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왕과 사랑
네덜란드의 요한 프리소 왕자가 사랑을 위해 왕위계승권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왕위계승자의 배필은 정부와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 왕자의 연인이 악명 높은 갱단의 두목과 깊은 관계였던 전력이 있어 승인받지 못할 것이 뻔하므로 예비 왕관을 던져버린 것이다. 이미 쓰고 있던 왕관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한 대영제국 에드워드 8세의 그것과는 권위나 무게를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그 인간적 선택에 매력을 느끼게 한다. 흥미 있는 것은 왕자의 연인이, 왕관을 버린 사연을 두고 기자들이 묻는 말에 “푸른 드레스를 입겠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황태자 시절의 에드워드 8세, 곧 윈저공(公)이 심프슨 부인을 파티에서 처음 만나 첫눈에 반했을 때 부인이 입었던 것이 푸른 드레스였다. 이들이 결혼하던 날 심프슨 부인이 입은 드레스와 모자·장갑·신발도 모두 동계열 색이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당시 ‘심프슨 블루’라는 유행색으로 구미 사회를 휩쓸었었다. 서민 인권의 상징색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1972년 윈저공이 죽었을 때 심프슨 부인은 상복 위에 푸른 숄을 걸치고 나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을 글썽이게 했으며, 그후 부인은 임종시 푸른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유언했다 하니 그녀의 일생은 블루로 일관된 한 편의 시였다 할 수 있다. 왕관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한 임금은 우리나라에 먼저 있었다. 해인사 사역 비봉산 중턱에 원당암(願堂庵)이 있는데, 신라의 진성(眞聖)여왕이 죽은 연인을 위해 원당을 짓고 왕관을 버리고 들어가 그 연인의 영혼과 더불어 살았다는 그 원당일 확률이 높다. 여왕은 자신의 유모의 남편 위홍을 사랑하다가 그가 죽자 상심으로 국정을 극도로 문란하게 하여 그것이 신라 패망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죽은 연인의 혼백과라도 함께 살고자 왕위를 버리고 원당에 들어갔으니 사랑의 양적, 질적 크기로는 동서고금에 비할 임금이 없다 할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여왕의 고사에 관련된 지명이나 인명이 어디인지, 누구인지 모르다가 조선 성종 때 해인사를 중창하다 비로전(毘盧殿)의 서까래 틈에서 나온 문서를 토대로 학자 조위(曺偉)가 밝힘으로써 이 여왕의 순애보가 드러난 것이다. 아직도 모르고 있는, 신라의 연인들이 묻혔다는 황산이 어디인가를 밝혀 역사관광 자원으로 창출했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