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402

[정민의 世說新語] [578] 박견집몌 (拍肩執袂)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때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요즘은 천박해져서 서로 즐기며 함부로 대하는 것을 뜻이 맞는다고 하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는 것을 좋아하여 아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같은 것이 어찌 능히 오래가겠는가?(近世淺薄, 以相歡狎, 爲相與, 以無圭角, 爲相歡愛. 如此者, 安能久?)" 속류들의 우정을 말했다. 허물없이 함부로 대하고, 싫은 소리 안 하면 금세 지기라도 만난 듯이 속없이 군다. 그러다 사소한 일로 틀어져서 다시 안 볼 듯이 원수가 된다. 장횡거(張橫渠)의 말은 또 이렇다. "오늘날의 벗은 나긋나긋하게 잘하는 사람만 가려서 서로 어울리고, 어깨를 치며 옷소매를 잡는 것을 의기가 투합한다고 여긴다. 그러다가 한마디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성을 버럭 낸다. 벗과의 사이에는..

[정민의 世說新語] [577] 부작무익 (不作無益)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꼭 해야 할 일은 버려두고, 굳이 안 해도 좋을 일이나 해서는 안 될 일만 찾아서 한다. 잠깐 통쾌함으로 백일의 근심과 맞바꾼다. 윤기(尹愭·1741~1826)가 '정고(庭誥)'에서 말했다. "'서경'에서는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함을 해치지 말라(不作無益害有益)'고 했다. 대개 무익한 일을 하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그 폐단이 반드시 해로운 데 이르는 까닭에 성현께서 경계로 삼으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을 살펴보니 유익함과 무익함의 구분이 너무도 분명해서, 말 한마디 동작 하나도 자기에게 유익하면 하고, 무익하면 하지 않는다. 남이 어떤 사람을 위해 충성하는 것을 보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나무라고, 제 몸을 위한 꾀에 재빠르지 않으면 허술한 사람이라고 비웃는다. 소위 무익한 ..

[정민의 世說新語] [576] 백려일소 (百慮一掃)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사람 간 접촉이 줄며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가난한 서생의 적막한 시간 사이를 엿보며 놀았다. "망상(妄想)이 내달릴 때 구름 없는 하늘빛을 올려다보면 온갖 생각이 단번에 사라진다. 그것이 바른 기운이기 때문이다. 또 정신이 좋을 때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바위 하나, 물 하나, 새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를 가만히 살피노라면 가슴속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 흔연히 자득함이 있는 것만 같다. 다시금 자득한 것이 뭘까 하고 따져보면 도리어 아득해진다(妄想走作時, 仰看無雲之天色, 百慮一掃, 以其正氣故也. 且精神好時, 一花一草一石一水一禽一魚靜觀, 則胷中烟勃雲蓊, 若有欣然自得者. 復理會自得處, 則却茫然矣)." 끝 ..

[정민의 世說新語] [575] 정식정팽 (鼎食鼎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에게 제자 자목(子牧)이 투덜댄다. "선생님! 벗이란 한 방에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와 같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고상한 사대부와는 가까이하지 않고, 똥 푸는 엄행수와 벗이 되려 하시니, 제가 너무 창피합니다. 문하를 떠나겠습니다." 이덕무가 달랜다. "장사꾼은 이익으로 사귀고, 대면해서는 아첨으로 사귄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워도 세 번씩 거듭 청하면 멀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고, 묵은 원한이 있더라도 세 번을 주면 친해지지 않음이 없다. 하지만 이익을 가지고는 사귐을 잇기가 어렵고, 아첨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큰 사귐은 굳이 얼굴을 맞댈 것이 없고, 훌륭한 벗은 착 붙지 않는 법이지.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벗을 삼아야 도의(道義)의 사귐인 게다." ..

[정민의 世說新語] [574] 찰풍오술 (察風五術)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당나라 덕종이 즉위하자 지방 관리를 안찰하는 출척사(黜陟使)로 유하(庾何) 등 11인을 내보내 지역별로 살피게 했다. 육지(陸贄)가 이들을 위해 찰풍오술(察風五術), 즉 풍속을 살피는 다섯 가지 방법에 대해 말한 것이 있다. "노래를 듣고서 그들의 슬픔과 즐거움을 살피고, 장사치를 불러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본다. 문서를 살펴 그들이 소송하여 다투는 내용을 검토하고, 수레와 복장을 보아 검소하고 사치한 것을 가늠한다. 작업을 줄여서 취하고 버리는 것을 따져 본다.(聽謠誦, 審其哀樂. 納市賈, 觀其好惡. 訊簿書, 考其爭訟. 覽車服, 等其儉奢. 省作業, 察其趣舍.)"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가 궁금하면 그들이 즐겨 부르는 유행가를 들어보면 안다. 그들의 관심사는 상인들을 불러 잘 ..

