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한국인의 純血주의
[이규태코너] 한국인의 純血주의
인조5년 경주 외해에 표류한 화란선원 벨테브레는 훈련도감의 외인부대장으로 병자호란에 참전했었다.
한국 여성과 결혼, 아들딸 하나씩 낳고 여생을 살았다.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 현지에 내려가 통역을 했으며 정 붙이고 살면 살 만한 나라라고 불안에 떨고 있던 일행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이 벨테브레의 혼혈 후손들이 어딘가에 살아 명맥을 이었음직한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하멜 일행 중 전라도에 분산돼 살았던 22명의 화란인들 가운데 몇은 조선 옷을 입고 조선 말을 했으며 조선인 아내를 얻고 아들딸 낳고 살다 처자식 남겨놓고 일본으로 도망쳤다.
그중 얀 클라즈젠은 처자식을 못 버려 남원땅에 눌러살았다. 이 전라도에 적지 않은 화란계 혼혈아가 후손을 퍼뜨렸을 텐데 역시 흔적이 없다. 혼혈로 살아남기에는 가혹한 분위기였음을 짐작케 한다.
얼마 전 인권위원회가 기지촌에서 조사한바로 혼혈인 10명 중 4명꼴로 차별이 버거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피부색 때문에 따돌림당한 경우가 75.6%로 조사되었다.
감사원의 시정 권고사항 가운데 한국적의 혼혈일지라도 어머니가 한국인인 경우는 병역의무가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국적이나 시민권만 따면 순수한 외국인이라도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누리는 외국의 경우와 비겨 완고하고 편벽한 순혈(純血)주의가 부각된다.
탤런트 이유진양이 기자회견을 자청, 혼혈아임을 자백하고, 밝혀지면 생업이 중단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숨겨왔다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18세기 시인 신광하(申光河)는 자신이 농사 지으면서 고용한 남방계 외국인 머슴 곤륜노(昆侖奴)에 대한 글을 남겼는데 안색은 험상궂어 귀신 같고, 두 귀가 막혔는지 말해도 못 알아들으며, 말은 멀리서 들개 짖듯 소리치고, 울면 꺼이꺼이 병든 나귀소리 같다 했다. 성품도 미욱하고 게으르며 바보짓으로 일관한다는 부정적 면만을 부각시켰다.
세상은 이질적인 사람과 어울려 공생하는 이동성 사회로 되어가고 있는데 한국인은 정착성 사고의 구태를 못 벗고, 남방계 인력을 구박하고 혼혈인간을 박대하는 작금인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