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르가메와 홍종우

bindol 2022. 10. 30. 16:25

[이규태코너] 르가메와 홍종우

조선일보
입력 2003.09.25 16:28
 
 
 
 

최초의 한국소재 서양화가 보도되어 눈길을 끌었다. 고종황제가 어가(御駕)를 타고 청계천 수표교를 건너는 광경이다. 파리의 한 화랑에서 공개된 이 그림은 1876년경 세계일주를 한 프랑스 화가 르가메가 한국에 들렀을 때 그린 것으로 소개되었다.

화가 르가메는, 한말의 풍운아요 출세를 위해 김옥균(金玉均)을 살해한 홍종우(洪鍾宇)의 파리 체재시 후견인이요, 친한 친구였다. 당돌한 풍운의 뜻을 품었던 홍종우가 프랑스인 뮈텔 대주교의 소개장을 들고 일본을 거쳐 파리에 온 것은 1890년 말이었다. 사인(私人)으로서 유럽에 발을 디딘 최초의 한국인인 그는 당시 일본 동경제국대학 문과에서 프랑스말을 조금 익혔으니 준비된 풍운행각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화가 르가메의 식객이 되어 동거를 했다. 르가메는 프랑스의 일류화가로, 문호 빅토르 위고를 비롯해 프랑스 공화국 총리 카르노, 세계적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 등의 초상화를 그려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홍종우는 자신을 정부에서 특파된 법률학 연구원으로 소개하며 프랑스의 일류정치가·학자·예술가와 교유했고 외무대신 고코르당과 만나 그의 관저에서 조선왕국의 궁정서기관으로 서명, 격에 맞는 의전(儀典)을 요구하여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또한 명사들의 사교계에도 자주 나타나 「예수전」으로 유명한 르낭 교수와도 만났고, 왕족이자 탐험가인 앙리 필리프에게 초대되어 연설을 요청받고 등단, 열강 틈에서 고통받는 조선이 살아날 길은 서구문명의 채택뿐이라고 역설했다. 「세계화보」 주필 유베르는 르가메가 그린 그의 초상화를 실어 파리의 명사로 부각시켰고―.

르가메와 절친한 사이로 후에 세계일주도 함께 한,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거부 기메와 알게 된 홍종우는 그가 창립한 기메 박물관에서 일하게 됐다. 일하면서 ‘춘향전’ ‘고목화(古木花)’ 등 한국 문화에 관한 책을 불역, 출판했다. 물론 그 장정들은 르가메가 했다. 비록 신분을 사칭한 허풍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문학의 서양전파에 선구적인 기여를 했던 것이다.

1893년 홍종우가 여객선 멜프르스호로 귀국할 때 마르세유까지 전송나온 르가메가 물었다. 프랑스에서 제일 좋았다고 생각한 것이 뭣인가라고. “말이 별나게 컸다는 것이다” 했다. 그럼 작았던 것은― 하고 묻자 「이기주의」라는 명답을 남겼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