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94]쇠스랑 스푼

bindol 2022. 10. 2. 19:50
[이규태코너][6694]쇠스랑 스푼 발행일 : 2006.01.18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중국 고대 은나라 임금들의 관 곁에 는 밥그릇과 젓가락이 놓여있기 마련이며,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식기와 숟가락 젓가락 등 식구(食具)가 출토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장례에서 장지로 가기 위해 출관(出棺)할 때 문턱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밟아 깨고 나가게끔 돼 있다. 본래는 고인이 항상 쓰던 밥그릇이었던 것이 깨기 힘들자 바가지로 대체된 것이다. 관북지방에서는 밟아 깨지 않고 사기 밥그릇을 동댕이쳐 깬다고도 한다. 이것은 망인의 넋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행위로 그 많은 생활도구 가운데 식기나 식구가 그 망인과 가장 밀착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식사문화에서 젓가락, 숟가락, 밥그릇은 개인에 속하는 점유물이다. 내 숟가락 내 밥그릇이 따로 있으며 아무나 갖다 쓰지 못한다. 곧 그 사람과 영적으로 밀착돼 있는 생활도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서양의 식사문화에선 식기나 식구가 그 개인에 밀착돼 있다는 법이 없으며 아무나 써도 무방하다. 곧 비인격화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이 식구문화가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화되어 변질돼 있음을 절감케 하는 독자투고가 있었다. 열 살 난 초등학교 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제상에 얹는 숟가락 젓가락 대신 쇠스랑 스푼을 대신한 것을 두고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는 내용이다. 혼백사회에서 낯선 외래문물은 소외당해 쓸모가 없기에 쇠스랑 스푼은 영혼을 굶주리게 한다는 아버지와, 살았을 때 평소에 들고 먹었던 것이어야 영혼도 편히 들고 먹을 수 있다는 어머니와의 갈등이었다. 스푼 끝을 갈라지게 한 포크와 스푼 겸용의 이 쇠스랑 스푼이야말로 서양화해가는 한국 문화의 기구한 몰골을 노출시킨 것으로 젓가락 문화의 쇠퇴를 포크문화가 메우고 있다는 문화사의 증거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이 쇠스랑 스푼 사용을 젓가락 전용으로 권고해온 덕분에 초·중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아이들이 20년래 반감했으며 줄어가는 추세라 했다. 곧 서구문명의 사태에서 전통문명의 문명구제운동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 된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식구문화의 문명좌표를 그려보았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