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나체 시위

bindol 2022. 10. 4. 08:15
[이규태코너]나체 시위 발행일 : 2005.09.28 / 여론/독자 A34 면
▲ 종이신문보기‘선거에서 지면 나체로 거리에 나서겠다’고 공약한 뉴질랜드 녹색당의 한 후보자가 낙선된 후 공약은 지키겠다며 페인트칠한 알몸으로 시위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차기 선거를 노린, 자신의 공약에 신빙성을 주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혹은 자신의 감세(減稅)공약을 유권자들에게 기억시키기 위한 해프닝인지도 알 수 없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領主)가 세금을 가혹하게 매기자 고다이바 영주 부인이 민의를 대신하여 세금 줄여줄것을 간청했다. 짓궂은 영주는 이에 부인더러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면 청을 들어주겠다 하자 서슴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섰고 이 소문이 퍼지자 시민들은 문을 닫고 이 알몸 기행(騎行)을 내다 보지 않았다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유럽에서 과다한 세금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을 ‘고다이바 기행(騎行)’이라 하는데 폭탄 세금으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는 작금의 서울 번화가에도 고다이바 기행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알몸시위는 절박한 소망의 통달수단인데 이처럼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스포츠 조각들은 알몸인 데 예외가 없다. 스포츠란 오곡의 풍흉(豊凶)과 인간의 화복(禍福)을 관장하는 여신에게 기원하는 신전(神殿)행사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여인의 스포츠 참관이 불허되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 전통사회에서도 정월 보름날 나경(裸耕)이라 하여 벌거벗겨 국부를 노출시킨 건장한 장정으로 하여금 목우(木牛)를 몰아 땅을 갈게 하는 의식이 있는데 이 역시 풍년을 관장하는 여신과의 상징(象徵)적 성(性)행위로 절실한 풍년 기원 수단이다.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으로 광복의 ‘그날―’을 염원한 시(詩) 속에서 심훈(沈薰)은 옷을 벗는 나체 시위보다 더한 알몸의 가죽을 벗기는 시위로 그 염원의 강도를 높였다. ‘그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을 들이받아 두개골을 산산이 조각나게 한들 무슨 한이 있으며 그날이 와서 지금 광화문 앞길인 육조(六曹) 거리를 날뛰며 뒹굴어도 기쁨을 못 참겠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추어 메고 행렬에 앞장서겠다’ 했으니 나체시위의 동서 공감대를 가늠케 한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