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65]‘보리밭’ 음악회

bindol 2022. 10. 3. 06:03
[이규태코너][6665]‘보리밭’ 음악회 발행일 : 2005.10.24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보리밭’을 지은 천재 음악가 윤용하(尹龍河)와는 세 번 만남이 있었다. 그 첫 만남은 공전의 재해를 몰아왔던 사라호 태풍 때였다. 의연금품을 모집하는 신문사 데스크에 노숙자 차림과 다름없는 허술한 중년 신사가 나타나 입고 있던 겉저고리를 벗어 놓고 돌아서 나가는 것이었다. 주소 성명을 묻자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흔들며 사라졌다. 소매나 깃이 헐어 너덜너덜한 그 저고리 속주머니 위를 보았더니 ‘尹龍河’라고 박혀 있었다. 후에 들은 것이지만 그에게는 여분의 옷이 없어 한동안 윗옷 없이 살았다고 한다. 그 낡은 옷이 도움이 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마음의 질(質)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후 ‘보리밭’을 작곡하게 된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지 물은 일이 있다. “나는 헛소리 듣는 허청(虛聽) 기가 있으며 분명히 들렸는데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을 때 그곳에 아무것도 없을 리 없다고 작심하고 추구하다 보면 미(美)의 꼬리 같은 것이 어른어른 보이기 시작한다”던―그의 집요한 예술관에 접했던 것이 두 번째 만남이다.

그 윤용하가 40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는 부음에 접했다. 보도의 필요성에 쫓겨 빈소를 찾는 데 신문사의 기동력을 동원했지만 한 번지에 수천 호가 잡거하는 판자촌인지라 이틀을 넘겨서야 찾을 수 있었다. 이 천재가 누워 있는 곳은 판잣집도 못 되는, 종이상자를 뜯어 여민 단칸방의 거적 위였다. 미의 순수한 응어리가 저렇게 이승을 마칠 수 있었던가가 원망스러웠던 세 번째의 만남이었다. 그에게 영화음악의 작곡을 부탁하러 갔을 때, 또 대중 가요 작곡심사를 의뢰하러 갔을 때 못 들을 소리 들었다고 귀를 씻었다던 그의 순수성이 현대사회에서의 위상을 그대로 구현했던 윤용하와의 마지막 만남이기도 하다.

그 후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던―그 윤용하가 찾아낸 미의 터전에서 재즈 리듬으로 편곡된 ‘보리밭’ 고고가 판쳐, 짓밟혀 망가진 지 오래인 그 터전에서 고인이 살았을 제 공감대에서 예술을 교감했던 팔순 고개의 원로 음악가 바리톤 오현명, 피아니스트 정진우, 테너 안형일 세 분이 추모 음악회를 연다고 하니 그 보리밭에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