 가을 바람 가을비만 외론 누각 가득하다. 그대 아직 서울 미련 있음을 내 알지만, 그저 근심뿐이려니 머물 생각 감히 마소(一葉梧飛天下秋, 秋風秋雨滿孤樓. 知君更有門閭戀, 未敢相留秪自愁)." 첫 구는 연원이 있다. '회남자(淮南子)' '설산훈(說山訓)'에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보니, 잎 하나 지는 것을 보고 한 해가 장차 저무는 줄을 안다(以小見大,見一葉落而知歲之將暮)"라 했다. 또 당나라 어느 시인은 "산승이 날짜를 꼽을 줄은 몰라도, 한 잎 지면 천하에 가을 옴은 안다네(山僧不解數甲子,一葉落知天下秋)"란 구절을 남겼다. 여름철의 비바람을 끄덕 않고 다 ..

[정민의 世說新語] [283] 삼심양합 (三心兩合)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근세 중국의 기재(奇才) 서석린(徐錫麟·1873~1907)은 독서에서 삼심양합(三心兩合)의 태도를 중시했다. 먼저 삼심은 독서할 때 지녀야 할 세 가지 마음가짐이다. 전심(專心)과 세심(細心), 항심(恒心)을 꼽았다. 전심은 모든 잡념을 배제하고 마음을 오롯이 모아 책에 몰두하는 것이다. 세심은 말 그대로 꼼꼼히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훑는 자세다. 그는 책을 읽다가 중요한 대목이나 좋은 구절과 만나면 표시해두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부친에게 나아가 물어 완전히 안 뒤에야 그만두었다. 항심은 기복 없는 꾸준한 마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밥을 먹어야 하고 날마다 책을 읽어야 한다. 하루만 굶으면 배가 고프고 하루만 안 읽으면 머리가 고프다." 안중근 의사가 "하..

[정민의 世說新語] [282] 약상불귀(弱喪不歸)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변방 관리의 딸 여희(麗姬)가 진(晉)나라로 시집가게 되자 슬피 울어 눈이 퉁퉁 부었다. 막상 궁궐로 들어가 왕과 한 침대를 쓰고 맛난 고기로 매 끼니를 먹게 되니 시집올 때 엉엉 울던 일을 금세 후회했다. '장자(莊子)' '제물(齊物)'에 나온다. 장자가 덧붙인다.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려서 고향을 떠나와[弱喪] 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닌 줄 내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耶)?"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죽고 나서 내가 어째서 그렇게 살려고만 발버둥 쳤을까 하고 후회하게 될지 누가 알겠느냐는 뜻이다. 승지 유광천(柳匡天·1732~?)이 자신의 집에 귀락와(歸樂窩)란 편액을 걸고 위백규(魏伯珪·1727~1798)에게 글을 청했다. 위백규가 말했다. "우리 ..

[정민의 世說新語] [281] 한운불우 (閑雲不雨)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책상 속 낡은 물건을 정리하는데 해묵은 글씨 하나가 나온다. '한운불우(閑雲不雨)'란 네 글자가 적혀 있다. 빈 하늘을 떠도는 한가로운 구름은 결코 비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은 비가 되어 내려와 지상의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그 소임을 마친다. 게을리 놀기만 하면 보람을 거둘 날이 없다는 뜻일까?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려면 왕성한 기운이 한데 모여 걷잡을 수 없이 흘러넘쳐야 한다. 쉬엄쉬엄 느릿느릿 배를 깔고 떠가는 구름은 보기에는 여유로워도 산 중턱에서 이리저리 흩어지고 만다. 송나라 육유(陸游·1125~1210)의 '유교만조(柳橋晩眺)'란 시에 이 구절이 나온다. 시는 이렇다. "작은 물가 고기 뛰는 소리 들리고, 누운 숲서 학 오기를 기다리노라. 한가한 구름은 비가 못..

[정민의 世說新語] [280] 옹독취보 (甕櫝聚寶)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오정한(吳廷翰·1491~1559)의 책상 옆에는 나무로 짠 궤 하나와 옹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책을 읽다가 의혹이 생기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얼른 적어 그 안에 담아 두었다. 역사책을 읽다가 일어난 의문은 항아리 속에 넣고, 경서를 읽다가 떠올린 생각은 궤에 담았다. 각각 상당한 분량이 되자 그는 이를 따로 엮어 책 한 권으로 묶었다. 옹기에 담긴 메모는 '옹기(甕記)'란 책이 되고, 궤에 든 쪽지는 '독기(櫝記)'란 책이 되었다. 중국 역사학자 이평심(李平心·1907~ 1966)은 오근독서법(五勤讀書法)을 강조했다. 독서에서 다섯 가지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가 꼽은 다섯 가지는 부지런히 읽고(근열독·勤閱讀), 부지런히 초록해 베껴 쓰며(근적록·勤摘錄), 부지..

