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75]라운드 보이

bindol 2022. 10. 3. 05:46
[이규태코너][6675]라운드 보이 발행일 : 2005.11.16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로마 제국 안에는 최대 30만명을 수용했다는 원형극장이 250개 이상 있었다. 이곳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갈리아 게르마니아 등지에서 잡아온 노예들과 죄수들에게 검투(劍鬪)를 시켜 죽였다. 이렇게 해서 용맹이 드러나면 황제가 자유민으로 해방시킨다. 이 살벌한 피의 잔치에 대해 원성이 높아지자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미녀를 꽃수레에 태워 경기장을 한 바퀴 돌려 그 처절함을 완화시켰고 그것이 복싱에서 라운드 걸의 시초라는 설이 있다. 18세기 영국에서의 복싱은 한쪽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야 한 라운드가 끝나는 것으로 돼있었고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선수의 아내나 어머니들이 격앙되어 링에 뛰어올라 여인들끼리의 싸움으로 변질하곤 했다. 관객은 이 여인들의 격투에 보다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이에 흥행상 의미가 있다고 판단, 라운드 걸을 발상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살벌한 남자 간의 경기 무드를 완화시키려는 저의에서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고려 때부터 즐겼던 격구(擊毬)는 말을 타고 공을 몰아 구문(毬門)에 넣는 한국화한 폴로 경기로 격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격구가 아름다운 미녀의 시구로 시작되었었다. ‘태조실록’에 적힌 바로, 두 편으로 갈라진 그 사이로 기생 하나가 공을 쳐들고 노래부르며 다가가 ‘뜰에 가득한 풍악과 깃발 숲 위로 공이 나는데…’로 시작되는 포구락(抛毬樂)을 읊는다. 그리고서 공을 던지면 양편 선수들이 이 공을 쫓아 경기가 시작되었다. 사라졌던 격구의 부활을 운운했던 태종 때 부대언(副代言) 벼슬의 김자(金?)가 전대(고려)에 격구를 던지는 미녀와 음풍(淫風)이 혹심했음을 들어 반대하자 태종은 ‘지금 세상에 격구가 없어 음풍이 없다더냐’고 반문한 것으로 미루어 이 라운드 걸과의 염문이 잦았던 것 같다. 이 한국판 라운드 걸이 시구 때 연주하고 불렀던 가무는 포구락이라 하여 독립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라운드 걸 대신 일전 서울에서 있었던 세계 여자선수권대회 복싱에서 더벅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라운드 보이가 등장, 눈길을 끌었다. 여자 복싱이기에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경기무드를 완화시키는 효과로서는 아직은 미흡한 라운드 보이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