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원일한

bindol 2022. 10. 26. 15:57

[이규태코너] 원일한

조선일보
입력 2004.01.18 19:19
 
 
 
 

우리나라에 건너온 최초의 신교 선교사요, 연세대를 세운 언더우드(元杜尤)의 손자이며, 인천 상륙작전에 참전했고 정전협정의 산 증인이기도 한 언더우드 3세 원일한(元一漢) 박사가 작고
했다.

고종황제가 사석에서‘형’이라고 불렀을 만큼 신뢰했다던 언더우드 1세가 미국에서 숨을 거둘 때 부인에게“거기를 가야 한다”고 되풀이하면서 거기가 어디인지를 말 못하고 눈을 감았다. 미국 선영에 묻혔던 그의 유해를 유언대로 한국을 뜻하는‘거기에?’모셔와 묻었고, 박사의 아버지인 언더우드 2세와 어머니, 아내가‘거기에?’묻혔듯이 그도 바로 거기 가족 곁에 묻힐 것이다.

언더우드의 머리 발음인‘언’이‘원’과 흡사하다 하여 원씨로 한국성을 삼았더니 원주 원씨 종친회서 명예 원주 원씨로 본관을 내렸는데 박사에게 본관이 어디냐고 물으면 연희 원씨라고 대꾸하곤했다.

할아버지가 학교를 세웠고 그의 후손 4대가 그 학교에서 가르쳤으니 학교 이름으로 본관을 삼았음 직하다. 그의 아버지가 원한경(元漢慶), 아들이 원한광(元漢光)으로 조손 3대의 이름에 한(漢)자가 들어간 것은 한국의 이름항렬에 위배된다 하자 작명에 문제가 있다면 그 이름들을 지어주신 정인보(鄭寅普) 선생에게 책임이 있다고 어깨를 으쓱하던 생각이 난다.

 

외국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글쎄…”라는 말이 튀어나와 방금 한 말이 무슨 말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던 박사요, 정전회담 때도 미국장교들 앞에서“원 투 쓰리…”해야 할 것을“하나 둘 셋…”이 튀어나와 어리둥절하게 했다. 물건 주고받을 때 그는 미국 사람처럼 한 손을 쓰지않고 반드시 두 손을 썼는데 아랫사람에게도 두 손으로 주고받아 당황하게 했던 분이다.

연세대는 일제가 말살하려 든 한국학의 찢긴 자락을 붙들고 버티어낸 본고장이다. 바로 정인보(鄭寅普) 김윤경(金允經) 최현배(崔鉉培) 백낙준(白樂濬) 백남운(白南雲) 홍이섭(洪以燮)으로 이어지는 그 깃발을, 찢어지면 배후에서 여미고 쓰러지려 하면 버텨낸 분이 바로 이 원한경·원일한 부자였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