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林相沃

bindol 2022. 11. 15. 08:43

[이규태 코너] 林相沃

조선일보
입력 2003.01.15 18:04
 
 
 
 


농경사회인 우리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거부가 되는 데는 몇 가지
유형이 있었다. 그 하나가 허생형(許生型)으로 특정상품을 매점매석, 큰
돈을 벌었다. 허생은 1만냥을 빌려 안성에 내려가 제수(祭需)인 밤 대추
곶감을 모조리 매점했다. 값이 10배 올랐을 때 되팔아 제주도에 가서 그
돈으로 갓 만드는 말총을 매석했다. 다시 10배가 올랐을 때 팔아 거부가
된 것이다. 둘째가 근검으로 축재하는 고비형(高斐型)이다. 광해군 때
거부인 고비는 절인 굴비를 천장에 매어달아놓고 밥을 먹고 밥 한 숟가락
떠먹고 곁에 있는 식솔에게 '게장!'을 외치라 하여 밥을 먹었다는
장본인이다. 축재 목표량에 달성하기 전에는 밥장사를 하더라도
형님한테도 밥값을 받고 아버지 제사에도 밴댕이 한 마리 놓고 제사를
지내면서 축재한 유형이다. 셋째로 부는 축적될수록 원망도 비례해
커가는 액물이다. 이에 목표 축재량 이상의 소출은 소작인에게 돌려
원망대신 인덕을 쌓음으로써 부를 영속시키는 경주
최부자형(崔富者型)이다.

끝으로 시장에서 희소가치를 자초케하여 값을 올리는 근대화된
상업이론으로 치부하는 임상옥형(林相沃型)이다. 청나라 귀족과
상류층에서는 고려 인삼을 먹고 조선 초피(貂皮)입기를 앞다투었다. 이
조선 인삼상인들이 청나라를 누비는 바람에 그곳 상인들이 결탁,
인삼매매를 거부하는 와중에 인삼을 들여온 의주상인 임상옥이 곤혹을
당하고 있었다.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될 날이 다가오자 임상옥은 그의
인삼 꾸러미를 장터 큰거리에 쌓아놓게하고 불을 질렀다. 인삼 타는 내가
진동하자 놀란 인삼상인들이 뛰어나와 그 값진 물건 태우지 말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래서 못이기는 척 소각에서 건져낸 인삼을 10배나
올려받아 치부를 했다. 이처럼 시세의 추이뿐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도
뚫어보는 혜안을 지녔었다. 그의 손아래 서기로 쓰던 홍경래(洪景來)의
인품을 보고 갈 길을 열어준 것이 그것이다.

한국인삼공사에서는 임상옥의 고향인 의주사람의 골격과 본관인 전주
임씨의 신체적 특징을 살려 임상옥의 초상화를 만들어 인삼 선전에
활용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고려인삼의 성가가 국제적으로 추락하고
있는지라 임상옥의 얼굴보다 상술이 시급한 작금이다.