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가야산 도깨비불

bindol 2022. 10. 14. 08:20

[이규태코너] 가야산 도깨비불

조선일보
입력 2004.06.16 18:32
 
 
 
 

충청도 해미의 가야산은 우리나라에서 굴지의 명당이 있다고 구전돼 내린 풍수 명산이다.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산소를 이 산에 잡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대원군 집권 시절에 강제 개항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한 데 앙심을 품은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이 남연군 묘를 도굴하다가 실패했는데 가야산 신령이 양도깨비를 안개로 휘감아 몰아낸 것으로, 이 지방사람들은 민요로 읊었다. 이처럼 신비로운 영험이 깃든 가야산에 1992년 이래 산불이 나기를 100여 차례 거듭하고 있는데 그 화인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다. 지난 한 해 뜸하더니 올 들어 또다시 세 차례나 같은 형태로 원인 모를 산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발화 장소도 비슷하고 발화 시간도 공휴일 밤이라는 공통성 때문에 가야산 도깨비불은 어떤 고의성이 있는 방화로 긴장과 불안이 커져온 것이다.

10여년 전 10여 차례 불이 난 서초동 꽃동네 도깨비불이며, 30여년 전 한 집에서 장소를 바꿔가며 7차례 불이 난 김포 도깨비불도 생각난다. 이처럼 도깨비불에는 공통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원인도 일맥상통할 것이라는 가정은 합리적이다. 중종 때 문헌 ‘용천담적기(龍泉淡寂記)’에 도깨비불을 뜻하는 귀화(鬼火)에 대한 실화가 나온다. 거기에 보면 선비 성번중(成蕃仲)의 집 뒷산에서 불덩이 하나가 굴러오더니 그 집의 한 계집종에게 달라붙곤 하기를 며칠을 계속했다. 그러더니 그 계집종에게 태기가 생겨 아랫배가 불러 올랐다는 것이다. 이처럼 도깨비와 교접해 아이를 밸 수 있을 것으로 믿어왔으며, 이를 귀태(鬼胎)라 했다. 곧 처녀나 과부가 아이를 밴다든지 하는 불륜을 불도깨비의 짓으로 전가시켜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는 계획된 방화가 도깨비불의 역사적 공약수다. 개화기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에 귀태 광고를 볼 수 있는데 바로 도깨비불이 민속적으로 합법적 위상을 누려 왔다 할 것이며, 가야산의 도깨비불도 풍수와 연관된 민속 차원의 수사로 접근해 보길 권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