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전주 비빔밥

bindol 2022. 10. 22. 07:56

[이규태 코너] 전주 비빔밥

조선일보
입력 2004.05.06 18:06
 
 
 
 

전주의 5월 축제인 풍남제에서 토산 식품인 전주비빔밥 2004명분을 비벼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보시를 했다. 토산 식품의 과시일 뿐 아니라 기네스북에 올림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간편한 인스턴트 식품으로 온 세계에 선을 보인다는 저의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세상 사람들의 식사문화는 서양사람들처럼 수프를 먹어치우면 야채가 나오고 야채를 먹어치우면 메인 디시 식으로 차례대로 먹어치우는 시간계열형(時間系列型)과 한국사람들처럼 먹기로 준비된 모든 주·부식을 한 밥상에 차려내는 공간전개형(空間展開型)으로 대별된다.

밥 먹는 과정이나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켜 단시간에 간편히 배를 채우는 데 고도로 발달된 것이 공간전개형이요, 이 공간을 보다 축소시키고 시간을 보다 단축시킨 것이 비빔밥이다. 좁은 식사 공간에서 보다 빠른 식사 시간을 보장하는 비빔밥의 현대생활에의 영합은 서양사람들의 앞다툰 수용에서 드러나고 있다. 스페인 국제식품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에 뽑힌 것을 위시하여 외국항공들에서 기내식으로 앞다투어 채택하고 있고, 유엔이나 올림픽 식단에 고정 메뉴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인스턴트화하여 우리나라에 역수출하고 있을 정도다. 대형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밥 보시하는 데 세상에 이보다 구조적으로 적절한 어떤 다른 식품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다 비빔밥 정신을 알고 보면 금상첨화다. 비빔밥의 뿌리는 제사 지내고 제상에 올렸던 음식을 한데 비벼 자손들이 고루 나눠 먹음으로써 조령(祖靈)과 공식(共食) 일심동체를 다지던 의례음식이었다. 영조 때 사색당쟁을 없애는 수단으로 빨간 육회,파란 미나리, 검은 바닷김, 노란 녹두묵 등 사색음식으로 비빈 탕평반(蕩平飯)을 신하들에게 먹였던 것만 미루어 보아도 비빔밥 정신을 가늠할 수 있다.

바쁘게 빨리 굴러가는 현대에 적성이 맞을 뿐 아니라 이기적 자아의 비대로 콩가루 사회, 콩가루 정국을 역회전시키는 구심(求心)식품이기도 하다. 국회 개회 벽두에 비빔밥을 먹지 않고는 의사당에 들지 못하게 하는 의원 입법을 했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