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계룡시

bindol 2022. 10. 30. 16:06

[이규태코너] 계룡시

조선일보
입력 2003.10.19 16:43
 
 
 
 

계룡산 신도안이 시로 승격, 월말에 시의원 선거를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조선조 국초에 수도가 될 뻔했고 유사종교의 집산지이기도 한 계룡의 내력을 더듬어 봄으로써 한국인의 도참(圖讖)의식을 가늠해 보는 것도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계룡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계룡산을 멀리서 보면 그 산 모습이 제(帝)자형으로 보이고, 분리해 보면 상제봉(上帝峯)을 복판에 두고 금계산(金鷄山)이 좌청룡, 일용산(日龍山)이 우백호를 이루고 있다. 곧 상제를 받들고 있는 좌청룡 우백호의 가운데 이름을 따 계룡산(鷄龍山)이 됐다고도 하고 신도안의 동서에 두 야산이 있는데 풍수형으로 보아 동쪽에 있는 것이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이요 서쪽에 있는 것이 일용농주(日龍弄珠)형이라 하여 그 풍수형에서 땄다고도 한다.

산천의 모양이 국운을 좌우한다는 도참설을 적은 책 가운데 ‘정감록(鄭鑑錄)’과 ‘광악유결(光嶽遺訣)’에 이씨 왕조가 짧아서 300년, 길어서 7갑자 곧 420년 간다는 예언이 적혀 있고 그후에는 정씨가 계룡에 도읍하여 800년 간다고 했다. 또 계룡산 상봉인 연천봉(連天峯)의 암석에 ‘方百馬角 國或禾生’이라는 해묵은 도참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 역시 482년 만에 나라가 옮겨진다고 풀이되어 조선조 국망에 연결됐었다. 임진왜란 후 정감록의 300년 망국설이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아 민심이 흉흉했고 이를 가라앉히고자 정승 유성용은 안티 정감록이라는 ‘하회(河回) 정감록’을 지어 배포했을 정도였다.

 

예언 망국연한이 접근해오자 흥선대원군은 팔도에 정감록을 모두 거둬들여 불태우고 계룡산 나들이를 엄금했으며 신당들을 부수었다. 대신 연천봉에 정씨 기운을 누르는 압정사(壓鄭寺)를 짓는가 하면 명성왕후는 800년 기운을 가로채고자 연천봉 영천(靈泉)에 왕자 낳기를 기도하여 순종을 낳았다고도 한다.

예언이 들어맞았는지 들어맞추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새 정부수도의 충청도 이전설이 나돌았을 때도 이 계룡도참을 들먹이는 풍조가 없지 않았다. 이태조가 수도 도시계획을 진행하다가 중단했던 주춧돌 42개가 남아 있는 신도안이기도 한지라 계룡시의 승격은 또 한 번 부질없이 한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도참의식을 자극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