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살신 문화사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엽기적 살신(殺身)범죄가 발생해 험해가는 세상을 절감케 하고 있다. 피자 배달하는 중년남자를 납치해 목에다 시한폭탄이 장치된 수가(首枷)를 채우고 시한 안에 은행에 가서 돈을 강탈해 오면 수가를 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폭살한다는 살신 사주범죄가 발생했다. 돈을 강탈하기까지는 했으나 현행범으로 체포돼 시계 소리 나는 시한폭탄을 풀고자 폭약처리반의 출동을 기다리는 동안에 폭사하고 만 엽기범죄다. 역사에는 동서 가림 없이 스스로를 죽이거나 몸에 상처를 내는 살신문화가 강요돼왔다. 충효(忠孝) 등의 명분으로 미화됐던 순장(殉葬)도 그것이다. 고구려 동천왕의 장례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순장시켰기로 시체가 널려있는 무덤 곁의 들판에 시원(屍原)이라는 지명이 붙어내렸다. 임진왜란 때 김수로왕의 능이 도굴당했는데 두 순장여인의 시신이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했다. 임금의 고독한 사후를 위해 강요된 살신이었다. 조선조에 삼강오륜이 정착되면서 가문의 위신을 해치는 행위에 살신문화가 기생했다. 가문형(家門刑)이 합법화돼 있어 수절해야 할 과부가 품행이 좋지 않다는 소문만으로도 가문에서 합의하여 보에 싸 깊은 소에 돌을 매달아 수장시킨 사례 등이 허다하다. 집안 망신시키면 조선종이를 물에 묻혀 얼굴에 덮어 질식사시키는 도모형(塗貌刑)에 처했었다. 병든 부모를 위해 허벅지 살을 베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고, 손가락에 기름을 칠해 불을 켜는 소지( 指) 기도도 살신문화의 일환이다. 고려 때 통신 가속수단으로 비각(飛脚)의 팔을 아프게 죄는 봉비(封臂)라는 게 있었다. 어찌나 아프게 죄었던지 손을 빨리 놀리게 되고 손을 빨리 놀리면 발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말이 많은 계집종 심부름시킬 때도 쓸데없는 말을 못하게 하는 봉비가 여염에도 꽤나 번져 있었다. 원시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 돌이나 기와 조각에 널리 알리고 싶은 사연을 적어 번화한 거리에 엎어둔 글돌도 살신문화를 원용한 것이다. 읽고서 제자리에 엎어놓지 않으면 횡사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말 발악하는 일본군이 특공대로 살신하더니 지금은 중동에서 자폭테러로 현대화하고 있다. 여태까지의 살신에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는데 드디어는 은행강도를 시키는 데까지 타락했으니 말종 살신시대에 돌입한 것이 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