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70]‘우리’商號 시비

bindol 2022. 10. 3. 05:53
[이규태코너][6670]‘우리’商號 시비 발행일 : 2005.11.04 / 여론/독자 A38 면
▲ 종이신문보기시중의 11개 은행이 ‘우리은행’이 쓰고 있는 우리 상호를 쓰지 말아 달라는 공동명의의 소송 1심에서 우리라는 상호를 써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여타 은행들에서 자기 은행을 호칭할 때 우리 은행이라는 보통명사를 쓰게 마련인데 그것이 고유명사인 특정은행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 혼란을 일으킨다는 것이요, 우리은행측에서는 관련법과 절차를 거쳐 적법하게 얻은 이름으로 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맞섰었다. 이 갈등은 여당인 ‘열린 우리당’의 당명과도 연계되어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라는 말을 상호나 당명으로 선호하는 것은 한국사람이 우리라는 호칭에서 이질감 아닌 공감대를, 소외감 아닌 친화력을, 원심력 아닌 구심력을 감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 민요 ‘즐거운 나의 집’에 “내 쉴 곳은 작은 나의 집ㅡ” 하는 대목이 있다. 어릴 적에 이 대목을 흥얼거리다가 “네놈 집이 어데 있어ㅡ” 하며 할아버지로부터 담뱃대로 어깨를 맞은 적이 있는데, 따지고 보면 한국에는 우리 집은 있어도 내 집은 없다. 스물일곱 아이들을 거느린 구걸 방랑에 지친 흥부 마누라가 이러지 말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이때 흥부는 “스물일곱 등짝의 훈김 없이 얼어죽으려 하오” 하고 일축해 버린다. 한국인은 우리라는 포근한 이불을 더불어 덮고 훈김을 나누고 사는 적자들이다. 그 때문에 가난해도, 굶주려도, 악정 아래서도, 나라를 빼앗겨도 살아내게 한 우리다. 우리 엄마,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 고향, 우리나라 등등 우리를 이 땅에 굳세게 있게 한 원동력이요,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선택받는 0순위의 정신자원이다.

유럽·중동 여러 나라들을 비롯, 이웃인 일본·중국 사람들마저도 자기 집은 물론 부모형제를 비롯해 다니는 학교-회사, 소속된 국가-민족을 말할 때 한국사람처럼 우리 호칭을 쓴다는 법은 없다. 우리는 한국인의 심성을 표출하는 정체성이요 한국인을 대변하는 대표적 패러다임이다. 우리 상호를 둔 시비 갈등은 이 같은 민족심정의 공유·공감 호칭에 대한 독점을 둔 반발이기도 하기에 그 최종 판결이 주목되는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