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신선인

bindol 2022. 10. 28. 08:43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신선인
입력 2003.11.20 16:50:28 | 수정 2003.11.20 16:50:28

이웃하고 사는 외국사람일수록 곱지 않은 호칭으로 얕부르게 마련이다. 반미 구호가 ‘양키 고홈’이듯이 미국사람을 얕부르는 양키는 본래 허드슨 강변에 살던 화란계 농부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독립전쟁 중 영국군이 급모(急募)해서 만든 미국군대를 통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주로 농부들을 끌어다 군대를 급조했고 허드슨 강변의 양키가 많았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말이 미국군대를, 더 나아가 미국을 얕부르는 말로 정착하고 말았다. 양배추를 많이 먹는 독일사람을 양배추라고 부르고, 개구리를 잘 먹는 프랑스사람을 개구리로 얕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카이크는 유대인의 모욕적인 호칭인데 그 내력은 이렇다. 19세기 말 미국에 이민온 문맹의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로 서명토록 했었는데, 종교상의 이유로 십자가 서명을 거부하자 동그라미를 그리도록 했다. 유대 말로 동그라미를 카이크라고 하는데, 이 카이크가 유대인을 경멸하는 말이 돼 버린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웃나라 사람을 왜놈 되놈 이라고 한 것이며, 개화기에 밀어닥친 서양인을 미로랑 곧 원숭이·오랑캐·늑대로 얕불렀고, 러시아사람을 대비달자(大鼻獺子) 곧 코 큰 승냥이라 불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화의식이 남다른 중국은 동서남북 변방국가들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러 경멸했다. 다만 동이의 이(夷)를 “大+弓”으로 보고 오랑캐 호칭을 쓰지 않았으며,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땅일 뿐더러 “예기(禮記)”에 이(夷)란 근본을 뜻한다는 풀이를 들어 모멸적인 호칭에서 동이를 구제하기도 하지만, 청구(靑丘)나 동방(海東) 진국(震國)과 더불어 중국의 변두리 나라라는 종속적 모멸 호칭인 것만은 변함이 없다. 뚱이라는 욕말의 뿌리로써 동이(東夷)가 추정되기도 하는데, 청나라 때 중국에 가는 사신 일행 중 하인들의 현지인에 대한 무례한 횡포가 심하여 한국인을 부르는 경멸 호칭이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처럼 얕부르는 게 관례인데 최근 중국에서 한국인에 대해 “신셴런(新鮮人)”이라는 예외적인 새 호칭을 만들어 주목하게 한다. 한중수교 후 중국에 건너와 살고 있는 신세대 한국인을 그 이전에 와서 살던 한국인이나 조선족과 구별하여 붙인 호칭이다. 이 호칭에서 중화의식을 조금 양보한 것은 그만큼 신셴런으로부터 얻는 것이 있거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