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황혼 이혼

bindol 2022. 10. 22. 08:00

[이규태코너] 황혼 이혼

조선일보
입력 2004.05.02 18:59 | 수정 2004.05.02 19:04
 
 
 
 

영국의 지성 해머튼의 ‘지적 생활을 위하여’에 보면 2차대전 전만 해도 프랑스 시골에서는 규수에 대한 소문만을 듣고 결혼상대로 정해버린다고 했다. 그 규수가 꼭 보고 싶으면 교회의식의 행렬 때 2층집에 숨어서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숨어서 본 사실을 상대방이 알면 혼담은 깨지게 돼있을 정도로 내외가 심했다. 근 반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살아온 해머튼의 관찰로 연애결혼한 쌍은 행복한 체 내색을 하지만, 내색 없이 행복한 것이 서로 보지도 않고 결혼한 쌍이라 했다.

그 이유로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인지라 결혼은 하늘이 정해준 천정연분이라는 의식이 파경의 위기를 감내하는 힘을 더해준 때문이라 했다. 결혼이란 20대는 사랑으로 맺어지지만 30대는 노력으로 지탱하고 40대는 인내로 꾸려나가며 50대는 체념으로 살다가 60대에 이르러서야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일전 통계청에서 작년도 이혼 통계를 발표했는데,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혼하는 나이가 40세 전후로 나타났다. 황혼이혼이 작년보다 30%, 10년 전보다 근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 급증추세는 거의가 연애결혼을 했기 때문에 20대를 결속시키는 사랑의 오묘함과 신선함을 이미 연애시절에 앞당겨 소비했기에 결혼 유지에 필요한 30대의 노력과 40대의 인내를 가불해 당겨야 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노력과 인내라는 가불인생에 힘을 실어주는 프랑스 같은 종교적 저력도 우리에게는 없다.

 

옛 어머니들이 시집살이의 괴로운 순간을 참는 인고(忍苦)문화는 꽤나 발달해 있었다. 괴로울 때마다 속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엽전 한 닢 꺼내어 손아귀에 굴리며 괴로움을 삭이던 인고전(忍苦錢)도 그것이다. 너무 많이 굴려 엽전글씨가 닳은 인고전을 본 적이 있다. 또 괴로운 일을 당하면 장롱 깊숙이 숨겨둔 누비질거리 꺼내어 바늘 땀땀을 뜨며 괴로움을 분산시키던 인고봉(忍苦縫)도 그것이다. 이렇게 결혼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던 인고문화는 현대인에게는 웃기는 할리우드 액션에 불과하지만 사랑이 결혼을 유지시킨다는 것은 그러했으면 하는 당위성이요 명분이며, 유지의 실속은 인내인 것이다. 황혼이혼의 증가에서 배울 것은 바로 인내인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