[정민의 世說新語] [573] 우수운산 (雨收雲散)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육유(陸游)가 성도(成都)의 늦봄에 명승 마하지(摩訶池)를 찾았다. 따스한 볕에 꽃들이 활짝 피었다. 풍악이 울리고, 귀족들의 행차로 경내가 떠들썩했다. 육유는 '수룡음(水龍吟)'에서 이런 경물과 풍광을 묘사한 뒤 "슬프다 좋은 시절 문득 바뀌면, 남몰래 넋은 녹아, 비 걷히고 구름은 흩어지겠지(惆悵年華暗換, 黯銷魂, 雨收雲散)"라고 썼다. 청춘의 꿈은 가뭇없고, 이 풍광도 곧 자취 없이 스러질 것이다. 이 시 이후로 '우수운산(雨收雲山)'은 분명히 존재하던 어떤 것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 상황을 뜻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 무명씨의 '벽도화(碧桃花)'에도 이런 시가 나온다. "우렛소리 크게 울려 산천을 진동하니, 이때 누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비가 개고..

[정민의 世說新語] [572] 부초화형 (腐草化螢)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연암 박지원이 박제가를 위해 써준 '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말했다. "천지가 비록 오래되었어도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해묵어도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 책에 실린 것이 아무리 넓어도 가리키는 뜻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날고 잠기고 달리고 뛰는 것 중에는 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럽고 영험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이 영지를 길러내고, 썩은 풀은 반딧불이로 변한다(天地雖久, 不斷生生, 日月雖久, 光輝日新. 載籍雖博, 旨意各殊. 故飛潛走躍, 或未著名. 山川草木, 必有秘靈. 朽壤蒸芝, 腐草化螢.)" 썩은 풀이 반딧불이로 변한다는 부초화형(腐草化螢)은 '예기(禮記)' 월령(月令) 편에 나온다. "계하(季夏)의 달에는 썩은 풀이 반..

[정민의 世說新語] [571] 주심제복 (注心臍腹)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는 뜬생각이 늘 문제다. 홍대용(洪大容)이 연행 길에서 만난 중국 선비 조욱종(趙煜宗)에게 공부하는 법을 친절히 일러준 '매헌에게 주는 글(與梅軒書)'에도 이에 대한 걱정을 담았다. "뜬생각을 하루아침에 말끔하게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잊지 않으면서, 여기에 더해 맑게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간혹 평온치 않은 심기가 나를 옥죄어 떠나지 않거든, 바로 묵묵히 앉아서 눈을 감고, 마음을 배꼽에 집중시켜라. 그러면 정신이 집으로 돌아오고, 뜬 기운이 물러나 고분고분해진다(凡浮念不可一朝凈盡. 惟貴勿忘, 隨加澄治. 或値心氣不平, 纏縛不去, 卽默坐闔眼, 注心臍腹. 神明歸舍, 浮氣退聽)." 글 속에 나오는 주심제복(注心臍腹), 즉 마음을 배꼽에 집중시키라는 말이 귀..

[정민의 世說新語] [570] 정념실덕 (正念實德)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생각만 많고 내가 버겁다. 이수광(李睟光)의 잡저 중에 '경어잡편(警語雜編)'을 읽어 마음을 가다듬는다. 후지(後識)에 이렇게 썼다. "내가 시골집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인사(人事)를 폐(廢)해 끊고, 정좌존심(靜坐存心)의 법을 시험 삼아 행하였다. 한두 달 뒤부터는 글을 보면 그전에 뜻이 통하지 않던 곳도 자못 의미가 통해 막히는 것이 적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짧은 성찰 수십 조목을 모아 두었다. "눈은 마음의 깃발이다. 보는 곳이 높으면 마음도 따라서 올라가고, 보는 것이 낮으면 마음도 덩달아 내려온다. 그래서 '목용단(目容端)', 즉 눈을 단정히 두라고 하니, 대개 보는 것이 단정하면 마음은 절로 바르게 된다(眼者, 心之旗也. 視高則心..

[정민의 世說新語] [569] 주영렴수 (晝永簾垂)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연암 박지원은 개성 시절, 그곳 선비 양인수(梁仁叟)의 거처에 주영렴수재(晝永簾垂齋)란 당호를 붙여주고 '주영렴수재기'를 지었다. 주영렴수(晝永簾垂)는 송나라 소옹(邵雍)의 '늦봄에 읊다(暮春吟)'에 "봄 깊어 낮은 긴데 주렴을 드리운 곳, 뜨락엔 바람 없이 꽃이 홀로 날린다(春深晝永簾垂地, 庭院無風花自飛)"고 한 데서 따왔다. 그의 네 칸짜리 초당은 중국식 둥근 창에 격자무늬 교창(交窓)까지 둔 예쁜 집이다. 남쪽에서 실어온 대나무 사립에, 설리목(雪梨木)이 10여 그루,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있다. 뜨락엔 흰 돌을 깔았다. 끌어온 냇물이 섬돌 밑을 지나 네모진 연못이 된다. 이것이 이 집의 외양이다. 방 안에는 오궤(烏几)와 금(琴), 검과 향로, 술병, 다조(茶竈),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