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6637>장애인 체험

심청이는 앞 못 보는 아버지의 고통을 함께하고자 눈 감고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깨고 눈을 감고 길을 걷다가 넘어져 무릎을 깨곤 한다. 뺑덕어멈이 총각 들여놓고 시시덕거리는데 심봉사가 들어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당황하자 심봉사 왜 이다지 더듬거리는가고 물었다. 이때 뺑덕어멈, 서방님의 답답함과 괴로움을 함께하고자 눈을 감았더니 이러하오이다고 고통 공감을 방편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자전적 소설에 앞 못 보는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며칠간 눈을 감고 살아본 일이 있다 했다.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여느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을 보고 들었다. 그의 설리번 선생이 말했다. “인간의 속 깊이 잠재된 어떤 가능성을 깨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고.
나팔꽃은 아침에 햇살을 받고 피어나는 꽃으로 동서고금이 알아왔다. 하지만 한 학자의 연구로 나팔꽃이 피는 것은 계절에 따라 새벽 2시 반에서 4시 반 전후로 햇빛과는 아랑곳없이 어둠 속에 피어난다. 이것은 나팔꽃이 피기 위해서는 어느만큼의 어둠이 필요하다는 것이 되며 헬렌 켈러가 발견한 세상도 어느만큼의 어둠 뒤에야 보이기 시작하는 별천지다. “우리들에게 있어 가공할 적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불우가 아니라 그를 두고 스스로가 이런 인간이라는 생각이다”라고 한 헬렌 켈러는 그 어둠이 보장하는 세상에 안주했다.
그녀는 ‘사흘간의 시력(視力)’이라는 에세이에서 가령 사흘 동안만 시한부로 시력이 주어졌다 할 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눈물겹게 적고 있다. 그러고서 “내일이면 시력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눈을 쓸모있게 쓰십시오” 했다. 시각 장애를 비롯, 각종 장애인의 어려움을 공감함으로써 남을 배려하는 힘을 기르는 각종 장애인 체험행사가 어린이로부터 CEO 교육에 이르기까지 유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행사들이 동정으로 타락하지 않게 하고자 헬렌 켈러의 충고를 덧붙이는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