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역사를 판 후세인

bindol 2022. 10. 27. 16:10

[이규태코너] 역사를 판 후세인

조선일보
입력 2003.12.15 17:15
 
 
 
 

바그다드 남쪽 유프라테스 강변에 고대 바빌론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유적이 있다. 사담 후세인이 독재를 시작하면서 맨 먼저 이 유적 보수에 착수했는데, 그에 드는 엄청난 벽돌 하나하나마다 「함무라비가 건설한 바빌론을 이제는 사담 후세인이 재건한다」고 새겼었다.

후세인의 통치 수단으로 역사적 위인을 자신과 겹쳐 이미지를 높여 왔는데 함무라비왕 말고 또 다른 위인이 있다. 유럽 다국적군과 싸워 물리친 이슬람군의 영웅 살라딘으로 후세인이 외국 요인과 회담할 때 자신은 살라딘의 화신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입으로 했다.

12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을 90년 만에 탈환한 살라딘은 용맹과 인도주의로 범아랍권의 존경을 받아온 인물로 사담 후세인이 구미 다국적군과 대결할 때 범아랍국의 지지를 수렴하는 구심인물로 십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미군에 쫓기어 잠적할 때까지도 내 몸에서 끝까지 떼어 놓지 않을 것이 있다면 살라딘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한다.

후세인과 살라딘 간에는 공통점도 없지 않다. 이번에 후세인이 생포당한 티그리스에서 이 두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이 그것이다. 점령지에 대한 살라딘의 통치수단으로 군인에게 영지를 나누어 줄 때 살라딘은 자신의 피로 쓴 코란의 한 구절을 계약서로 교환했다. 이를 본뜬 후세인은 그의 피 13ℓ에 보존약품을 섞어 쓴 코란 사경첩에 백성들로 하여금 피의 사인을 하게 하여 유대를 끈끈하게 한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같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살라딘이 후세인에 의해 압박하고 대량학살을 당해 온 쿠르드족이라는 것이 그렇고 종파를 초월한 살라딘과는 달리 후세인은 시아파를 학대하여 아랍권의 절대다수인 수니파로부터 외면당해 온 것도 그것이다.

살라딘은 십자군 포로들을 극진히 우대하여 십자군으로부터도 존경받았는데, 후세인은 이번 전쟁에서 미군포로에 대한 가혹행위로 자신에 대한 증오심을 세계적으로 가중시켰다. 온 백성의 통곡 속에 눈을 감은 살라딘 호주머니에는 은화 한 장이 고작이었는데 생포 당시의 후세인은 27만달러나 끌어안고 있었다. 사필귀정을 실감케 하는 후세인의 말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