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연기(燕岐)

bindol 2022. 10. 13. 16:57

[이규태코너] 연기(燕岐)

조선일보
입력 2004.07.06 18:30
 
 
 
 

행정수도로서 서남동(西南東) 삼방향이 공주 대전 청주 세 도시로 에워싸인 연기가 점 찍혔다. 한국사상 수십 차례 도읍을 정하고 옮겨오면서 일관된 것이 있었다면 그 지세(地勢)가 도읍풍수에 합당한지 여부였다. 고대의 풍수는 후세의 화복(禍福)에는 아랑곳없이 과학적이었다. 고구려 동명왕이 비류수(沸流水) 윗녘에 도읍을 정할 때 땅이 걸다는 경제적 조건과 산하가 험하다는 방위적 조건을 들어 정했으며, 백제 온조왕이 하남 땅에 도읍을 정했을 때도 북쪽을 한강이 두르고 동쪽을 북쪽의 큰 산이 막아주며 남쪽은 기름진 들판이 있고 서쪽으론 바다가 펼쳐진, 역시 방위와 경제조건을 충족시키는 조건을 택했다.

그렇다면 연기 땅은 어떤 풍수 내력을 지녔을까. 청주에서 흐르는 작천(鵲川) 유역이 주로 돼있는 이 연기 땅의 풍수기록을 사대주의 지리지인 ‘택리지(擇里志)’에 보면, 작천 유역의 둘레 산들은 모두 흙산으로 돌이 없고 산빛이 고우며 들 형세에 겹겹으로 감싸여 풍수사들은 살기(殺氣)를 벗었다고 한다 했다. 땅이 평탄하고 기름져 오곡과 목화 가꾸기에 알맞다 했으며 금강이 고을을 해자처럼 완곡하게 감싸 수성(水城)을 이룬 듯하니 경제조건 방위조건을 갖추었다 할 수 있다. 바로 그 연기 땅의 풍수생명을 수만년 흘러내린 학천이 여타의 물흐름을 합류시키는 물목이 동진(東津)이요, 동진이 이번 행정수도의 핵심이다.

백두대간이 차령(車嶺)에서 갈라져 호남의 관문 위치에 자리잡아서인지 연기는 역사적으로 전략지역이었다. 연기 땅의 산이름에 장수들의 진영이 있었다는 원수산(元帥山) 용수산(龍帥山), 성에 싸여 있었다 하여 성산(城山), 병사들의 주둔지가 있었다는 둔지산 등의 산이름들이 그 전략의 역사를 말해준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 반기를 든 원나라 왕족 합단이 이곳까지 들어와 원군과 접전했는데 ‘땅에 깔린 시체가 30여리, 베인 머리를 헤아릴 수 없었다’ 했다. 고려 말에는 왜구가 이곳까지 침범, 귀화한 왜인들이 이곳에 살기도 했다. 하지만 병란에는 아랑곳없이 민심은 ‘농사에 부지런히 힘쓰고 남을 고자질하는 풍습이 없다’고 ‘동국여지승람’은 적고 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