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피어싱 경고령
[이규태코너] 피어싱 경고령
갓 태어난 아기들 포경수술이 유행하던 때의 일이다. 옛 할아버지들 손자놈들 고추 만져보는 재미로 존재확인을 한다던데 끝껍질이 없는 고추를 만져보고 기겁을 하고 돌아앉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조손 간의 거리를 느끼게 하는 이 육체 손상을 둔 조상들의 인식은 확고했다.
병자호란 중 남한산성에서 농성 중이던 중신들 간에 집단자살이 심각하게 논의됐었는데 자살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의 훼손이라 하여, 불효를 저지를 수 없다고 실행을 보지 못했었다. 신여성을 며느리로 맞은 시아버지가 귓불을 뚫고 귀고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를 짐짓 피해 귀고리를 뗀 후에야 큰절을 받은 사례도 알고 있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것을 보면 상류사회에 꽤 발달했던 귀걸이 문화가 조선조에 들어 기생 등 하류층에서 명맥을 이었던 데는 육체훼손을 둔 철학이 깔려 있었다. 조선조 선조(宣祖)는 당시 남녀 간에 귀고리가 유행하는 것을 통탄하고 첫째, 귓불 뚫는 인체 훼손은 불효의 첫걸음이요, 둘째, 귀고리는 오랑캐의 천한 악습을 추종함이라 하고 금령을 내렸었다.
은밀한 전통 육체훼손 문화로서 연비(聯臂)를 들 수 있다. 살을 쪼아 글이나 문양을 입묵시키는 문신은 죄인의 전과표시나 노비(奴婢)들이 도망치지 못하게끔 입묵시키는 것 말고는 은밀한 연인끼리 사랑을 약속할 때 어깨에 약속을 다지는 사랑의 상쳐를 남기는 민속이 있었는데 이를 연비라 했다.
구한말 노량나루에 사는 대석이라는 노처녀가 문안으로 시집왔는데 첫날밤부터 저고리 벗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수상쩍게 여긴 신랑이 신부가 곤히 잠든 사이에 저고리를 벗겨 보았더니 연비 문신이 드러난 것이다. 문중형(門中刑)으로 대석이는 손·발가락 사이마다 불지짐당하고 노나루에 버림받은 반시체가 되었다. 이처럼 악덕이었던 육체훼손―피어싱이 요즈음 젊은 남녀들 귀고리·코걸이·입술걸이로까지 번져나가고 병역기피 문신뿐 아니라 노출된 팔에 스스럼없이 애교 문신이 판치고 있다.
유럽에 성행하는 이 피어싱을 두고 유럽 연합정부는 육체를 훼손하는 피어싱을 금하는 경고령을 내렸는데 간염·에이즈·사스·독감을 비롯, 세균성질환·피부염증·알레르기, 심지어 한센병 유발요인이 된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피어싱을 거부하는 효도사상의 국제적 확대요, 과학적 뒷받침이 아닐 수 없다.
(이규태·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