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독일병

bindol 2022. 10. 26. 15:53

[이규태코너] 독일병

조선일보
입력 2004.01.25 17:22
 
 
 
 

복지의 과보호로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을 「폼푸리포사」라고 한다. 80년대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동명 풍자동화의 작가요,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폼푸리포사는 복지서비스를 받고 걱정없이 사는데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세금이 무거워져 작품 수입의 절반이 세금으로 나가자 글 쓸 의욕을 잃고 붓을 꺾었다. 장례비로 아껴둔 돈마저 세금으로 빼앗기자 분개한 폼푸리포사는 푼돈 털어 쇠망치 하나 사들고 장례비 탈환하러 국고를 찾아간다는 줄거리로 복지선진국인 북구병(北歐病)을 풍자해서 유명하다.

영국에서 과복지 고비용으로 담세율이 수입의 50%를 넘은 것은 70년대요, 누진제로 80%까지 뜯기자 발전이며 근로의욕이 추락해 생산성은 급락하고 인간성이 동반 타락했던 것이 영국병이다.

과복지 고비용으로 침체를 못 헤어나던 독일이 작년 연말에 독일병을 수술하고 경제를 회생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에서는 1년간 근무한 근로자가 실직하면 받았던 임금 60% 이상의 실업보험금을 근 3년간 받고 그 후에도 65세까지 55% 내외의 실업지원금을 받게 돼 있다. 누가 취업해 일하러 들겠는가.

 

독일에서는 전통도 유구한 마이스터(匠人) 제도로 일정 수습기간을 거쳐 선반공이니 전기공의 자격을 얻어 자립하는데 각자의 일의 영역한계가 삼엄하여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를테면 공장에 퓨즈가 나갔을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전기공의 영역이기에 그 수리를 위해 전기공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기다려야 하는 경직이 지배해왔다.

옷이나 구두수선 바느질 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53개 수공업도 마이스터 자격증 없이 개업할 수 없는 경직이 독일병의 다른 한 원인이기도 하다. 노조와 좌파 정당에서 반발하고 있지만 북구병 영국병에 뒤이은 복지정책에 대해 생각케 하는 독일병이다. 백성이 번 소득의 10분의 1을 넘겨 거두면 학정(虐政)의 표본인 걸(桀)의 정치요 10분의 1도 못 되게 거두면 야만의 표본인 오랑캐의 정치로 여겼던 옛 조상들의 정치철학이 새삼스러운 독일병 처방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