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아침밥

bindol 2022. 11. 8. 16:40

[이규태 코너] 아침밥

조선일보
입력 2003.03.13 20:23
 
 
 
 


'굿모닝'처럼 아침인사에 아침이 들어가 있는 게르만계(系)나라들은
아침이 빠르고 '봉주르'처럼 아침 대신 날(日)이 들어가 있는 라틴계
나라들은 아침이 늦다. '밤새 안녕하십니까' 하는 한국 인사나
'아침이 빠릅니다' 하는 일본 인사는 조기형(早起型) 인사며, 세상에서
가장 아침이 빠른 민족으로 소문나 있는 한국인이다. 뉴욕에서 조기형
직업인 야채상의 80%를 한국사람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조기성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옛날 어머니들은 서천(西天)에 달이 지기
전에 일어나 샘 속에 비친 달그림자를 길어 가족의 안태(安泰)를 비는
정화수로 삼았으니 이를 '용란(龍卵)을 긷는다' 했다. 이렇게 일어나
논밭에 나아가 일하는 것을 새벽참이라 했는데, 새벽참의 능률은
아침참의 두 배, 저녁참의 세 배라는 것이 상식이 돼 있었다.
조선(朝鮮)이라 하여 나라이름에 아침이 들어가 있고, 나라꽃인 무궁화도
아침꽃이라 하여 조근(朝槿)·조생(朝生)이라 불렸으며, 나라 다스리는
현장을 조정(朝廷), 나라 다스리는 사람을 조신(朝臣)이라 했음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래선지 아침밥의 비중도 세계 제일이었다. 영어로 아침밥을
Breakfast라 하는데 '굶주림(fast)을 깬다(break)'는 우리나라말
요기(療飢)에 해당되는 간단한 식사다. 미식(美食)으로 망했다던 로마도
아침은 냉수로 때우고 식사는 점심·저녁 두 끼였다. 유럽에서 세 끼
밥이 정착된 것은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18세기 후반이었다.
이슬람문화권·인도문화권에서도 200여년 전까지는 주석(晝夕) 두 끼요,
중국에서도 중·일전쟁 때만 해도 주석 두 끼가 상식이었다. 18세기 때
학자 이덕무(李德懋)의 앙엽기( 葉記)에 '조선사람 하루에 조석(朝夕)
5홉밥을 먹는다' 했고, 그 1세기 후인 19세기의 학자 이규경의 문집에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만 점심을 먹는다' 했으니 아침밥의
비중이 컸던 것도 한국적이었다 할 수 있다. 밤이 긴 환락문화권에서는
저녁을 융숭하게 먹지만 아침이 긴 근면문화권에서는 아침밥을 가장 잘
먹었다.

복지부가 식습관 조사한 바로, 한국인 평균 3명 가운데 한 명꼴로
아침밥을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경문화의 퇴조로 근면의 아침문화가
환락의 밤문화로 급변하고 있다는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