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명사가 살던 집

bindol 2022. 10. 28. 08:35

[이규태코너] 명사가 살던 집

조선일보
입력 2003.11.28 18:31 | 수정 2003.12.01 13:25
 
 
 
 

취리히의 카페 ‘오데온’에 가면 작가 제임즈 조이즈가 ‘유리시즈’의 대작을 썼다는 좌석이 표시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레닌이 망명시절 때를 기다렸다는 좌석도 보존돼 있고 아인슈타인이 단골손님으로 27개 신문을 뒤적거리던 자리도 가 앉아 차를 마실수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 파리의 카페 드라페가 포격을 받고 형적도 없어졌었다. 모파상을 비롯해 졸라, 오스카 와일드가 즐겨 다녔던 단골집이었다. 파리 해방 직후 포격 쓰레기에 싸인 그 앞에 해방군의 지프 한대가 와 멎었다. 그 차에서 내린 것이 바로 단골집 찾아온 드골 장군이었다. 일개 카페의 좌석 하나도 명사가 앉았던 자리는 그만한 부가가치가 붙게 마련이요, 역사가 흐를수록 기하급수로 값이 더해가게 마련이다. 하물며 명사가 살았던 체취 스민 집임에랴.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 르네상스 시절의 정치학자 마키아벨리가 추방생활 할 때 글을 썼다는 작은 여염집이 있다. 돌을 다듬다 남은 파석(破石)을 쌓아 만든 집으로 지금은 여인숙으로 쓰고 있었다. 지은지 500여년이 된 집으로 보존 문화재나 기념물로 지정돼 있지도 않은데 관광자원으로 하루에 수천명이 이곳을 다녀가며 지역의 공공수입이지만 하루에 수천만원대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작가 카프카가 금은방에서 직공으로 일했던 프라하의 작은 공방(工房)이 이를 구경하고자 온 세상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연일 장사진을 치고 있음도 보았다.

 

3·1운동을 계획하고 진행했으며 독립선언문을 쓴 최남선이 말년에 친일했다하여 그가 살던 집을 보존 건물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증발시키더니 한국문학의 현대화에 큰 흐름을 주도했던 현진건(玄鎭健)이 살던 세검정 집도 당국의 무관심속에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히브라이의 예언자는 말했다. ‘비전없는 곳에 민족은 망한다’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의 국민은 그들이 소중히 하는 사물을 평등하게 공유함으로써 결합된 이성적 공동체요, 그러하기에 어느 한 국민의 비전, 곧 미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그들이 소중히 하는가를 안다는 것이다’ 했다. 조금 앞만 내다보면 명사들 옛집의 경제적 가치는 급상승할 텐데도 행정당국과 공모, 비전 파괴에 여념이 없는 작금이다. 이를 말릴 정치의 문화마인드도 없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