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一人一籍簿

bindol 2022. 10. 9. 15:33

[이규태 코너] 一人一籍簿

조선일보
입력 2005.01.13 17:53
 
 
 
 

유럽사람은 달에서 찌그러진 여인의 얼굴을 보고 로마사람들은 아가리 벌린 늑대를 보았다. 아랍사람은 다리 저는 낙타를 보며, 중국사람은 두꺼비를 보았다. 셰익스피어는 오셀로로 하여금 달이 가까이 올수록 사람들의 머리가 돈다고 외치게 했다.

세상 사람들의 달에 대한 이미지는 이처럼 부정적인데 오로지 우리 한국사람만은 달에 초가삼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자 했으니 달에서 행복의 원점을 찾았다. 달의 명절이면 부모형제 모여 조상까지 모셔 받들었으니 달은 유명(幽明)을 초월한 가족의 구심이요 가족주의의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형제자매 간에 싸움을 하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샘을 내거나 헐뜯거나 게으르거나 검약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말없이 달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자제케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족결합의 구심력이 강하고, 가족으로서의 자질이 가장 성숙했음을 달이 증언해주고 있다.

그래선지 서양이나 아랍사람처럼 믿음을 위해 죽고 일본사람처럼 나라를 위해 죽진 않지만 가족이나 가문을 위해서는 기꺼이 죽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가족의식이 촉발되었을 때 고통도 잘 참고 인내심도 강해지며 칠전(七顚)에서 팔기(八起)를 했다.기업의 발전도 사원 개개인의 역량보다 가족을 의식한 동기유발이 효과적임은 중국과 일본의 가족주의 경영들이 본을 보였다.

북한에서도 생산력을 올리는 데 가족경영을 도입하고 있음은, 이념도 극복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가족의식의 강점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그 발전 본바탕의 지축이 흔들릴 기세다. 개인주의가 강화되는 세계적 추세를 타고 부부나 부자 모녀 형제 자매 간의 가족적 유대를 약화시키는 일인일적부(一人一籍簿)제도가 그것이다.

가족주의는 개인주의의 적대개념이 아니다. 태어나 늙어 죽을 때까지 동물적으로나 사회적·경제적으로 강세와 약세가 상부상조하는 호혜(互惠)구조로 가족은 최소단위의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어머니가 호주가 되고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는 것과 가족 해체는 별도의 것이다. 어머니 손끝의 달 속, 초가삼간을 새삼 보아주기 바란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