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한국 女强論
[이규태 코너] 한국 女强論
70년대 미국 우먼 리브운동의 기수 밀레트는 연설을 마칠 때마다 “카이두 공주 만세!”를 외쳤다. 역시 맹렬여성 저메인 글레어는 카이두를 우먼 리브의 성지(聖地)라고까지 말했다. 그 카이두는 아프가니스탄의 종교도시로 몽골 태종의 종손이 세운 왕국이다.
이 왕국의 공주는 거녀(巨女)로 힘이 세어 자신을 힘으로 이겨내지 못하는 사나이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카이두 국왕은 공주를 이겨낼 장사를 구하는 방을 이웃나라들에 부치고 도전하는 데 1백필의 말을 걸도록 했다. 말이 1만필이 넘도록 공주를 이겨낼 장사가 나타나지 않다가 파미르의 왕자가 1천필을 걸고 도전해 왔다. 왕이 불러보니 이전에 보지 못했던 미남인지라 은밀히 공주를 불러 일부러 져주라고 종용했지만 이 미남을 들어서 던져버렸다.
한국의 현대 남성이 보다 예뻐지기를 여성이 강해지기를 지향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카이두 현상이 만연되고 있다는 한 조사결과가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설 속에서 카이두 현상이 살아내렸는데 국난을 당해 패전으로 사기가 땅에 떨어졌을 때 그 반동으로 강한 여자가 소설 속에 등장하여 울분을 풀어주었다.그 대표적인 것이 병자호란으로 무력하고 용기를 상실한 사나이들에 대한 반감을 승화시킨 '박씨전'이다. 박씨는 한끼에 한말을 먹는 여장부로 호란 때 백성의 증오가 집결되었던 오랑캐 장수 용골대를 잡아 머리를 톱으로 잘라 남한산성에 걸어놓고 무릎 꿇고 목숨을 애걸하는 오랑캐 장수 앞에 늠름하게 군림, 남한산성에 도사린 민족의 원한을 승화시켰다.
일상에서 억눌려 죽어살아온 한국여성들은 그 반동으로 소설 속에서 활달하게 보복했으며 이는 한국고전소설의 특징이요 소설 외적 기능이었다. '배비장전'에서 정랑이가, '가루지기타령'에서 옹녀가, '옥단춘'에서 옥단춘이, '신유복전'에서 일일이가, '이진사전'에서 경패가, '정수경전'에서 소저가, 그리고 근간에 발견된 전쟁소설 '뎡각녹'에서 여주인공이 남자들의 허점을 아프게, 더러는 해학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여강론(女强論)의 유전자가 이번 조사에서 소설 밖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