[정민의 世說新語] [279] 명계양지(冥契陽贄)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과거에 응시했던 수험생이 낙방하자 투덜대며 말했다. "시험장에서 좋은 글은 뽑히질 않고, 뽑힌 글은 좋지가 않더군." 듣던 사람이 대답했다. "시험관이란 두 눈을 갖춘 자라 글이 좋고 나쁜지는 한 번만 봐도 대번에 알아 속일 수가 없다네. 그래서 문형(文衡)이라 하지. 대개 동시에 합격한 사람 중에는 그 자신이 덕을 쌓아 저승에 미리 기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조상이 덕을 지녀 후세에 보답을 받는 수도 있네. 그 사람의 글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진실로 귀신이 도움을 더해주고자 하는 바일세. 이에 시관(試官)이 덩달아 이를 거두게 되지. 그래서 선비 된 사람은 글을 닦아 양지(陽贄)로 삼고, 마음을 닦아 명계(冥契)로 삼는다네." 양지(陽贄)는 겉으로 드러난 보답을 말하고..

[정민의 世說新語] [278] 공자명강(公慈明剛)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명나라 설선(薛瑄·1389~1464)의 '종정명언(從政名言)'은 중국에서보다 일본 막부에서 더 인기가 높아 여러 차례 출간된 책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위정자의 마음가짐을 적은 짧은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옥사를 다스리는 데는 네 가지 요체가 있다. 공정함과 자애로움, 명백함과 굳셈이 그것이다. 공정하면 치우치지 않고, 자애로우면 모질지가 않다. 명백하면 능히 환히 비출 수 있고, 굳세야만 단안할 수가 있다(治獄有四要 公慈明剛 公則不偏 慈則不刻 明則能照 剛則能斷)." 치옥의 네 요소로 꼽은 것이 공자명강(公慈明剛)이다. 법은 공정하되 자애롭게, 명백하되 굳세어 결단력 있게 집행해야 한다. 공정을 잃은 자애는 봐주기나 편들기가 되고 명백하지 않은 굳셈은 독선과 아집으로 흐른다. ..

[정민의 世說新語] [277] 공이불명(公而不明)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734년 5월 영조가 경연(經筵)에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공정해도 현명치 않으면 어진 이를 어리석다 하고 어리석은 자를 어질다 하게 된다. 현명하나 공정치 않으면 비록 그가 어진 줄 알아도 능히 쓰지 않고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능히 버리지 못한다. 쓰고 버림의 분별이 또한 어렵지 아니한가?(公而不明, 則以賢爲愚, 以愚爲賢. 明而不公, 則雖知其賢, 不能用, 雖知其愚, 不能舍. 用舍之分, 不亦難哉?)" 서명응(徐命膺)이 엮은 '영종대왕행장(英宗大王行狀)' 중에 나온다. 공정함만 따질 뿐 현명함이 결여된 것이 공이불명(公而不明)이요, 현명하나 공정함을 잃게 되면 명이불공(明而不公)이다. 공(公)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다. 공평하고 공정하려면 밝은 판단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

[정민의 世說新語] [276] 과숙체락 (瓜熟蒂落)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귀명(趙龜命)의 '동계집(東谿集)'에 '정체(靜諦)'란 글이 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길어올린 깨달음의 단상을 포착했다. 그중 '정좌(靜坐)'의 몇 구절을 읽어본다. "고요히 앉아 내면을 응시하면 마음에서 환한 빛이 나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비쳐 잡념이 생겨나지 않는다. 비록 다른 소리가 귀를 스쳐가도 아예 들리지 않는다.(靜坐內視 心體光明, 如琉璃映徹 雜念不生. 雖過耳聲音, 了無將迎.)" "묵묵히 앉아 향을 사를 때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리면 또한 절로 마음이 기쁘다.(默坐燒香, 聞窓外禽聲, 亦自怡悅.)" "앞일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마음이 고요하면 앞일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잠잘 때만 마음이 잠깐 고요해져서 꿈속에서 앞일을 알게 되는데 하물며 늘 고요한 사람이..

[정민의 世說新語] [275] 서해맹산 (誓海盟山)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혼자 다락 위에 기대 나라의 형세를 생각하니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 같다. 안에는 계책을 결단할 동량의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다. 종묘사직이 끝내 어디에 이를지 심사가 번잡하고 어지러워 온종일 엎치락뒤치락했다.' 충무공 '난중일기' 중 1595년 7월 1일 기록이다. 그는 자주 악몽에 시달리고 불면에 괴로워했다. 소화기가 안 좋았던 듯 토사곽란을 달고 살았다. 4수 남은 시 속에서도 그는 늘 잠을 못 이룬다.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에서는 "근심겨운 마음에 뒤척이는 밤, 새벽 달빛 활과 칼을 비추는구나(憂心輾轉夜, 殘月照弓刀)"라 했고, '무제6운(無題六韻)'에서는 "우수수 비바람 몰아치는 밤, 또랑또랑 잠조차 이루지 못해. 아픔 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